사포(Sappho)여, 그대는 무죄(無罪)다
한낮의 푸르던 에게해(海)의 물빛이 노을과 함께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는 평생에 한 번이라도 이 에게해를 여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카잔차키스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은에게해가 수많은 신화의 무대였던 신들의 바다였기 때문이리라.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던 여신테티스와 인간 펠레우스의 결혼식이이 바다에 있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사이프러스 섬 앞 바다에서 파도로 만들어진 하얀 거품과 함께 태어났다.
올림포스의 많은 신들이 에게해를떠돌고, 또, 이곳에 머물렀지만, 그러나, 이 바다의 주인은 삼지창을 든 해신(海神) 포세이돈이다.
그가 분노하면 폭풍우와 파도로 온 바다가 울부짖지만, 그의 마음이 편안 하면 바다는 요람처럼 잠잠하다.
나는 어둠이 내리고 있는 크레타로 가는 여객선에서 저 멀리 북동쪽 레스보스 섬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만나지 못하고 떠나는 한 여인을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인류 최초의 여류 시인이다.
2600년 전 레스보스 섬에서 태어난, 어떤 사람들은 시성(詩聖) 호메로스와비견된다고 말하는 위대한 서정(抒情) 시인 사포(Sappo)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헬레니즘 철학의 시대를 열었던 플라톤은 젊은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호메로스는 물론 비극 작가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작품들도 혹평하며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사포의 시를 사랑했던 플라톤은 그녀를 천상의 뮤즈(Muse) 여신에비유하며 찬양했다.
사포는 포도주 상(商)을 하는 풍족한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역시, 부유한 집안의 케르킬라스와 결혼하여 클레이스라는 딸을 두고 순탄하게 살아가다, 뜻하지 않은 정치적 정쟁에 휘말려 시칠리아로망명을 하게 된다.
사포는 2년 만에 고향 레스보스에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남편을 잃는 큰 불행을 겪게 된다.
딸과 함께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그녀는, 귀족 집안의 소녀들에게 음악과 춤그리고 시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동성애자를 부를 때, 일반적으로, 남성 은 호모(Homosexual), 여성은 레즈비언(Lesbian)이라고 한다.
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이라는 말은사포가 살았던 섬의 사람들, 즉, "레스보스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인데, 이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이 꽤 흥미롭다.
남성 중심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는 스승이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인격성장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종종 제자 와 동성애적 관계를 이루기도 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던 당시에, 이런 일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라는 관념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았다.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를 늘 곁에 두었고, 알렉산더와 그의 가장 친한 친구 헤파이스티온이 연인 사이였다는소문은 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사포가 소녀들의 스승이 되어 그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녀가 제자들과 동성애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는추측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사포가 동성애자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지만, 그랬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그녀의 삶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나마 그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동성애자로 알려진 사포는, 반대로, 젊은 남자 뱃사공 '파온'과 사랑에 빠졌다가,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고통을견디지 못하고 레스보스 섬 레우카스암벽에서 바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 한다는 전설이다.
기독교가 서구 문명의 중심 문화가 되며 시인 사포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긴 수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레즈비언이라는 주홍색 어휘가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노래한 사포의 아름다운 서정시(抒情詩)들은중세 교회에 의해 거의 불태워지고 지금은 몇 편의 시밖에 남아있지 않다.
지난 11월 29일 미국 상원은, 2015년 연방 대법원이 합법으로 판결한 "동성결혼(Same-sex Marriages) 법안"을61:36으로 통과시켰다.
그동안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공화당 의원 중 12명이 찬성 표를 던진 것이 눈에 띈다.
법안이 통과된 후, 의사당 기자 회견장에서 발표한 공화당 원내 대표 척 슈머(Chuck Schumer)의 성명 내용이 인상적이다.
" The legislation was a long time coming and part of America's diff- icult but inexorable march toward grater equality."이 법안 통과는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것이며, 보다 나은 평등 사회로 가기 위해 어렵지만 피할수 없는 걸음의 일환이다."
상원을 통과한 법안은 며칠 전 12월13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며 발효(發效) 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부터 일관되게 주장하던 이 법안에 서명하며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America takes a vital step to- ward equality, for liberty and just- ice, not just for some, but for everyone. 미국은 일부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정의로 향하는 평등 사회를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의 여권(旅券)에는남(Male)/여(Female)를 표시하는 성별(Sex)란이 있다.
미국 정부는, 이제, 자국민의 여권 성별기록란에 남(M), 여(F) 외에 제3의 성인엑스(X)를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첨예 하게 양분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그들을 낙인 찍거나 비난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2022년 미국이 동성혼을 합법화했지만, 160여 년 전 동성애를 천형(天刑) 이며 죄악으로 여겼던 암울한 시기에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사포를 향해 이렇게 노래했다.
" (중략) 레스보스, 무덥고 나른한 밤의 땅눈가가 움푹 파인 아가씨들이 거울 앞에서, 잉태하지 못하는 쾌락이여! 묘령의 무르익은 열매를 어루만진다. 레스보스, 무덥고 나른한 밤의 땅.
늙은 플라톤의 찌푸린 얼굴 따위신경 쓰지 마라. 감미로운 왕국의 여왕, 사랑스럽고고귀한 땅이여, 그 넘쳐흐르는 입마춤으로, 마르지 않는 우아함으로 너는 너의 용서를 얻어 낸다. 늙은 플라톤의 찌푸린 얼굴 따위신경 쓰지 마라.
그 영원한 고뇌에서 너는 너의 용서를 얻어낸다. 우리로부터 멀리 다른 하늘가장자리에서어렴풋이 보이는 그 빛나는 미소에이끌려야심찬 가슴에 휴식없이 가해지는그 영원한 고뇌에서 너는 너의 용서를 얻어 낸다.
레스보스여, 어느 '신'이 감히 네심판관이 되랴, 그리고 고통 속에 창백해진 네 이마를벌하랴, 네 냇물이 바다에 쏟아부은 눈물의홍수를 황금 저울로 달아보지 않았다면? 레스보스여, 어느 '신'이 감히 네심판관이 되랴?
(중략) 씩씩한 사포, 연인이자 시인, 그 수수한 창백함 때문에 비너스보다아름답다 --- 비너스의 푸른 눈동자조차, 고뇌가 남긴 그늘 드리운 검은 눈동자에 미치지 못했다. 씩씩한 사포, 연인이자 시인! (중략)"
보들레르의 유일한 시집 <악의 꽃>에실린 시(詩) '레스보스'는 당시 사람들이비난했듯이 분명히 이교도(異敎徒)적이다.
평생을 방랑과 방탕 속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했던 시인 보들레르, 그러나, 그의 시가 웬일인지 오늘날을내다본 예언처럼 들린다.
모두가 그녀를 매도할 때 사포의 아름다움을 거침없이 노래한 '레스보스'는, 어쩌면, 위대한 문학의 승리이며, 고통 속에서도 끝없이 탐미(耽美)의 세계를찾아갔던 선구(先驅)적 시인 보들레르의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