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세월이 흐르며 변한 주위의 환경이나 지 형을 바라보고 있자면, 문득, 옛날 동네 모습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중에는, 흔히 말하는 둘레길과 같은 산책로들이 한몫하고 있다. 유명 관광지 뿐만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들에도 이곳저곳에 다양한 길들이 조성되어 주변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고 있다.
그런 깔끔하고 잘 가꾸어진 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의 길을 찾아다닌다. 한적한 시골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옛 정취를 잃지 않은 도시의 뒷골목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필자도 습관처럼 좋아하는 길이 있다. 성북동 언덕길을 넘어 삼청동을 지나, 광화문 도심을 걷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혼자 배낭을 메고 이 길 위에서 사색했던 시간이 벌써 30년이 훌쩍 넘어섰다.
그런데, 광화문 거리는 2002년 월드컵이후에, 어떻게 된 일인지, 대한민국 시위의 메카가 된 느낌이다. 특히, 대부분의주말이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확성기의소음과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들로 광장과 거리가 어수선하다.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려니 하다가도, 이따금, 거의 광적인 시위 현장을 지나갈 때면 두려운 생각이 든다. 구호를 외치며 분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 안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군중의 어떤 심리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독서를 하다 보면, 잠자는 정신을 깨우며 깜짝 놀라게 하는 책들이 종종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n)의 <자유로부터의도피: Escape From Freedom>는 필자에게 그런 책이었다. 80여 년 전인 1941년에 초판 되었지만, 글의 내용은 오늘날에도 여지없이 유효하다.
자아의 상실과 불안, 도피의 메커니즘을 밝혀가며 폭넓은 내용을 제공하고 있는 이 책의 주제는 "인류가 자유에 내재해 있는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권위주의에의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칸트와 괴테 같은 빛나는 사상가와 예술가들을 배출하며 스스로 위대한 게르만민족이라 자부하던 독일이, 어떻게 광신적인 나치에 열광하며 세계를 향해 야만의 총부리를 돌렸는지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의 하나다. 인류 현대사의 비극이며 아픔인, 그 세계 2차대전 뒤에 감추어져 있던 보편적 인간의 심리를파고든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시대를 뛰어 넘어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한 책이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억압에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있는 한편, 주어진 자유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버거워지면,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나약함도 함께 갖고 있다는 이론을 신학적, 사회심리학적 그리고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하며 해석하려 노력 했다.
저자는 "어떤 강력한 힘이나 지도자에게복종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 본능 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약에서 애굽을 탈출하여 자유를 얻은 유대인 무리가 사막에서 목마르고배고프자, 애굽의 노예 생활을 그리워하며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던 것은 복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사건이다.
에굽에서 탈출 훨씬 전에, 이미 성서는인간과 자유의 근본적인 관계를 묘사한"낙원에서 추방"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신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분명히 죄악이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추방은 자유의 시작이었다. 신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강제에서 자신을 해방 시킨 것, 즉, 인간 이전단계의 무의식적 존재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의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 한다. 다시 말해, 자유행동으로 신의 명령을 거역한 불복종 행위는 이성(理性)의시작이다.
자유의 대가는 혹독했다. 낙원으로부터추방되며 인간은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 부끄러워했다. 자유로웠지만, 무자비한 자연 앞에서 무력하고 두려웠다. 새로 얻은 자유가 어쩌면 저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그는 낙원의 달콤한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자신을 다스리거나 개성을 실현하기 위한 자유는 얻지 못한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근세인의 복종에 대한 욕망의 끈을 흔히 암흑의 시대라고 부르는중세로부터 거슬러 올라 찾아갔다. 서구 의 중세 사회는 의외로 도시 경제 구조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상인이나 수공업자 연합이라 할 수 있는 길드(Guild)에 의해 지나친 경쟁을 막고, 원료 구입, 생산기술및 상품 가격과 관련하여 조합원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강제하였다. 이는 좋은의자, 구두, 빵, 안장 따위를 만들면 그의 사회적 지위에 전통적으로 할당된 생활수준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세의 사회 체제가 붕괴되고근세 자본주의가 시작되자, 개인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동안 제공되었던 안정은파괴되고 만다. 자본은 하인이기를 거부 하고 주인으로 올라섰다. 상품을 과연 팔 수 있을지,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를 결정 하는 것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시장의법칙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렇게 근세 자본주의는 인간을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운을 시험할 수 있도록 해방시켜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제 세력인 자본가와 독점가의위협에 노출되었다.
개인은 홀로 남겨지고 고립되었다. 그들은 고독과 불안을 느껴야 했다. 필연적으로, 경쟁에서 밀려난 수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잘것 없고 소용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은 이처럼 근세의 개인들이 자기 비하적인 자아로 인식하게 된 것은종교의 영향도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루터(Luther)와 칼뱅(Cal- vin)에 의한 종교개혁으로, 인간은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은 교회의 권위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교회보다 훨씬 위에 있는 절대자인 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교리를 만나게 된 것었다.
루터는 인간성의 사악함을 전제하며,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아무 쓸모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개신교의 이런 신학적가르침인 자기 비난과 자기 비하의 심리적 메커니즘은 자칫 바깥을 향한 증오로표출될 수 있다. 그런 타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은 루터의 시대부터 히틀러의시대까지 중하층 계급의 변함없는 특징이었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 개혁과 사회 현상에 대한 고찰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멈추자.
어쨌든, 경쟁에서 밀려난 중하층 계급은부와 권력을 거머쥔 자들의 도덕적 타락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분개와 부러움을합리화했다. 그들은 고독감, 두려움 그리고 당혹감을 마냥 참고 살아갈 수가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자유도 짊어지는 것이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고독한 군중은 아예 자유로부터 도피하려 했다.
그들은 누군가 절대적 힘을 갖고 있는자에게 그들의 자유를 넘겨주고, 복종하고 싶은 욕망을 서서히 드러냈다. 마치, 많은 여성들이 "연약한 남자를 지배하기보다는, 자기보다 강한 남자에게 지배 받기 원하는 심리"처럼 말이다.
에리히 프롬은 왜 나치의 엘리트들이 독일 국민의 하류 중산층으로 파고 들었는지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원래 인간은 재물을 갖고 있다 빼앗기게 되면 이성을 잃고 실의에 빠지고 분노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실의와 분노는계층에 따라 현저하게 다르다. 경제의 큰충격이 오면 하류층은 처음부터 갖은 것이 없기 때문에, 또, 상류층은 갖고 있는재산에 비해 빼앗긴 것이 별로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1929년 이후 유럽에 닥친 불황은 노동자와 상류계급 사이에 낀 독일의 중산층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바로 이틈을 타고 나치즘은 강력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원한과 증오에 사로잡힌 프티부르주아(하류 중산층)에게는 "게르만 민족의 세계 정복"을 주창하는 나치즘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재산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대중집회에 나와 구호를 외치며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들은 자신을 보잘것 없는 존재로느끼다 집회에 나와 같은 신념을 가진 수천수만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외로움과고독을 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