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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바다의 신이 된 이순신

병이 깊어지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 성에서 후시미 성으로 몸을 숨겼다.

천수각 꼭대기에 '천하포무(天下布武)'의 깃발이 휘날리는 오사카 성은 그의 화려 했던 지난날의 영광을 상징하는 표상이었다.

주위를 압도하는 활달함과 하늘이 내려준 듯한 행운을 손에 쥐고, 일본 통일을 이룬 영웅 히데요시도 이제 병든 몸이 되어 부하들의 눈길을 피해 후시미 성에서 나이 어린 자식 히데요리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조선에서 많은 정보들이 그에게 전해지고 있었지만, 대부분 그의 입맛에 맞게 각색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천하의 히데요시가조선의 정세를 모를 리가 없다.

히데요시는 조용히 눈을 감고 불꽃처럼 달려왔던 지난날을회상해 본다.

"조선을 거쳐 명을 치고 천축(天竺:인도)까지 가리라."

생전의 주군 오다 노부나가가 하던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있던 히데요시는, 그의 칼에 주군의인장 문구인 천하포무를 새겨넣고 이 원대한 꿈을 실행하는 자신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그가 30만 대군을 파견한 후,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조선정복이 긴 전쟁으로 빠져들며 그의 뇌리 속에는 줄곧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이 흐릿한 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전쟁이 길어지며 자리 잡기 시작한 막연한 두려움이 점점 그를 옥죄어 왔다.

'솟아오르는 용도 추락할 수있다'라는 주역의 글귀가 머릿 속을 스친다.

비로소 불안감이 깊은 밤문틈으로 불어오는 찬바람처럼파고들었다.

전국시대를 그린 일본 소설 속에서이순신을 묘사한 글들은 길지 않지만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에서는 장군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조선의 관료들은 대부분 부패하고무능했지만, 바다에는 위대한 제독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을 그린가이온지 초고로의 대하소설 '기습'에서는 충무공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육상에서는 전혀 일본군의 상대가 되지 못하던 조선군이었지만 수군은 정말이지 강했다. 그것은 이순신이라는 천재적제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야말로 신출귀몰 묘기백출이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명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전술로 싸우면 반드시 이겼다. 일본의 수군은 꼼짝 못 하게 되어 물자 수송의 길이 두절되었다."

왜군들 앞에 산처럼 버티고 있었던이순신은, 그러나 조정의 지원이 없는 가운데 몸과 마음의 아픔을 끌어안고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싸워야 하는 가난한 장군이었다.

임진년에 총 맞은 왼쪽 어깨와, 조정을능멸했다는 죄목으로 의금부에서 고문과 문초에 멍든 몸이 굳은 날이면 쑤셔 왔다.

걸핏하면 소리 내어 우는 선조는 백성은 없고 종묘사직만 걱정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임금이었다.

그에게 왜군과 싸우는 의병은 거추장스럽고 뒤숭숭한 무리였으며 무패의이순신은 필요하지만 두려운 존재였다.

이순신에게 이따금 보내오는 선조의글들은 장려하고 애잔하지만 어지러웠다.

"이제 가을바람이 불어 너희들의 그 남쪽 바다는 한결 더 추우리니, 어허, 너희들은옷이 없으리니 나의 부끄러움이요, 너희 들은 배고프고 목마를 것이니 내 기름진 음식을 넘긴들 무엇이 편안하겠느냐."

장군은 그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넷째 아들 면의 부고를 받던 날 남몰래 많이울었다.

명량해전에서 대패한 후 가토 기요마사는 잘 훈련된 무사 50명을 시켜 장군의 고향 아산을 급습하게 했다.

가족을 돌보고 있던 아들 면은 그들과 맞서 싸우다 죽었다.

죽은 아들 면이 꿈속에 나타나 싸우다 놓친 칼을 찾아 달라며 장군의 발을 잡고울었다.

<가거라, 죽었으면 가거라. 목숨은물리지 못한다. 칼 또한 그러하다. 다시는 내 꿈에 얼씬거리지 마라.>

노을 진 갈대밭으로 멀어저 가는 면을 부르며 울다가 자신의 소리에 놀라 잠을 깬 장군의 속옷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렇게 공은 조선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천륜의 정마저 찢었다.

총통을 만들고 고향으로 돌아가던대장장이들이 장군을 위해 환도를 한자루 만들고 떠나겠다고 했다.

종사관 김수철이 검명을 써주기를장군에게 부탁한다.

잠시 멋적어 하던 공은 이렇게 단숨에 썼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일휘소탕 혈염산하'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에 물들이도다.

장군은 이 글속의 물들일 染(염) 자를 무척 좋아했다.

조선 강토를 폐허로 만들고 유린한왜군을 모두 수장시켜 이 바다를핏빛으로 물들이리라...

나고야에서 조선 왕의 항복의 례를 받기 위해 조선으로 가겠다고 기개를 부렸던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끝내 배를 타보지도 못하고 교토의 후시미 성에서 죽었다.

미리 써놓은 이런 유서를 남기고...

"이슬로 떨어지고 이슬로 사라지는내 몸이로 소이다. 나니와 (지금의 오사카)의 영화는 꿈속의 또 꿈..."

조선의 왜군은 철군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들을 살려서 보낼 수가 없었다.

1598년 무술년 11월 19일 공의 나이쉰넷, 그날 노량의 앞바다는 물결이사나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싸움에서 적선 200여 척이 격침되고50여 척이 도주했다.

장군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알려졌다.

통곡이 바다를 덮었다.

3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05년 5월동해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한 일본의 총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는승전 연회에서 한 기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각하의 승리는 영국의 넬슨, 조선의이순신 제독에 비견되는 빛나는 업적입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마라! 그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올랐던 분이다. 나를 바다의 신이 신그분과 비교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자신의 무수한 선조를 수장 시켰던적국의 장군을 신으로 모셨던 도고헤이하치로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리고 오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닮은사무라이 극우 후손들이 天下布武(천하포무)의 칼을 , 충무공의 후예들이血染山河(혈염산하) 검을 들고 다시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역사의 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