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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Odyssey 에 대한 소고(小考)

필자는 4월 말 즈음 "8월의 <오디세이> 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일이 있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순전히 호메로스의 작품을 배경으로 쓴 글이었다. 얼마 후, 미국에서 영화의 시사회가 있었는데,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백인 인플루언서들이 크게 화를 냈다는 외신을 봤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상당히궁금했다. 그리고 며칠 전 영화를 본 뒤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신화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던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 헬레네는 절세의 미녀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헬레네 역을 흑인 배우 루피타 뇽오에게 맡겼다. 더 놀라운 것은 빛나는 여신 아테나 역도흑인 혼혈 배우 젠데이아가 너무나 평범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모습이었다.

인종학적으로도 당시 스파르타에 흑인 이 살고 있었을 것 같지 않아, 이래저래관객들은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물론, 평론가들 중에는 1900년에 프랑스 화가앙리폴 모트가 그린 "레다와 백조"라는 그림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림 속 헬레네의 어머니 레다가 흑인으로 표현되었는데, 놀런 감독이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쨌든, 서구 백인 주류 사회에서는 헬레네와 아테나 여신의 배역은 금발의 백인 미녀가 맡았어야 했다는 강한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The Odyssey"를 연출한 놀런 감독이 영화의 재미와 신비감을떨어뜨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신화적 색채를 억누르려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발적이라고 할 정도의 이질적인 배우 캐스팅과, 눈에 띄는 신화적 요소절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작품의 중요 인물 앞에 형용사를 붙여, 반복적으로 등장 시키는 특징이 있다. 오디세우스도 그를수식하기 위한 다양한 형용사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사려 깊은 오디세우스", "지략이 뛰어난 오디세우스", "신과 같은 오디세우스" "오래 참는 오디세우스"와 같은 표현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디세우스에게는 위의형용사들과 성격이 전혀 다른 수식어가 하나 있다.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 라는 말이다. 필자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이 다중적특성 중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에서 중심 주제를 찾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는 전쟁을 싫어하는 오디세우스가 왜 트로이로 떠나야 했는가를 그의 회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출정을말리는 부인 페넬로페에게, 원정군에합류하지 않으면 강대국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이타카를 무참히 짓밟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디세우스는 아가멤논은 트로이 정복을 절대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를출정을 위한 제물로 바친 잔인성도이야기한다.

따라서, 오디세우스는 원치 않는 트로이 전쟁에 숙명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10년 동안 전장(戰場)에 머물러야 했으며, 살아 돌아가기 위해 목마의 전술로 도시를 파괴하는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목마는 신의 이름 까지 팔며 트로이인들을 속인 기만술이었다. 한밤에 목마에서 나온 그리스군은살육을 시작했고, 마침내 성문을 부수고 아가멤논이 군사를 몰고 들어오며 트로이 성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불길에 휩싸인다. 그렇게 문명이 무참히 파괴 되었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귀향의 길에서아군이었던 그리스 군들의 잔혹한 약탈과 살육의 현장을 떠올리며 고통에 시달린다. 그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를눈멀게 하여, 그의 아버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기 전에 이미 신의 저주를 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받아들이면서도, 다행히 고향 이타카로돌아가겠다는 의지는 놓지 않는다.

영화는 3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서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신화적 색채를 빼려 한 가운데에서도,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저승으로 테바이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찾아가는 장면과, 사이렌과 스킬라가 있는 공포의 소용돌이 카립디스를통과하는 모험은 그나마 신화의 영상미를 살렸다.

영화는 역시 인간들의 갈등과 싸움이었던 작품의 마지막 부분인, 오디세우스이타카 귀환 이후의 사건들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 소란 중에도 20년 동안 주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다, 끝내 주인을 보고 죽는 사냥개 아르고스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사냥개 아르고스(Argus)의 기다림과 죽음에 대해 펭귄 출판사 영문본 <The Odyssey>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As for Argus, the black hand of Death descended on him the mom- ent he caught sight of Odysseus - after twenty years."

"아르고스가 20년 만에 (드디어, 주인) 오디세우스를 본 순간 죽음의 검은 손길이 그를 찾아왔다."

그런데, 용맹한 사냥개 아르고스가 영화에서 지극히 평범한 개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분명히 곧 다가올 피할 수 없는 마지막 결전의 긴장감을 죽이지 않으려는 놀란 감독의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 싸움은, 다름 아닌, 오디세우스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끝까지 주인으로섬기며 구혼자들에게 저항하고 싸웠던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소치기 필로이티오스와 늙은 유모 에우리클레이아의 이야기다. 그리고 불의한 구혼자들과불충의 길을 택했던 배신자 염소치기멜란티오스와 그의 여동생 멜란토의 이야기다.

놀런 감독은 오디세우스가 안티노오스를 우두머리로 한 구혼자들을 홀안에가두고 결정적 일격을 가할 때 사용한 활에 대해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호메로스의 원작 21장에 "The Great Bow: 위대한 활"이라는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이"이피토스(Iphitus)의 활"이 오디세우스에게 오게 된 연유는 대략 아래와 같다.

구혼자 누구에게도 활대를 휘게 허락하지 않았던, 웅장한 명궁 이피토스의 활은 원래 이피토스의 아버지 오이칼리아의왕 에우리토스의 것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에우리토스는 활의 신 아폴론의 아들로, 아폴론으로부터 직접 이 활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에우리토스는 헤라클레스에게 궁술을 가르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죽기 전에 활을 아들인 왕자이피토스에게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젊은 시절 스파르타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이피토스가 잃어버린 자신의 암말을 찾아 스파르타를 헤매고 있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피토스는 금방 오디세우스의 영웅의 기상을 알아보고 그에게 마음을 주었다. 오디세우스도 선하고 마음이 깨끗한이피토스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터운 신뢰를 쌓은두 사람은 헤어질 때 우정의 징표를 나누었다. 이 때 이피토스는 아버지로부터물려받은 활을 오디세우스에게 주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검과 창을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이 활을 이피토스와의 따뜻한 우정의 상징으로 여겨, 시위를활대에서 풀고 왕실의 벽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이 활을 사람을 죽이는 일에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E. V. Rieu의 영문본 <The Odysseus> 에는, 오디세우스가 이피토스의 활을 어떻게 여기고 귀하게 간직했는지를 표현한 구절이 있다.

"This bow Odysseus never took on to his black ships with him when he sailed to the war, but laid it up at ho- me in memory of a treaured friend."

"오디세우스는 전쟁을 위해 항해하는 검은 배에 오를 때, 결코 이 활을 손에들지 않았다. 다만 그는 보석 같은 친구와의 기억을 기리기 위해 그것을 자신의 집에 걸어 두었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이다. 왕에 대한 충성을 배신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친구와의 우정을 저버린 것과 같다.

영화는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과 극한의 대치 상황을 연출하며 피날레를 향한 다. 그때 마치 먼저 죽은 친구 이피토스가 저승에서 오디세우스에게 "친구여! 어서 우정의 활을 들어라."라고 외치는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오디세우스는 한번도 사람을 죽인 일 없는 이피토스의 활의 활대를 휘어 시위를 걸었다. 그리고화살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시위를 떠나 왕을 배신한 구혼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영화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가 왕권을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넘겨주고 이타카를 떠나며 막이 내린다. 이 마지막 내용은 호메로스의 원작에는 없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 후반부에서,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스토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구혼자들이 모두 살해된 후, 이타카에는반란의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타카의 수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트로이 원정을 떠났던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갑자기 혼자 돌아와 또 많은 아들들을 죽였으니왕국에는 실로 엄청난 변고였다.

아들을 잃은 이타카의 토호세력은 왕과 결전을 치를 기세였다. 호메로스의 원작에서는, 이때 아테나 여신이 갈등에 직접개입하여 양쪽을 화해시킨다. 그렇게 이타카에 평화가 찾아오며 호메로스의 작품은 끝이 난다.

그런데 신화는 호메로스의 작품이나비극과 같은 정설 외에, 전승으로 내려 오는 다른 내용의 일화들이 많이 있다. 역시 오디세이도 구전으로 전해지는원작과 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오디세우스가 토호세력들과의갈등으로 20년 동안 하루도 잊지 못했던 고향 이타카를 떠나 이탈리아로 갔다는구전의 이야기다. 놀런 감독은 이 일화를선택하므로 아테나 여신의 개입을 배제 했다.

결국,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The Odyssey"에서 신화의 이야기를 하려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숙명적으로 도시를 파괴하고 신의 노여움을 사, 긴 세월 동안 대양을 떠돌아야 했고, 그를 반겨주리라 생각했던 고향 사람들에게 마저배신을 당한 신화 속의 한 인간의 고통과 노고를 그리려 했다.

따라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신화적 판타지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은 반드시 실망하거나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신화 속의 위대한 영웅도 우리와 똑같은 삶의 무게로 고통스러워하고고뇌했다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런 신화 속의 인물을 탐구해 보고 싶다면, 영화 "The Odyssey"는 명화라고 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The Odyssey"는 탁월한 각색과 대담한 연출로 완성된 인간의 노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