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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제국 스타벅스

커피의 종류는 세 가지뿐이다. 아라비카(Arabicas), 로부스타(Robustas), 리베리카(Libericas)다. 생산량으로 살펴보면아라비카가 약 70퍼센트, 로부스타가 약30퍼센트를 차지하고, 리베리카 생산량은2-3퍼센트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아라비카는 주로 브라질과 콜롬비아 같은 남미의 고산지대에서 많이 생산된다.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여 고급 커피로 통용된다. 로부스타는 지형이 낮은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 비교적 카페인 함량이 높아 아라비카보다 등급이 낮은 커피로분류되어 인스탄트커피 제조에 많이 사용 된다.

일반적으로 커피가 유럽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커피는 아랍에서 시작된 기호식품이다. "Coffee"라는 영어 단어 자체가 이슬람 국가인 16세기 오스만 제국에서 온 말이다.

커피가 아랍 문화권에 최초로 뿌리를 내린 이야기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략이렇다. 원산지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된 커피가 이슬람 국가들로 흘러 들어왔다. 처음 이 커피를 마신 사람들은모스크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이슬람 지도자 이맘(Imam)이었다. 맛으로 마신 것이 아니라 철야 기도 시, 순전히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커피가 유럽으로 들어온 계기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 침공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후 커피가 본격적으로 수입되어 유럽인들의 기호식품이 된 것은 해상무역 공국베네치아가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커피가 지금의 예멘의모카항에 집합되어 베네치아로 수입되고, 이를 전 유럽으로 보급하였다.

이탈리아가 커피 생산국이 아니면서 커피 강국이 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무관치 않다. 사실, 커피숍 메뉴판에 적혀 있는 "에스프레소(Espresso), 카페라테(Cape Latte), 마키아토(Macchiato)" 같은 이름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태어난말들이다.

유럽에 커피숍이 처음 생긴 곳은 역시베네치아다. 1645년 세워진 "보테가 델카페(Bottega Del Caffe)"가 그곳이다. 그런데 카페는 1652년 영국의 런던 옥스포드에 문을 열며 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최초 문을 연 10년 후에 런던에만 3000개가 넘는 카페가 생겼다니 놀랍기만 하다.

당시 "커피 하우스(Coffee House)"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했던 런던의 카페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성황을이루었다. 참고로 "카페(Cafe)"라는 어휘는 후에 프랑스 파리에 커피숍이 정착하며국제적 공인 단어로 발전하게 되었다. 런던의 커피 하우스 중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두 곳이 있다.

그중 하나가 "로이드 커피 하우스(Lloyd's Coffee House)"다. 이름에서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커피 하우스에는 해상 보험 업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다졌다. 그들은 후에 보험 협회를 결성하였다. 협회는 오늘날 세계 최고 권위의 해상보험, 재보험 회사인 로이드런던의 모태가 되었다.

두 번째는 "조너던 커피 하우스(Jonath- an's Coffee House)다. 로이드가 해상보험업의 발원지였다면, 조너던에서는증권업이 태동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너던 커피 하우스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증권을 사고 팔았다. 지금의 세계 주요 증권거래소 중 하나인"런던증권거래소(London Stock Exch- ange)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지본주의가 발호하고, 이를부화시킨 곳이 바로 카페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런던에서 커피 하우스가 번창한 얼마 후 대륙 쪽의빈과 파리에 수많은 카페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이곳에 사상가, 음악가, 화가, 작가들이 드나들며 유럽의 예술과 철학을 찬란하게 꽃피웠다.

대부분의 업종이 그랬듯이 커피 사업도 미국에 와서 글로벌 비즈니스로 발전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스타벅스(Starbucks)다. 사람들에게 스타벅스 하면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하워드슐츠(Howard Schultz)다. 그가 오늘날커피제국 스타벅스를 만든 사람이다.

스타벅스의 창업자는 하워드 슐츠가 아니라 따로 있다. 제리 볼드윈, 고든 보커, 지브 시글이다. 세 사람은 샌프란시스코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들이다. 이들은 기숙사에서 한 방을 사용하며, 졸업 후 사업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커피 원두 판매회사를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회사 이름은 세 사람이감명 깊게 읽었던 허만 멜빌(Herman M- elville)의 해양 모험소설 <모비딕:Moby -Dick)에서 일등항해사로 등장하는 "스타벅(Starbuck)"으로 결정했다. 스타벅스(Starbucks)라고 복수형 "s"를 붙인 것은 세 사람의 스타벅이 회사를 공동 경영 한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또, 회사의 심벌마크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치명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며 뱃사람들을 홀렸던 여신 "사이렌(Siren)"으로 정했다.

세 사람은 1971년 시애틀에 최초의 커피원두 소매점을 열었다. 이런 평범한 원두판매회사 스타벅스는 1981년 창업자들이복사기 제조업체 제록스의 세일즈맨 출신 하워드 슐츠를 만나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퀀텀 리프(Quantum Leap), 비약적인발전의 계기를 얻는다.

1982년 스타벅스의 마케팅 부서장으로입사한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 밀라노 생필품 박람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들른 한 카페에서, 그는 바리스타와손님들이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따뜻한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영감을 얻게 된다.

미국에 돌아온 슐츠는 경영진에게 이탈리아 카페를 설명하며, 커피를 직접 내려 파는 매장을 운영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창업자들은 두 나라와의 문화적차이를 문제 삼으며 난색을 표했다. 카페경영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었던 슐츠는, 결국, 1985년 스타벅스를 떠난다.

스타벅스를 사직한 하워드 슐츠는 "일 지오날"이라는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를 설립하여 성공적인 출발을 하였다. 공교롭게 슐츠가 사임한 후 스타벅스는무리한 확장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스타벅스 경영진은 슐츠에게 회사인수를 타진해 왔다. 그 거래가 성사되어슐츠는 1987년 380만 달러(약 43억 원) 에 스타벅스를 인수하게 된다.

슐츠가 회사를 인수한 1987년을 실질적 창업 연도로 본다면, 스타벅스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타벅스가 빠른 속도로 성장했던 동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는 그 당시 미국의 혁신기업 창업 붐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젊은엔지니어들은 열정적으로 일하며 한 손에 스타벅스 컵을 들고 있었다. 그것이 미국 젊은 엘리트들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회사의 빠른 성장을 도왔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비약적인 성장에는CEO 하워드 슐츠의 커피에 대한 열정과리더십이 절대적이었다. 스타벅스는 19 87년 6개에 불과하던 매장을 2026년 초 전 세계에 4만여 개로 확장했으며, 베이커리와 같은 다양한 연관 분야로 사업을개척해 왔다.

스타벅스는 1987년부터 일관된 경영 철학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전 세계 매장을직영으로 운영하며, 균일한 맛을 유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여행하다 보면 도쿄나 파리 혹은 이스탄불이나 로마에서 마시는아메리카노의 맛이 서울의 스타벅스 매장과 같다는 것을 알고 놀라기도 한다.

스타벅스에는 일반적인 기업과 다른 독특한 문화가 있다. 보통 기업들은 고객을 "고객은 왕이다" "고객의 말은 모두옳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고객 제일주의를 표방한다.

그러데 스타벅스는 "고객은 언제나 2등이다"라는 슬로건을 갖고 있다. 언뜻 보면엉뚱한 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이 행복하다"라는 수준 높은 고객서비스를 구현하려는의지의 구호다.

"직원 행복 우선"은 하워드 슐츠가 1983년 밀라노의 카페를 방문했을 때,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던 행복한 바리스타의 모습에서 얻었던 영감과 일치한다. 슐츠의 이 놀라운 감성에서 시작된 "커피와 함께하는직원과 고객의 행복"이라는 고급문화는 미국 사회에 뜨거운 반향을 불러왔다.

거침없이 성장하던 스타벅스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2000년 하워드 슐츠는 스스로"열정이 식었다"라고 판단하며 CEO에서물러났다. 그는 이사회 의장직에 머물며경영 실무에서는 손을 뗐다. 그 후 2007-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가 터져 미국은소비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경제 상황을 맞게 된다.

당시 미국의 커피 시장에는 맥도날드와던킨 도너츠가 저가 커피를 들고 진입해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태였다. 상황을 더 심각하게 했던 것은 CEO 짐 도널드가 그동안 무리한 확장을 추진함으로 찾아온 재정적 압박이었다.

위기에 빠진 스타벅스를 구하기 위해 하워드 슐츠가 CEO로 다시 등판하게 된다. 탁월한 경영자는 늘 위기가 왔을 때 그 진면목을 보여준다. 하워드 슐츠는 CEO로 취임하자 곧바로 문제의 핵심을찌르며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2008년 2월 어느 화요일 오후, 슐츠는 미국의 7100개 스타벅스 전 매장의 문을닫아 버린다. 그리고 매스컴에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포스팅했다.

"We're taking time to perfect our espresso. Great espresso requires practice." "저희는 (우리만의) 에스프레소를 완성 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있습니다. 훌륭한 에스프레소는 (충분한) 훈련을요구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가 "고품질의 커피"를 갖고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선언이었다. 슐츠는 동시에 미국 내 600개의 매장을 폐쇄 하고 550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발 빠르게 실행했다.

당시 스타벅스가 새로운 스타벅스로 태어난다는 각오로 벌인 캠페인이 "온워드(On- ward: 전진)" 운동이다. 그때의 과정을 소개한, 하워드 슐츠와 전 포브스 기자 죠앤고든이 공동 집필한 <Onward>라는 책이 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던 그 책을 필자도 정독했던 기억이 있다.

<Onward>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주제는 "고품질 커피"와 "존중"이다. 고품질 커피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직원과 고객 간 상호 존중의 문화를 형성하겠다는 스타벅스의 제2 창업 운동이었다.

Onward 캠페인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으며, 스타벅스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비상할 수 있는 모멘텀을 얻게 된다. 그리고 하워드 슐츠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다시 한번 자신이 탁월한리더임을 입증하였다.

요즘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조롱하는 듯한 "탱크 데이(Tank Day)" 프로모션 행사를 시행해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평범한 시민들은 자해적인 스타벅스의 이런 기괴한 행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시민들은 스타벅스 코리아의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신세계 그룹 회장인 정용진의 거취를 주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극우적 행태를 보여온 그가, 어떤 형태로든 이 행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주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분명히, 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관용의 범위를 벗어났다. 오늘날 세계 속으로 웅비하는 K-컬처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K-디마크러시(K-Democra- cy), 대한민국 민주주의다. 그리고 그 K-민주주의 큰 기둥 하나가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 이런 위대한 민족의 유산을 사회적책임이 있는 대기업이 조롱하고 폄훼하는행동은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5년 전 정용진 회장의 "멸콩" 사건이 있었을 때, 정 회장이 유사한 비생산적이데올로기 논란을 계속 일으킨다면, 스타벅스 미국 본사와 법적 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칼럼을 쓴 일이 있다. 불행하게도 정 회장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극우적 행태를 보이며 성찰하지 않았다. 참으로사리분별을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이다.

스타벅스 시애틀 본사는 이 사건을 일시 적 소동으로 치부하고 가볍게 여기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강력한트렌드 창조 국가가 되었다. 이렇게 다이나믹하고 폭발력 있는 국가에서 스타벅스 가 민주화 운동을 조롱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하워드 슐츠가 이루고자 했던 스타벅스 정신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2008년 위기가 찾아왔을 때, 스타벅스의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생명을 지키려 어떻게 싸웠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지금 다시 스타벅스 가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취할 것인지 큰 관심 갖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