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이즘(Orwellism)의 유혹 [2]
대부분의 문학 평론가들은 조지 오웰의 <1984>를 정치 소설로 한정하고, 그테두리 안에서만 바라보려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윈스턴과 줄리아의위태롭고 안타까운 로맨스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세아니아에서는 당이 인정하지 않는비밀스러운 연애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상경찰의 눈을 피해 만나야 했다.
윈스턴은 체스넛 트리 카페(Chestnut Tree Cafe)에서 책을 읽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상경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줄리아를 만날 수는 없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숲이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교회의 종탑 같은 곳이 그들의 사랑의 은신처였다
위험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도 줄리아는 늘 용감하고 격정적이다.
"She flung herself into his arms, kissed him almost violently, and a moment later pushed her way thro- ugh the saplings and disappeared into the wood. 그녀는 윈스턴의 팔 안으로 뛰어들어뜨겁게 키스하고, 이내 잡목 사이로 몸을 숨기며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불안정한 시기에 그들은 채링턴(Charrington)을 만나게 된다.
채링턴의 등장은 두 사람에게 구원(救援)과 같았다.
그는 런던의 빈민가에서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는 프롤(Prole) 계급의 노인이다.
60대 중반에 한 곳에서 30년 동안 가게 를 하고 있는 채링턴은 사람 좋고 붙임성 있는 인물로 소설은 묘사하고 있다.
채링턴은 그들과 친해진 후, 빅 브라더이전의 오세아니아 사람들의 삶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해주었다.
자신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풍요와 자유 그리고 낭만이 있었던 과거는, 윈스턴과줄리아에게, 마치, 그리운 향수(鄕愁) 처럼 다가왔다.
채링턴은 두 사람을 위해 텔레스크린이 없는 골방 하나를 마련해 준다.
그들은 그곳에서 달콤한 밀회(密會)를즐겼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그 비밀의 장소에 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을 키우며,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를 배신할 수 없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골방에 사상경찰들이 들이닥치며, 소설은 빠르게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두 사람을 순식간에 비극으로 내몬인물은 놀랍게도 채링턴 노인이었다.
"Mr Chrrington was still wearing his old velvet jacket, but his hair, which had been almost white, had turned black. Also he was not we- aring his spectacles. 채링턴은 아직 그가 늘 입고 다니던벨벳 재킷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백발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쓰고 다니던 안경은 벗고 있었다."
채링턴은 교묘하게 노인으로 분장한30대의 사상경찰 비밀요원이었다.
그는 체포되는 윈스턴을 날카롭게 한 번쳐다보고 이내 눈길을 돌려 버린다.
줄리아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윈스턴을 향해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남긴다.
윈스턴은 자신이 끌려온 곳이 어디인지알 수 없었다.
천정이 높고 사방의 벽은 온통 하얀색도자기 재질로 만들어진, 그리고 유리창이 없는 이 방은 애정부라는 생각이 들지만 확인할 방법은 전혀 없다.
그는 질식할 것 같은 하얀색 방에서 가끔 줄리아를 생각했고, 당에 영향력이 있는 자신을 이끌어준 오브라이언(O'Brien)을 떠올렸다.
힘든 고문 가운데에서도, 어쩌면, 오브라이언이 자신을 지옥 같은 감방에서 풀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윈스턴 앞에 오브라이언이 나타났다.
아- 그러나, 그는 고통에서 해방시켜줄구원자로 온 것이 아니라, 윈스턴을 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가려는 잔인한 권력자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소설 <1984>는 오세아니아 권력의정점(頂點)에 있는 빅 브라더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오웰이'오브라이언이 빅 브라더'라는 플롯(Pl- ot) 위에 작품을 완성했을 것이라고추측하는 독자들이 많다.
그만큼 소설의 중반 이후 오브라이언은 절대 권력을 행사 한다.
물론, 윈스턴에게 형제단 가입을 돕고 이념 서적을 주며 격려했던 것도 그의함정이었다.
윈스턴에 대한 고문은 점점 강도를 더해 갔다.
죽음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윈스턴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생명처럼 사랑했던 줄리아는 절대 배반하지 않겠다'라는양보할 수 없는 신념이 있었다.
윈스턴의 이런 의지는 빅 브라더가 모든 대상보다 상위 개념에 있어야 한다는 오세아니아 국가 통치 이념과 상충(相沖)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문 당하는 윈스턴 뒤에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하얀 방에서, 오브라이언은 마치 근엄한 교장 선생처럼 윈스턴과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Pain is not always enough. There are occasions when a human being will stand out against pain, even to the point of death. But for everyone there is something unendurable--- something can not be contemplat- ed. (의지를 꺾는데) 고통은 언제나 충분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때때로 고통과 맞서 싸우며, 죽을 때까지 굴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것이 있기 마련이다. 상상을 초월하는그 무엇 말이다...."
오브라이언은 말을 끝내고 윈스턴 앞에철망 하나를 올려놓았다.
철망 안에는 쥐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평범한 쥐가 아니라, 뭉텅한입 모양과 갈색 털을 한 사납게 보이는 커다란 쥐들이었다.
오브라이언은 발가벗겨진 윈스턴이 있는 방에 이 육식을 하며 키운 굶주린쥐들을 풀어 놓겠다고 한다.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날뛰는 쥐들은 극한의 공포를 몰고 오며, 윈스턴이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의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려 버린다.
윈스턴은 거의 미친 사람이 되어 소리를지른다.
"Do it to Julia! Do it to Julia! Not me! 줄리아에게 해라! 줄리아에게! 나는 안된다!"
윈스턴의 의식은 끝없는 심연을 향해곤두박질친다.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귓속말로속삭인다.
"Something was killed in your bre- ast: burnt out, cauterised out. 네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그것은 이제 죽었다. 불타버렸고 사라졌다."
세상에는, 때로는, 믿기지 않는 일도일어나지만 무심한 시간은 흘러간다.
아직 겨울이 남아 있는 찬바람 불고을씨년스러운 3월 어느 날, 공원을 걷던윈스턴은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고 있는 줄리아를 보게된다
줄리아는 윈스턴을 보고 못 본 체 가던 길을 갔고, 하마터면, 둘은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갈 뻔했다.
윈스턴은 걸음을 돌려 그녀를 따라갔다.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거의 폐인이 되어버린 윈스턴은 이제 더 이상 텔레스크린이나 사상경찰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윈스턴으로부터 벗어나려던 줄리아는따라오는 윈스턴을 어쩌지 못하고 마주 하게 된다.
둘은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으나서로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낡은 신발로 괜스레 나무 잔가지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I betrayed you." 저는 당신을 배신했어요."
윈스턴이 대답했다.
"I betrayed you. 나도 당신을 배신했소"
그녀는 윈스턴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Sometimes, they threaten you with something--- something you can't stand up to, can't even think about. 언제가 그들은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갖고 위협할 거예요. 상상도 못한 것을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