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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에게 길을 묻다

8월 초까지 유럽의 산불이 맹위를 떨치다 조금 기세가 꺾이나 싶더니, 하루 이틀 사이에 다시 무섭게 번지고 있다. 8윌 15일, 16일 외신에는 "Europe is burning aga- in: 유럽이 다시 불타고 있다"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띄게 많이 보인다.

바쁘게 살다 보면,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후변화와 같은 막연한 이슈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기온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치솟고 통제 불능의 산불이 여기저기서 일어나자, 올여름 유럽인들은 큰 충격에 빠진 듯하다.

엄청난 산불로 비상사태까지 선포한스페인은 월드컵 우승이라는 국가적 경사마저 잠재워 버렸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큰 피해를 주고 있는 라만차(La Mancha) 지역의 산불을 집중 보도한 일이 있었다.

"라만차"라는 지명 이름은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친숙한 이름이 다. 필자도 꼭 한 번 여행해 보고 싶은 곳이라 이번 재난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라만차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소설 <돈키호테: Don Qu- ixote)의 무대가 된 고장이다. 돈키호테가풍차를 거인으로 여기고 모험을 벌였던 곳이 바로 라만차 지방의 몬티엘(Mont- iel) 평원이다.

우리가 "돈키호테"라고 부르는 소설 제목은 원제목의 줄임말이다. 소설 <돈키호테> 는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어진 작품으로, 전편은 1605년에 발표되었고 후편은 10년 후인 1615년 발표되었다. 전편의 원제목은 <라만차의 기발한 신사 돈키호테: The Ingenious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이며, 후편은 <라만차의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The Ingenious Knight Don Quixote De La Mancha> 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읽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돈키호테>는 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필자에게도 잔잔한 글씨로 인쇄된 1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펭귄출판사의 <돈키호테> 영문본을 들고부담스러워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독자들은 비로소 <돈키호테>가 왜 탁월한 작품인지 알게 된다. 정신 이상이 온 노인이 낡은기사복에 자기 집 늙은 말 '로시난데'를 타고 순진한 마을 판사 '산초'를 종자(從者) 삼아 가상의 공주 '둘시네아'를 그리며,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는 작품구성 자체가 17세기 초에는 상상하기 힘든일이었다. 그리스 비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던 서구 문학에서, 세르반테스는껍질을 단번에 깨고 그렇게 근대 소설의 문을 활짝 열었다.

무적함대의 보급 담당관이었던 세르반테스는 세금 징수원으로 일했다. 융통성 없는 그는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고, 또, 공금을 맡겨 놓았던 업자가 파산함으로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풀려난 몇 년 후 그는 다시 억울한 이유로 투옥되어야 했다. 소설 <돈키호테>는 그 감옥에서 불운과울분의 시간을 보내던 세르반테스의 구상에서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난 작품이다.

빼빼 마른 정신이상자 돈키호테가 정의를 외치며 거짓과 위선의 세상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어쩌면 감옥에서 울분과 싸우던세르반테스 영혼이 투영되어 있는 자신의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탄생한 <돈키호테>는 수사학자들과 문법학자들에게 큰 논란을 던져주며 인류에게 새로운 문학 장르를 선사했다.

<돈키호테>는 희극으로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이다. 20세기 스페인의 대표적 철학자이며 문학 비평가인 '호세오르테카 이 가세트(Jose Ortega y Ga- sset)'는 1912년 <돈키호테 성찰>을 썼다. 그의 책에 담겨 있는 아래와 같은 구절을 보면, 우리는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를 우스꽝스러운 노인으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영웅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모험의 의지다. 성공적인 모험은 헛된 꿈일 수 있으나 그 의지는 실재하는 것이고 진정한 것이다. 모험은 무엇보다 염원하는 것이고, 여기서본질적인 것은 모험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따라서 모험은 내부적으로 이중성을 갖는 다. 즉 거기에는 실재와 비실재가 공존 한다."

필자는 <돈키호테>를 읽은 후, 여행과모험이 만들어내는 작품 속의 수많은 에피소드와 분위기에서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허만 멜빌의 <모비딕> 과 유사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괴테와 허만 멜빌이 <돈키호테>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근대 서구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 하다. 독일의 철학자 셀링(Schelling 17- 55-1854)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을 꼽으라면 <돈키호테>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세르반테스를 숭배했으며, <돈키호테>야말로 인간사고에 대한 가장 위대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소설 <백치>를 세르반테스에게 헌정했다.

이렇게 <돈키호테>가 세계 문학사에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라는 이름이 풍자와 허풍의대명사로만 갇혀있으니,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돈키호테가그런뉘앙스의 말로 사용되는 것은 동서양이마찮가지다.

돈키호테에 어원을 두고 있는 대표적인 영어 단어는 "Quixotic(퀵사틱)"이다. 짐작대로, 이 어휘는 형용사로 "돈키호테 같은", "공상가의", "터무니없는", "비현실적인"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엉뚱하고기발하다는 뜻도 있지만, 황당하고 정신나갔다는 다소 조롱 섞인 뉘앙스도 갖고 있는 복합적인 단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인물이 있다. 유시민 작가다. 그가 몇몇유튜브에 나와 이재명 정부에 대해 신랄한비판을 쏟아내자 여론은 양쪽으로 나뉘어서로를 비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20여 년 전 학원을 운영하던 때,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유시민의 글을 매우 좋아하고 있는 현상이었다. 특히, 그의 저서를 작문지침 양서로 받아들이는 국어 교사들까지 있어 상당히 놀랐다.

그런데 그들과 달리, 70/80 학번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유시민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그가 보여주었던 정치적 행보 때문이다. 유시민은 대체로 조직의 건설적 화합과 협력보다는 분열과파괴적인 현장에 있었다.

특히, 유시민을 "영남 엘리트주의자"로 보는 사람도 많다. 그가 정치권에 있을 때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김대중, 강준만, 정동영이 모두 호남 출신이었다는 점도, 마음속에 영남 우월의 지역주의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받게 만들었다. 그는, 또, 학벌과 관련한 여러 번의 논란을 일으키며 천박한학벌 엘리트주의자라는 인상을 풍겼다.

유시민은 자신의 이상을 현실 정치에서펼쳐보지 못한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정치권을 떠나며 놀라운 변신에 성공을 한다. 집필 활동을 하고 다양한 교양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어느 사이에 따뜻한 이미지의 지식인으로 위치를 굳혔다. 그는 스스로 작가라 불러 주기를 원하고 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놓으며 상당한 부도 축적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누가 봐도 부러울 것이 없는 그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이재명 정부와 각을 세우고날선 비난을 하며 정치판으로 뛰어드는지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정부를 비난하는 그의 눈빛은 변해 있었다. 작가 유시민이 아니라 옛날 상대를 거칠게쏘아붙이던 정치인 유시민의 눈빛이다. 그는 여러 유튜브에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대중에게 자신의 행동을 이해 시키고 주장을 정당화하기에는 한참 부족 하다.

김대중의 동교동계와의 첨예한 대립을극복하고 노무현 정부를 세우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거쳐 문재인 정권에 이를 때까지 진보 진영의 대표 스피커로 확실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 유시민에 대한 일반적 평가다. 그렇다면 그는 현실 정치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을 즐겼다고볼 수도 있다.

유시민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대상이 김대중의 동교동계다. 김민석은 김대중이 만든 인물이다. 그는동교동계의 몰락과 함께 18년 동안 정치변방을 떠돌며 절치부심했다. 그런 김민석이 이재명 정부에서 대중적 지지를 모으며실세로 떠오르는 것에 대해 유시민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대강은 짐작이 간다.

만약, 유시민이 이재명 정부의 앞날을걱정해서가 아니라, 정치인으로 마음속에 남아있는 회한이나 지금까지 누리던 무형의 권력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그런 행동을 취했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그는 자신의 번뇌와의 싸움에서패배한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혹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돈키호테의 후편에서 돈키호테와 그의종자 산초는 여행 중에 한 공작(公爵) 부부를 만난 일이 있다. 공작은 산초의 평생소원이 영주가 되어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장난기가 발동한 공작은부하들과 짜고, 산초를 자신의 영지인 섬의 영주로 임명을 해주고 구경거리를 만들었다.

희극의 주인공이 되어 떠나는 자신의분신 같은 산초를 걱정하며 들려주는 돈키호테의 진지한 충언은 독자들을 숙연하게 한다. 돈키호테는 두 가지를 당부했다. 그는 첫 번째로 모든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라고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을 이렇게 말했다.

"Secondly, you must always rememb- er who you are, and try to know your- self, which is the most difficult know- ledge of all to acquire. Knowing your- self will stop you from puffing your- self up as did the frog that wanted to be the equal of the ox."

"둘째, 너는 항상 네가 누구인지 잊지 말아야하고, 너 자신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너를 안다는 것은 네가 얻을 수 있는 지식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다. 너 자신을 알게 되면, 너는 개구리가 황소가 되려 하는 어리석은 허세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성찰의 삶을 사는 지혜는 권력과 부와 같은 사회적 성공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우리는 큰 성공을 이룬 인물들이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패망의 길로 들어서며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숱하게 목격 했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늘 자기를 돌아보고, 때를 가려 행동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 있던 문구를 소크라테스가 인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델포이 신전 상인방(上引枋)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쓰여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다. 그러니 신화의 시대에도 자신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숙제였던 모양이다. 어쩌면 인간은 죽는 날까지 자신을 알아가며 성숙해 가는 존재인지 모른다. "너를 안다는 것은 내가 얻을 수 있는 지식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한 소설속 돈키호테의 말이 오늘따라무겁게 다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