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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快刀亂麻)

얼마 전에 자영업을 하는 후배를 만난 일이 있었다. 그날따라 후배는 유난히 표정이 밝고 어딘지 모르게 들떠있는 듯 보였다. 차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아들이 로스쿨을 마치고 검사가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판사나 검사가 나오면 집안의 큰 경사로 여긴다. 집안에 판사나 검사가 있다는 것은 권력과 연관 지으며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직계 가족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까운 친척들까지 목에 힘을 주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사실, 법원이나 검찰청에 가면 죄지은 일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든다. 어쩌다 사건에 연루되어 법조인과 대화를 하거나 서류를 꾸밀 때면, 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 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평범 하지 않은 그런 어휘 하나하나가 왠지 신분의 우위를 나타내려는 권위적 행태처럼느껴진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법조인들의 독특한 어휘 사용은 서구 사회에서도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Subpoena(서피나: 소환장), Affidavit (에퍼데이빗: 진술서) 같은 단어들은 원어민들에게도 친숙해 보이지 않는다. 또, Per Curiam(퍼큐리엄: 전원 합의제) 같은 단어는 라틴어에서 금방 차용해 온 느낌까지 들 정도로 낯설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 그리스 신화의 시대에도 "라도만토스법"이 있었고, 법을 관장하는 여신 "테미스"가 있었다. 그녀는 정의의 여신 "디케"의어머니이니, 분명히, 법은 정의를 실현하라고 만들어졌다.

테미스 여신은 지금도 세상의 법원 앞에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서 있다. 석상이나 그림에서 그녀의 눈을 가린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눈을 가린 채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테미스는 세상의재판관들에게, 법의 집행은 인정이나 사심을 버리고 오직 공정과 정의의 이름으로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검찰에 보완수사권을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꽤 시끄럽다. 나라마다 제도와 상황이 다르지만, 어차피법 시스템이 서구 선진국에서 들어왔고, 먼저 체계를 완성했기 때문에 형사 소송의 주요 두 축인 "수사"와 "기소"에 대해 기본적인 의미를 따져보는 것도 유익해 보인다.

범죄가 발생하면, 수사를 하는 수사관을"인베스티게이터(Investigator)"라고 한다. 그리고 수사를 마무리한 인베스티게이터는 결과를 검사에게 보내 기소 여부를의뢰하게 된다.

그 검사를 "프라시큐터(Prosecutor)"라고 한다. 프라시큐터는 "소추자"라는 뜻이다. 소추(訴追)라는 말은 기소보다는 넓은 의미를 갖고 있지만, 기소와 동일한 뜻으로사용될 수 있는 법률 용어다.

서구 선진국에서도 대체로 검사가 일정 부분 수사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수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전, 수사 과정에서 부실수사나 과잉수사 혹은인권침해같은 일이 없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검사의 일반적인 업무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한국의 검사는 직접 수사를 하며 기소권까지 갖고 형사 사건 프로세스의 권한을 독점했다. 다시 말해, 검찰은 인베스티게이터와 프라시큐터의 권한을 다 틀어쥐고 있던 기형적조직 이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 검찰은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어 분수를 모르고 힘을 남용하다 스스로무너진 꼴이 되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 형사소송 시스템을"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사"라는 큰 틀의 방향으로 개혁하려는 시도는 선진적이며바람직하다. 그런데 정치적 사건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형사 사건에서, 경찰의 수사권을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검사 수사권 까지 박탈하는 것은 분명히 또 다른 문제를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견제가 없는 수사권을 갖게되는경찰은 필연적으로 권력 남용과 부패에서벗어날 수 없다. 경찰이 검찰보다 더 정의롭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지극히 순진한 생각이다.

최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장윤기 여고생살인 사건은 경찰의 사건 은패, 조작의 실례다. 그동안 검찰이 정치적 사건을 조작 하고 과잉 수사를 했던 것처럼 경찰도견제장치가 없으면 얼마든지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집단이다.

'23년 말 배우 이선균 사망 사건은 경찰의 과잉 수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본보기이다. 당시 경찰은 불필요한 이선균의 사생 활을 언론에 계속 흘리고, 그를 포토 라인에 세우며 인격적 모욕을 주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이런 경찰의 행태는 검찰의특수부에서 일삼았던 위법적 언론 플레이와 판박이였다.

둘째, 경찰은 무력을 갖고 있어, 수사권을독점하게 되면 검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경찰이 갖고 있는 물리적 힘은 검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따라서 경찰이 수사권을 무리하게 사용하면 대단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국가 권력을 과도하게 사용 하고, 범죄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기관이경찰이다.

셋째, 경찰은 민생과 직결된 기관이라, 이들에게 견제 장치가 없는 수사권을 주면 그 피해가 일반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미치며 방어권이 무력화(無力化) 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검찰의 조작 과잉 수사 등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정치 수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비정상적으로 권한을남용하게 되면, 근접성 때문에 그 피해가일반시민들에게 고스란히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결국, 위와 같은 상황들을 고려하면민생에 관련된 형사사건은 검찰에 최소한의 수사권을 남겨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검찰의 수사권은 수사 개시권이 아닌 수사 보완권이어야 하며, 인력과 조직이제도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아래에서다.

근래 민주당 일부 사람들의 "검찰에게는일체의 수사권을 주어서는 안된다"라는 목소리는 논리가 빈약하고 억지스럽다. 당연히 이재명 대통령의 "경찰에 과도한 수사 권한이 집중되었을 때 이를 견제할 방법을 숙의해야 한다"라는 말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사려 깊은 질문이다.

역사 속에서는 "쾌도난마"에 비유되는 많은 일화들이 있지만, "알렉산드로스와고르디아스 매듭"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는 없다. 지금은 터키 땅인 고대 그리스 시대 소아시아의 프리기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옛날 프리기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신의 명령이 내려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것은 테르미소스 제우스 신전의 신탁이었다. 내용은 "처음으로 우마차를 타고테르미소스 성에 들어오는 자가 프리기아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이었다.

어느 날 농부 고르디아스는 아무 생각 없이 아내와 함께 우마차를 타고 테르미소스 성으로 들어왔다. 그를 본 프리기아 사람들은 "우리의 왕"이라 소리 지르며반겼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고르디아스에게 그들은 신탁의 예언을 설명하고 왕이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신의 뜻을 거부할 수 없었던 그는 프리기아의 왕이 되었다. 이렇게 왕이 된 고르디아스는 행운을 가져다준 우마차를 제우스 신전에 바치기로 했다. 그는 산수유나무가지로 꼰 줄로 신전의 기둥에 우마차를 단단히 묶게 했다. 세월이 가며 묶인 끈의양쪽 끝은 사라지고 매듭은 하나의 뭉치 처럼 단단히 굳어져 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고르디아스의 매듭을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라는 신탁 이 전해졌다. 수백 년 동안 용사와 현자라불리던 숱한 사람들이 신전을 찾아와 매듭을 풀려 했지만 모두가 실패했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고르디아스의 매듭은 이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가던 무렵인 기원전 334년 군대를 이끌고 가던 한 청년 장군이 이곳을 지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였다. 그도 고르디아스의매듭 이야기를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

젊은 장군은 신전 안으로 들어서 천천히우마차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한동안매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알렉산드로스는 갑자기 칼을 빼들더니 매듭을 향해 내리쳤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애를 태우던 고르디아스의 매듭은 이렇게 한순간에 풀어졌다.

신전 안은 처음 놀라움으로 쥐 죽은 듯조용하다 곧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했다. 병사들은 "신이 내린 영웅"이라며 소리쳤다. 그리고 얼마 후, 청년 알렉산드로스는 신탁의 예언처럼 "세계의 왕"이라불리던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무너뜨리고 아시아의 왕이 되었다.

우리 현대사에도 좀처럼 풀기 어려웠던난제를 쾌도난마의 고사(故事)처럼 단칼에정리한 지도자가 있었다. YS라 불리던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물론 그의 정치적행적에는 공(功)과 과(過)의 논란이 있다. 그러나 "하나회 해체"나 "금융실명제" 같은 이해관계가 뒤얽힌 문제는, "YS가 아니면 풀기 어려웠다"라는 견해에는 모두가 이견이 없다. 그는 합의를 만들기 가 난망했던 이런 문제들을 놀라운 결단으로 단숨에 해결했다.

필자는 만약 YS가 살아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진영으로 갈라서 심각하게 대립하고 국력을 소모하고 있는 "사법개혁"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릴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있다. 그는, 틀림없이, 이 어젠다(Agenda)의 핵심을 찌르는 공격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법조인의 "전관예우"를 근본적으로차단하는 조치다. 여기서 법조인이라 함은판사는 물론이고 준사법기관인 검사와 경찰의 고위직을 포함해야 한다.

법조인들이 끈끈한 인맥을 만들어 서로도와주고 밀어주는 구조를 사람들은 "법조카르텔"이라 말하고 있다. 원래 카르텔(Cartel)이라는 어휘는 "기업이 경쟁의제한이나 완화를 위해 협정을 맺어 독점적 지위를 형성한다"라는 경제적 용어다.

카르텔의 목적은 언제나 돈이다. 당연히 사법 카르텔도 결국 그 귀결은 돈이다. 많은 판사, 검사, 고위공직자들이 정의와공정을 말하며 조직을 지키려 애쓰는 것도 미래의 돈 때문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논리의 비약처럼 들리지만, 분명히, 그 돈줄을 끊어야 사법 개혁이완성될 수 있다.

공직에 있으며 합당한 급여를 받고퇴직 후에는 연금을 받는 위치에서, 로펌에 들어가 몸담고 있던 조직의 권력과인맥을 이용해 다시 막대한 돈을 버는전관예우는 후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부끄러운 한국 사법제도 안의 패거리문화다.

판사, 검사, 경찰 고위직 공직자들의 퇴임후 로펌 취업이나 변호사 업무를 일정 기간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전격적으로시행하기 어렵다면, 점차적으로라도 시행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로스쿨 졸업생이나사법시험 합격자들이 공직으로 갈 때, 퇴임후 3년 혹은 5년 동안 변호사 자격 정지와로펌 취업 금지와 같은 법적 제도를 만들고임용하면 된다.

전관예우는 사법부뿐만 아니라 경제관료와 같은 조직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사회의 거대한 파워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조직을 개혁한다는 것은 엄청난 저항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초일류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산이다.

선진 강대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결정적 시기에, 시대착오적 이념과 기득권의 저항 앞에 서 있는 지금의 부조화의 현실이 아쉽다. 앞이 안 보이고 갑갑할 때 우리는 지난 시절의 큰 지도자를 생각한다. 한 시대를 함께 살다 먼저 떠난 쾌도난마의 지도자YS가 그리운 것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