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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보석 서남해(西南海)

일을 그만두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다,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가 벌써 10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직업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말 그대로 심심풀이로 글을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보낸 글을 공유를 통해 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이런 일이 연유(緣由) 가 되어 생면부지의 사람과 만나 술잔을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희한한 일도 생겼다.

그동안 나는 문학 고전을 소개하는 글을 많이 썼다. 가끔 시답지 않은 정치 칼럼을써보기도 했으나, 논객이 아닌 내게 그와 같은 글이 재미 있을리 없었다. 당연히 그런 유의 글은 지속적이지 못했다. 물론, 일간지의 사설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다는 독자들도 있기는 했지만....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썼던 글 중에 가장긍정적인 평을 들었던 분야는 "신화와 고전을 연계한 여행기"였다. 그것은 아마 내가 관련 작품들을 읽고 그 이야기들의 현장을찾아다녔다는 조그만 노고를 인정해 준표시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말이 길었다. 서두는, 사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만난 사람들이 나를 "작가"나 "평론가"라고 불러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나를 "여행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말이 상대적으로 거북하지 않았다. 젊은시절 10년 가까이 해외 근무를 하며 틈틈이 여행을 했고, 그 뒤에도 이곳저곳을 쏘다녔으니, 그 정도의 말은 들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걱정했던 APEC이 끝난지도 벌써 한 달이넘었다. 지난 경주 APEC을 돌아보며, 다른 것은 다 차치하더라도 아래 두 가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실용주의의 승리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한 외교가 상당한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국민들의 이념 대립이 쉽게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이념 싸움의 출구를 보여 주었다는데 경주 APEC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정치 칼럼니스트들이 "그릇된 정치인 의 노스탤지어(Nostalgia)"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치인 의 독재에 대한 향수"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이념에 경도(傾倒) 된 지도자가 독재 의 향수에 빠져 나라를 어떻게 어지럽혔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정상적인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 편협한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이념주의자들의 대립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숨가쁘게변화하고 있는 국제 경쟁 사회에서, 이런케케묵은 이념을 갖고 시민들을 편가르려 하는 정치인은 반드시 퇴출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경주 APEC을 돌아보면, 이번 행사는 정치 외교 영역에서 실용주의중요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둘째,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재부상이다. 어떤 평론가는 지난 APEC의 진정한 주인공은 엔비디아 CEO 젠슨황이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며칠 동안 보였던 젠슨황의 행보가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예기치 않았던 그의 이재용, 정의선회장과의 치킨 회동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했다.

뒤이어 우리에게 GPU 26만 장을 우선제공하겠다는 젠슨황의 기자회견 소식은, 그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국내 AI 산업계에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한 사업가의 말에 과도하게 흥분할 필요는 없다. 젠슨황이 중국계 미국인이고, 그가 사업의영역을 피지컬 AI로 확장하기 위해 중국진출을 끊임없이 시도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사실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지난 몇 년 동안 괴롭혔던 "AI 산업에서 낙오되었다는 회의적생각"을 벗어버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피지컬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여 속도감 있게 AI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어쨌든, 지난 APEC이 국민 모두에게, 국제 정치 경제의 패권, 헤저모니(Hegemony)의 중심에 테크놀로지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것은 귀중한 성과다.

경주 APEC이 열리기 약 한 달 전 지난10윌 초, AI 관련 중요한 뉴스가 하나 더 있었다. 글로벌 AI 선도 기업인 OpenAI의CEO 샘 알트만(Sam Altman)이 SK와협력하여 전남 서남해 지역에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겠다는 발표였다. 보도에 의하면, 샘 알트만이 건설 예정지인 해남솔라시도와 서남해 일대를 주의 깊게 돌아보았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아직MOU 단계이기 때문에, 극복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업의 진행과 상관없이,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탁월한 샘 알트만이 한국의 서남해 지역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다.

적정한 토지 비용 등은 정책적인 문제이고, 데이터 센터를 가동키 위해 필요한 재생 에너지나 수자원 같은 것은 기술적 분야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언급을 자제하기로 하자. 다만, 한국의 서남해가 지형과 기후 면에서 갖고 있는 우수한 장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선, 한국의 서남해 지역은 풍광이 아름답다. 거칠지 않은 해안선을 따라 자리 잡은 크고 작은 섬들은 빼어남을 더하고, 고즈넉한 산과 들판은 이 고장의 풍요로움을 생각하게 한다. 그 바다와 들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농수산물은 우리 민족 천년 음식 문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힘의 중심축은 늘 변해 왔다. 산업화와 함께 이루어졌던 유럽 중심의 세계 경제는, 2차 대전 후 패권이 미국으로넘어갔다. 많은 국제 경제 분석이 있지만, 21세기로 들어서며 그 권력은 서서히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한중일 불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샘 알트만의 계획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이런 미래의 경제 환경을 내다보고 내린 결정이라면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서남해는 한때 한중일을 잇는 해상 무역 중심지였다. 그만큼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세 나라가 교역을 하기에 손색이 없었던 곳이다. 비록, 물리적인무역은 아니지만, 테크놀로지 시대에 이지역이 삼국의 AI 네트워크 요충지로 다시부활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사람이 살기 가장 적합한 기후는 지중해성기후라고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지중해 성 기후 지방에서 꽤 오랫동안 살았던 경험이 있어, 나는 이 기후에 감각적으로 상당히익숙해져 있다. 유사한 날씨를 보이는 전형적인 나라들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유럽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그리고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이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해안 지역 ,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또 호주 중부 해안 지역도 비슷한 기후를 보인다.

나는 국내 여행지로는 남해안 지역을 가장 좋아한다. 오래전부터 1년에 한 번은 그곳을 여행하려 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동안, 특별히 바쁜 일도 없는데, 한 곳에 여유롭게 머물지 못하고 이곳저곳 들렸다 서둘러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때문에 여행 후 돌아보면, 그 지방의 독특한 정취나음식의 깊은 맛을 더 느껴보지 못했다는서운함이 남아있었다.

지난 3월에 여수를 2박 3일 여행한 일이 있다. 여수는 전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올봄 여행 때 혼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인지 해안길을 걸으며, 남프랑스의 기후 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순간의 감각적인기분이었지만, 확실히, 우리나라 서남해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남프랑스의 도시 엑상프로방스를방문했었다. 이 도시를 찾은 것은 순전히에밀 졸라의 작품들을 읽고, 그와 폴 세잔이우정을 키웠다는 "세잔의 아틀리에"를 가보기 위하서였다. 미라보 거리를 지나 들어선 골목길 곳곳에 분수들이 있는 모습은, 도시가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주었다.

엑상프로방스 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차림새가 깔끔해 보였다.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도시가 프랑스에서 은퇴자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했다. 현지인들에게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파리와 같이 북적 이는 대도시보다는, 은퇴 후의 삶을 보내기에 오히려 이런 짜임새 있는 따뜻한 지중해 도시가 휠씬 좋겠다고 보였다.

숙소가 있는 아비뇽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남프랑스는, 마침 녹색의 포도 나무 밭들이 보기 좋은 수채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도 은퇴자들이 정말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있었으면 얼마나좋을까 하는....

한반도 서남해 지방은 지중해 주변 휴양 도시 형태의 도시가 세워질 수 있는 최적의장소다. 따뜻한 햇살, 푸른 바다, 완만한해안선과 깊은 맛의 다양한 한국적 먹거리는 신이 주었다. 그리고 조상들이 풍성한 유산을 물려주어 문화가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서남해에 휴양도시가 만들어진다면, 첨단기술과 융합하여 진정한 미래 신도시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휘발유, 디젤 등) 사용 자동차운행을 통제하고, 콘크리트 아파트 대신미래형 모듈 하우스 타운 같은 것들이다.

정부는 지방 균형발전 차원에서 서남해 첨단 휴양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시도해도 좋다. 부유층과 중산층, 그리고 젊은 엘리트 기술자들이 자리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료시설과 교육기관이 필수적이다. 이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서남해권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차츰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의료 기관으로 확장시켜가면 된다. 교육도 특별법을 만들어 국제고와 과학고 같은 학교를 신설하고, 장기적으로는 과감 하게 외국 명문대 분교를 유치해도 된다.

우리는 수도권 인구 밀집과 지방 균형발전에 대해, 더 늦기 전에 기존의 사고를 완전히 뛰어넘는 대전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문화, 교육, 의료, 환경에서 서울보다 확실하게 더 살기 좋은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샘 울트만이 인이셔티브(Initiative)를 주었다. 누가 뭐래도 "미래는 미래를 꿈꾸는 자들의 것이다". 개인적으로, 새 정부가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여, 국가 백년대계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파리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사치와 향락이 넘치는 유럽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다. 그러나 수많은 예술인들이 파리를 떠나태양과 바다의 지방 남프랑스로 향했다. 피카소, 고흐, 샤갈, 마티스가 남쪽으로 떠났으며, 작가 알베르 까뮈와 서머셋 몸이 그곳을 사랑했다. 어디 그뿐인가, 철학자니체는 남프랑스의 따뜻하고 고혹적인정취에 영감을 받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아직 가공되지 않은 보석 같은 남쪽 땅이 있다. 찬란한 태양과에메랄드 빛 눈부신 바다가 있는 지중해를 닮은 서남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