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클레피오스와 뱀
가끔, 친구와 약속이 있거나 서점에들릴 일이 있으면 종로 거리를 느긋하게 걸을 때가 있다.
종로는, 종각역에서 광화문까지를 제외 하면, 지금이나 4/50년 전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70년대 초, 근처에서 학원을 다녔던 필자는 이 거리에 대한 소소한 추억들이 있다.
그중에는 번잡한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뱀에 대한 기억도 있다.
아니, 약장사와 뱀 이야기라고 해야 맞을것 같다.
뱀이 들어있는 철망을 진열해 놓고 사람들을 끌어모아, 건강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 나중에는 안 먹으면큰일 날 듯한 약을 팔았다.
야바위꾼 비슷한 약장사의 목쉰 목소리에 홀려 한동안 멍청히 바라보다 발길을돌렸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뱀은 정말 설명하기 힘든 생물이다.
무서운 독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위독한 생명을 살리는 영험스러운 귀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해도 "백 년묵은 산삼과 백사(白蛇)는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도 살린다"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뱀에 대한 이런 이중적인 감정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서 의술(醫術)의 신은아폴론이다.
그러나, 예술, 예언, 궁술과 같은 다양한 분야를 함께 상징하는 아폴론보다는, 오직 인간의 병 고치는 일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그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가 명실상부한 의술의 신이라 할 수 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테살리아의 왕녀코로니스와 아폴론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그가 태어난 과정이 상당히 극적이다.
코로니스가 아폴론과 떨어져 있는 사이인간인 이스퀴스와 바람이 났는데, 이를 알게 된 아폴론이 노하여 활을 쏘아 그녀를 죽였다.
아폴론이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활을 쏜 것을 후회하고 코로니스에게날아왔을 때, 그녀는 죽어가며 아폴론의 아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아폴론은 즉시 아이를 코로니스의 뱃속에서 꺼내 살려냈다.
그 아이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다.
그 후, 아폴론은 자신의 수제자 켄타우로스(반인반마)의 현자(賢者) 케이론에게 아들을 맡겨 의술을 배우게 한다.
트로이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스승이기도 했던, 지혜로운 자요 의사(醫師)인케이론은 스승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를 정성을 다해 키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성장하며 점점 명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도 능히 살려낸다"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와 뱀과의 관련한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어느 날, 아스클레피오스가 제우스의벼락을 맞고 쓰러진 글라우코스를 치료하려 할 때였다.
안타깝게도, 아스클레피오스가 글라우코스의 상태를 살필 때는 이미 그가 죽어 있어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방안에 뱀 한 마리가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한 아스클레피오스는 깜짝 놀라 그 뱀을 죽였다.
그런데, 잠시 후 다른 뱀 한 마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뱀은 입에 약초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을 죽은 뱀 위에 놓자 놀랍게도 죽은 뱀이 다시 살아났다.
신기한 광경을 본 아스클레피오스가 재빨리 약초를 집어 글라우코스 입 위에올려놓자, 그가 기적처럼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 후, 그 뱀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아스클레피오스는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의료 단체나 의무병들의 휘장이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로표시되는 유래이기도 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부인 에피오네와 사이에 트로이 전쟁에 나가 싸운 두 아들 외에 4명의 딸이 있었다.
"의료"라는 뜻의 맏딸 이아소, "만병통치"라는 뜻의 둘째 딸 판아케아, "광명"이라는 뜻의 셋째 딸 아이글레 그리고 "위생"을 뜻하는 넷째 딸 휘게이아가 그들이다.
네 명의 딸 중, 아스클레피오스는 넷째휘게이아를 특별히 사랑했는지 석상이나 부조에는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이 유난히 많다.
오늘날, 약학대학의 심벌이 된 "뱀이휘감긴 잔"은 휘게이아의 상징이다.
휘게이아는, 또, 위생을 의미하는 영어 어휘 "하이쥔(Hygiene)"을 선물했다.
역시, 의학과 관련한 영어 단어 중 만병통치약이라는 뜻의 "팬어시어 (Panac- ea)"는 둘째 딸 판아케아가 어원(語源) 이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죽음은 숙명처럼찾아왔다.
어느 날, 아버지 아폴론의 쌍둥이 여동생아르테미스가 죽은 히폴리테스를 데려와살려 내라고 명령을 한다. (히폴리테스는 아테네의 창업자 테세우스의 아들로, 아르테미스의 숭배자였다. 그는 아버지와 의 불화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여신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히폴리테스를 살려낸다.
그러자, 그동안 벼르고 있던 저승의 신 하데스와 운명의 여신들은 제우스를 찾아와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아스클레피오스를 더 이상 살려두어서는 안된다며 강력하게 청원을 한다.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아스클레피오스와 히폴리테스를 함께 벼락을 쳐 죽였다.
분노한 아폴론은 제우스에게 벼락을만들어준 퀴클롭스를 활을 쏘아 죽이고, 제우스는 아폴론을 달래기 위해 아스클레피오스를 하늘에 올리어 땅꾼자리 별 의 주인이 되게 한다.
신화의 시대 이후, 의학의 선구자는 단연히포크라테스다.
히포크라테스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질병을 "신의 노여움 때문" 혹은 "귀신이들렸다"라는 종교적 신비주의로 접근했었다.
따라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술을 학문적개념으로 분리해 연구했던 히포크라테스를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세계의 모든 의과 대학 졸업식에서히포크라테스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은, 인류의 의학 분야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떤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아래 세 가지 점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듯하다.
첫째, 히포크라테스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자손이라는 주장이다.
일부 고문서(古文書)에는 히포크라테스가 아스클레피오스의 18대 자손이라는기록이 있다.
신화 자체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던플라톤마저 이런 주장을 두둔했지만, 신화의 시대와 철학의 시대 인물들을직접적 가계(家系)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둘째,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이다.
의사인 히포크라테스는 예술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따라서, 히포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그가 말한 "인생은 짧고 의술의 길은멀다"라는 문구가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이를 다시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변질된 문구로 보인다.
셋째, 의학을 과학으로 이끌었던 위대한 히포크라테스에게도 불편한 진실은존재한다.
히포크라테스는 "헬라인(그리스인)은타 인종에 비해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갖고 태어난 우수한 민족"이라는 사고를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여러 고전에 언급된 히포크라테스의 이런 세계관은 분명히 그가 인종 차별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갖고 있던 헬라스인 선민의식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언젠가 대한의사협회의 한 회원이 기고한 "협회의 심벌마크를 바꿔야 한다"라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단체의 마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필요는 없다"라고 주장하면 별일 아니지만, 그리스 신화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보기에는 어색한 것은 사실이었다.
태극 문양 안에 그려 넣은 그림은 분명히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 듯 봐도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두 마리의 뱀과 위쪽의 독수리 날개는 제우스의 전령이며 상업과 여행의 신인 헤르메스가 들고 있는 지팡이와 거의 비슷하게 닮았다.
의사협회가 그 휘장의 문양을 아스클레피오스의 뱀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잘 한 일로 보인다.
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정부와 의사협회와의 대립이 첨예화하고 있다.
이틀 전(3월 3일)에는 4만 명의 의사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정부 정책에 항의 하는 집회를 가졌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적 행동에 대해, 여론이 호의적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강력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