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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Siddhartha)

몇 년 전부터 5월이 오면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작품에 대한 글을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헤세는 1877년 독일의 남부 소도시 칼브(Ca- lw)에서 선교사였던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와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청소년기 방황은 질풍노도와 같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헤세의 영혼의 세계는자유로웠다. 그런 그에게 엄격한 개신교선교사 가정환경은 피할 수 없는 정신적충돌을 불러왔을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어린 나이인 15살 때 정신 병원에 입원해치료받았던 이력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조국 독일과도 이념적 대립을 했다. 그가 전쟁의 주체였던 독일의 폭력성을 비난하자, 독일인들은 그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찍었다. 화해할 수 없는 그 갈등이 헤세가독일을 떠나 스위스인이 되어 영구 정착한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헤세가 어머니와 불화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헤세는 어머니와 거의 의절하고 살았으며, 어머니도 그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일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데미안>에서 주인공 화자(話者)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 작품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부분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문이 열리자 키가 훤칠한 부인이 검은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시간과 나이를뛰어넘어 데미안과 꼭 닮은 그녀는, 내면의 강인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기품이 넘쳐 보였다. 부인은 나를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문장은 어머니와 평생 불화했던 헤르만 헤세의 아픔과는 지극히 대립되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는, 어쩌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통해서 이상 속 어머니를그리며 자신을 괴롭히는 고뇌로부터 탈출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헤세가 세상의 고통과 번뇌로부터 멀어져 쉬고 싶어 했던 안식처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불교였다. 평론가들은 헤르만 헤세가불교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헤세는 피상적 관심를 뛰어넘어불교에 귀의했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다른 작품에서도 언뜻언뜻 불교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지만, <싯다르타>는주제는 물론 전체적 내용 자체가 불교다. 1922년 발표한 <싯다르타>는 헤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보편적 인간애(人間愛)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으며 철학적 깊이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가 헤르만 헤세의 철학과 사상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는<싯다르타>는, 고대 인도 석가모니 시대의 한 브라만 귀족의 저택에서 시작한다.

소설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갯버들숲, 무화과나무, 망고나무숲 등과 같은 어휘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가 친구 고빈다와 함께 강가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힌두의 신성(神性) '옴(Om)'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싯다르타 아버지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다.

싯다르타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정이남다른, 준수한 외모의 귀족 청년이었다. 싯다르타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로 인해 늘 행복해했다. 함께 거리를 걸을 때면, 뭇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부모는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청년 싯다르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채워지지 않는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누가 우주를 창조했고, 힌두의정체 아트만(Atman)은 무엇이며 육신을넘어선 자아(Self)는 어디에 있는가 등의질문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결국, 나중에는 아버지와 스승과 현자들의 가르침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금욕적인 수도자 '사문(Samana)' 무리가 마을을 지나가게 된다. 싯다르타는 그들을 따라 수도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버지 방문 앞에서 밤이 깊도록서 있었다. 아버지는 결국 그의 출가를 허락 하게 된다. 날이 밝자 그는 곧바로 마을을 떠났다. 그의 뒤에는 친구 고빈다가 따라 오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집을 떠나며 마음속에 하나의소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 허영, 희망 그리고쾌락과 슬픔으로부터 해방되어 빈 마음을 얻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끝없는 고행의 길을 걸었다. 뙤약볕 아래서 따가움과 목마름을 참으며피부의 감각을 잃을 때까지 서 있었고, 비를 맞으며 뼛속까지 한기를 느끼며 묵언의 수행을 했다. 가시나무가 있는 땅에 앉아 참선을 할 때는 몸에서 핏방울이 뚝뚝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이런 아픔, 배고픔, 갈증 그리고 피곤함을 견디고 이기며, 하루에도 수백 번씩자아(自我)를 죽이며 마음을 비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김없이 자아는 다시 그를 찾아왔다. 싯다르타는 무아의 경지에이르지 못하는 이런 반복되는 수행에 점점 정신적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싯다르타가 친구 고빈다에게 말했다.

"사만의 최고 연장자는 60세가 되었네. 그는 아직도 '니르바너(Nirvana: 열반)'에이르지 못하고 수행을 하고 있네.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을 속이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고행으로는 번뇌로부터 벗어나 진리를깨달을 수 없다고 판단한 싯다르타는 망설임 없이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다시 친구 고빈다와 함께 사만의 숲을 떠났다.

싯다르타가 사만들과 수행을 시작한지3년쯤 지난 어느 날, 한 소문을 들은 일이 있었다. 고트마(Gotma)라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는 '빛나는 현자'라 했고, 부다(Buddha)라 불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를, 또, 샤카무니(Shakamuni: 석가모니)라 불렀는데, 이는 '샤카(Shakya)족의 현자'라는 뜻이다.

싯다르타와 친구 고빈다는 빛나는 현자고트마를 찾아가기로 했다. 당시 부다 고트마는 그를 따르는 거상(巨商) 안아타핀디카(Anathapindika)가 제공한 '제타바나(Jetavana) 정원(庭園)'에 묵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제타바나 정원에 가까이 왔을 때 저만치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란색홑옷을 걸치고, 시주 그릇을 들고 걸어오는한 사람을 보았다. 수백 명의 승려 속에 섞인 그의 겉모습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싯다르타가 고빈다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기를 보라. 부다가 오신다!"

부다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조용히 걷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지극히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의 내면을 향한 듯한 미소는 비밀스럽고신비로웠다. 그날, 두 사람은 부다의 가르침을 들었다.

부다는 사바세계의 고통과, 그 고통의근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그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구원의 길을가르쳐 주었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의가르침은 명쾌하고 분명했다. 또, 그곳에모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평화와 기쁨을 주었다.

고빈다는 자신은 부다의 제자가 되겠다며싯다르타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지금 하고 있는 순례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것은 이제 친구 고빈다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음을 의미하고 있다. 싯다르타는 울고 있는 친구 고빈다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친구여, 이제 자네는 자네의 길을 찾았네. 부디 부다와 함께 끝까지 정진 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네."

제타바나 정원을 떠나기 전날 밤, 싯다르타는 부다의 앞에 섰다. 그는 부다에게 말했다.

"빛나는 현자여, 어제 저는 경이로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현자의 말씀을 듣기 위해 친구와 함께 먼 길을 왔습니다. 이제 저는 이곳에 친구를 남기고 다시 순례의 길을 떠나려 합니다."

부다가 말했다.

"그대가 원하는 데로 하시오. 부디 뜻하는바를 이루길 바라오!"

다음날 아침 싯다르타는 제타바나 정원을 나와 홀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그는 밤이면 초승달과 무수한 별들을 친구 삼았고, 낮에는 구름, 꽃, 잡초, 무지개를 보며 걸었다

정처 없이 길을 걷던 싯다르타는 자신이 이른 아침 강가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막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물결은 분홍빛으로반짝이고 있었다. 그 강가에는 대나무로 만든 뗏목과 뱃사공이 있었다. 멍하니 서 있는 싯다르타를 향해 뱃사공이 말을 걸어 왔다.

"아름다운 강이죠. 저는 이 강을 세상의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그 소리를 듣곤 하지요. 그때마다 저는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싯다르타가 대답했다.

"선한 사공이시여, 감사합니다. 나는 집 없는 브라만의 아들이며 수도승입니다. 나는 그대에게 줄 선물도 뱃삯도 없습니다."

뱃사공이 말했다.

"이미 알고 있소. 나는 그대에게 뱃삯이나 선물을 바라지 않소. 어젠가 다시 만나는 날이 있으면, 그때 받으면 됩니다. "

싯다르타는 그날 밤 뱃사공의 오두막에서하룻밤을 지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뱃사공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싯다르타는 뱃사공의 오두막을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가 어느 소도시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싯다르타는 그곳에서 가마를 타고 가는 눈부신 미모의 한 여인을 보게 된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 갸름한 목선, 반짝이며 달콤한 얼굴, 신선한 무화과열매처럼 붉은 입술은 고혹적이었다.

그녀는 싯다르타와 눈길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다. 싯다르타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시내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이름난 기녀(妓女) 카말라였다.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싯다르타는 수도자 사만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잊었다. 그는 카말라를 찾아 가기로 마음먹는다.

싯다르타는 이발사에게 부탁해 수염을밀고 머리에 좋은 기름을 바르게 했다. 그는 강에서 몸을 씻었다. 그리고 카말라의 정원을 찾아가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해질무렵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카말라는 놀랍게도 수염을 깎고 말쑥하게변신한 싯다르타를 알아보며 말했다.

"어제 뵈었던 분 아니세요? 오늘은 전혀 다른 모습이네요."

싯다르타가 대답했다.

"보는 눈이 예리하십니다. 저는 브라만의 아들로 사만이 되려 집을 나온 싯다르타입니다. 오! 아름다운 카말라여, 나는 다시는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수 없을것입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하인에게 싯다르타를 안으로 모시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카말라는 싯다르타에게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싯다르타는 "사색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고" "금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카말라는 자신은 "좋은 옷" "좋은 신발"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사람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철저한 속세의 부귀영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다시 싯다르타에게 세 가지 외에 갖고 있는 것이 더 있냐고 물었다.

"없습니다. 아- 참, 시를 지을 수 있지요. 시상(詩想)을 위해 저에게 키스를 해줄 수있나요?"

카말라가 대답했다.

"당신의 시가 나를 기쁘게 해주면 그렇게해드리지요."

잠시 생각하던 싯다르타는 마음속의 시를읊기 시작했다.

"Into her grove went the fair Kamala, At the entrance to the grove stood the brown Samana. As he saw the lotus flower, Deeply he bowed. Smiling, acknowledged Kamala, To make sacrifices to the fair Kamala Than to offer sacrifices to the gods."

"아름다운 카말라가 그녀의 정원으로돌아올 때, 햇볕에 탄 갈색의 수도승이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네. 그가 연꽃의 카말라를 보자, 고개 숙여 존경을 표했다네. 그를 알아본 카말라는 미소를 지었고, 젊은 수도승은 마음속에 기쁨이 일어, 아름다운 카말라에게 바치는 찬사는신들에게 바치는 공양을 앞질렀다네.

카말라가 놀라움과 기쁨으로 손뼉을 치자, 그녀의 금 팔찌에서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싯다르타에게 짙은 키스를 해주었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육신의쾌감이 온몸을 압도해 오는 것을 느꼈다.

싯다르타는 이제 더 이상 수도자 사만이 아니었다. 세속의 탐욕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카말라는 싯다르타에게 그 고장에 서 가장 유명한 상인 카마스와미(Kamas- wami) 밑에서 일을 배우게 했다.

상인의 일을 배운 싯다르타는 카마스와미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카말라는 그에게 유용한 조언을 해주었고, 싯다르타는 번 돈을 그녀에게 주었다.

싯다르타는 나중에 도박장까지 드나드는 생활을 했지만, 카마스와미가 발견한 그의 생활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싯다르타는 큰돈을 벌면서도하루에 한 끼 식사만 했으며 고기와 와인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돈을 열심히 벌었지만 결코 돈에 집착하지 않았다.

카말라는 싯다르타의 이런 신비스러운 모습을 사랑했다. 그의 말을 경청했고 목소리를 좋아했으며 눈빛을 사랑했다.

세월은 금방 몇 년이 지나갔다. 싯다르타는 부자가 되어 있었다. 강가에 정원이 딸린 큰 집을 짓고 여러명의 하인들도 두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에둘러싸여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싯다르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깜짝 놀랐다. 속세의 한가운데에서 쾌락에 찌들어 있는 육신이 낯설게 보였다. 지금 자신의 생활은 아이들이 즐거움을 위해 하는놀이 '산사라(Sansara)'가 분명했다. 그는정원의 망고나무 밑에서 한참을 생각하다일어섰다. 빈손으로 집을 떠나는 그에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인지, 갑작스런 허기가 밀려왔다.

카마스와미를 비롯한 사람들이 사라진 싯다르타를 찾아 분주히 움직이었지만, 카말라는 창가에서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새장의 문을 열고 키우던 새를 날려보냈다. 카말라는 그날로 기방(妓房)의 문을 닫았다.

집을 떠난 싯다르타는 강가에서 피곤한발걸음을 멈췄다. 강가에는 코코넛 나무가한 그루 서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곳에 몸을 눕혔다. 그는 지금 삶의 의미를 잃었다. 그는 죽음을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삭발을 하고 노란색겉옷을 입은 승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빈다였다. 친구 고빈다는 싯다르타를 알아보지 못했다. 고빈다가 말했다.

"깊이 잠들어 있더군요. 이곳은 뱀과 야생짐승들이 많아 잠자기에 적당치 않은 곳이 오. 나는 부다의 제자로, 당신이 위험한 곳에 잠자고 있어 깰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소." "고맙소. 위대한 현자 부다의 제자여. 그대는 이제 순례의 길을 계속 가기 바라오." "그럼 가보겠습니다. 평안하시오." "잘 가게. 고빈다!"

고빈다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깜짝 놀랐다.

"자네 싯다르타 아닌가!"

이렇게 두 친구는 청년의 때 헤어진 후중년이 되어 재회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회포를 풀었다. 고빈다는 다른 순례자들과 합류하기 위해 곧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두 옛 친구는 다시 아쉬운 이별 앞에 섰다.

강물에 몸을 던지려 했던 싯다르타는 깊은 잠을 자고 오랜 친구를 만난 후, 흐르는 물소리에서 알 수 없는 깊은 위로함을 얻는다. 그는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오래전에 부다와 고빈다를 남겨두고 제타바나 정원을 떠나올 때 만났던 뱃사공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루터에는 그 뱃사공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 노인의 모습이었다. 싯다르타가 말을 걸었다.

"강을 건너 주시겠어요?"

뱃사공은 준수한 모습의 중년 남자가 좋은 옷을 입고 혼자 맨발로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싯다르타를 배 위로 안내하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싯다르타와 뱃사공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정말 훌륭한 삶을 살고 있군요. 강가에 살면서 매일 배의 노를 젓고 있으니 말이오." "괜찮지요. 그러나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너무나부럽습니다. 저에게도 뱃사공 일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렵니까?" "선생님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금방 싫증이 날 겁니다. 이 일이 좋은 옷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은 아닙니다."

뱃사공이 싯다르타의 화려한 옷을 바라보며 웃음 띤 얼굴로 말하자 싯다르타가 다시 말했다.

"농담이 아닙니다. 오래전에 사공께서 나를 뱃삯을 받지 않고 이 강을 건너 주었지요. 오늘도 그렇게 해 주시지요. 그 대신 이 옷을 드리겠습니다."

사공은 싯다르타를 한참 동안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제야 알겠군요. 20여 년 전에 이 강을 건너고 내 오두막에서 함께 밤을 새운 분이시군요.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싯다르타입니다." "반갑소, 싯다르타. 자-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날 이후 싯다르타는 뱃사공 바수데바(Vasudeva)의 제자이며 친구가 되었다. 바수데바는 수행하고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듣는 사람(listener)이었다. 그는 강물의 소리를 듣고 강을 건너는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싯다르타가 어떻게 강물의 소리를 듣느냐고묻자 바수데바는 이렇게 대답했다.

"You will learn it, but not from me. The river has taught me to listen; you will learn from it, too.

"그대는 배우게 될 것이오. 그것은 나에게 배울 일이 아니오. 나는 강에게 듣는 것을 배웠소. 그대도 이 강으로부터 배우게 될 것이오."

싯다르타는 나룻배의 노를 저으며 늘 강의 소리를 들으려 마음을 열었다. 눈을 감고 듣는 그 소리는 그냥 물소리가 아니다. 흐르는 강물 소리는 생명의 소리이며존재의 소리이며 영원의 소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많은 승려들이 강을 건넜다. 승려들뿐만 아니라 여행객들도 몰려 들었다. 그들은 모두가 빛나는 현자 부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부다가 이제병이 깊어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 니르바에 오르는 부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순례의 길에 올랐다고 말했다.

그들 일행 중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순례를 불평하며 보채는 소년과 함께 있었다. 그녀는 몹시 지쳐 보였다. 여인은 잠시쉬기 위해 강둑 풀밭에 앉았다. 소년에게바나나를 주고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반쯤 눈을 감았다.그러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옷 아래에서 검은 뱀 한 마리가 미끄러지듯 기어갔다. 놀란 소년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나루터로 옮겼고, 바수데바가 그녀를 서둘러 배에 태웠다. 그는소년과 함께 그녀를 오두막으로 옮겼다. 마침 불을 피우고 있던 싯다르타는, 소년을 보자 직감적으로 자신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그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카말라였다. 한때 그가 사랑했던 카말라가 10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 독사에물려 사경을 헤매며 자신의 오두막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카말라를 자기 침대에눕혔다.

카말라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굽어보고 있는, 어느 날 홀연히 떠나 버렸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뱀에 물린 것을 기억하며 본능적으로 아이를 찾았다.

"걱정 말아요. 아이는 여기 있어요."

카말라는 이미 독이 퍼져 말하기도 힘겨워 했다.

"당신도 이제 나이가 들었군요. 사랑하는이여, 머리가 그리 희어졌으니... 젊은 날홑옷을 입고 먼지투성이의 맨발로 내 정원 앞에 서 있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당신의 눈 빛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없어요. 나도 많이 늙었어요. 나를 알아볼수 있었어요?"

싯다르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이오. 바로 알아보았소. 사랑하는카말라여!"

카말라가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도 알아보았어요? 당신의 아들입니다."

카말라는 힘겨운 듯 눈을 감았다. 소년은 울기 시작했다. 싯다르타는 소년이 자신의무릎에 얼굴을 묻고 실컷 울도록 가만히 두었다. 얼마 후 카말라는 숨을 거두었다. 두 사람이 카말라의 장례를 위해 언덕 위에장작을 쌓고 있을 때, 소년은 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 있었다.

카말라가 죽은 후 싯다르타는 아들을 자신이 살고 있는 오두막에서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싯다르타는 아들을 '어린싯다르타(Young Siddhartha)'라 불렀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어린 싯다르타와 사이에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 싯다르타는, 부유한 어머니 밑에서 풍요롭게 살다가, 갑자기 바뀐 강가의 오두막 환경에 전혀 적응을 못했다.

싯다르타는 시간이 가면 아들이 자신을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하며 참고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어린 싯다르타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스데바는 "풍요로운 도시 생활에 물 든 어린 싯다르타는 이런 금욕적인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라고 충고를 해 주었다.

어머니를 잃은 아들에 대한 연민과 아버지로서 책임이 뒤섞인 싯다르타의 사랑은 깊고 무조건적이었다. 그러나 어린 싯다르타의 반항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급기야 어느 날 밤 어린 싯다르타는 싯다르타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나를 당신과 같은 독실하고, 자혜롭고, 지혜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 하지 마세요.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될 바에는 차라리도둑이 되고 강도가 되고 살인자가 되어지옥에 갈랍니다. 당신은, 비록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내 아버지가 아닙니다."

다음 날, 싯다르타와 바수데바가 눈을떴을 때 어린 싯다르타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서둘러 나루터로 갔다. 나룻배가 없었다. 강가에는 여분의 노가 부러진 채널려 있었다. 분명히 배를 훔쳐 도망친 어린 싯다르타가 따라오지 못하게 한행동이었다.

침착하라는 바스데바의 만류에도 싯다르타는 도끼를 들고 대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뗏목을 만들어 어린 싯다르타를찾아가기 위해서다. 그의 허둥대는 모습은 수십 년 동안 금식하고 참선하며 진리를 쫓았던 수도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렇게 싯다르타는 자식 앞에 다시 한번무너진다.

그는 강을 건너 부랴부랴 시내로 갔다. 그러데 싯다르타는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의 눈앞에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한때 카말라의 소유였던 정원이 보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가마를 타고 있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말라와, 그녀 앞에홑옷과 맨발의 청년 사만 자신의 모습이어른거린다.

싯다르타는 그곳에 마치 정지된 장승 처럼 서 있었다. 한때 그가 탐닉했던 연회, 음악, 도박들이 떠올랐고, 부리던 하인들과 화려한 저택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강물에 몸을 던지려 했던 비참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그곳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는 발길을 돌렸다. 슬픔이 물밀듯이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자식의 뒤를 쫓아 가는 이 행위 또한 속세의 부질없는 욕심이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걸음을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시 강가의 오두막으로 향하는 싯다르타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뱃사공 싯다르타는 강물의 소리를 들으며 무심(無心)에 이르려 했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이 정답게이야기하며 뱃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공은슬픔을 당한 사람들을 보면 함께 슬퍼했고,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며 뭇사람과공감했다.

싯다르타는 불현듯 어느 날 갑자기 출가를 하겠다는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고향 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 아버지는 죽기 전에 아들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기를소원했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고통을 떠올리며, 싯다르타는 노를 젓고 강물의 소리를 듣는 다. 그는 "그대도 이 강으로부터 배우게 될것이오"라는 바스데바의 말을 깨달아 같다. 큰 가르침의 길로 인도한 바스데바에게 싯다르타는 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바스데바는 싯다르타의 어깨를 툭쳤다. 그날따라 그의 눈빛은 유난히 고요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 나는 이 시간을 오래 기다렸네. 이제 그 시간이 왔네. 나는 떠나겠네. 나는 뱃사공 바수데바로 오래 살아왔고, 이제 그 일은 끝이 났네. 내 오두막이여, 사랑하는 강이여, 친구 싯다르타여 잘 있게."

숲을 향해 떠나는 바수데바에게 싯다르타는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의 얼굴은 기쁨과 진중함으로 빛이 났고, 그의 발걸음은 평화로 가득 차 있었다.

소설 <싯다르타>의 피날레는 싯다르타의 옛 친구 고빈다가 "강가에 현자 뱃사공이 살고 있다"라는 소문을 듣고 나루터를찾아오며 시작된다. 노인이 된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싯다르타가 말했다.

"귀한 분이여, 오래전에 이 강가에서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었지요? 그가 잠에서 깰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켜주었고요. 그때 그대는 잠자던 사람을 알아 보지 못했소. 고빈다여."

깜짝 놀란 고빈다가 말했다.

"자네, 싯다르타인가? 이번에도 자네를못 알아보았네그려.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정말 너무나 기쁘네. 자네는 이제 뱃사공이 되었는가?"

"그렇다네. 나는 뱃사공이 되었네. 어서 오게, 친구여. 오늘 밤 자네를 내 오두막으로 초대하네."

그날 밤 두 사람은 진리와 구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고빈다는 친구 싯다르타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이해 하려 노력했으나 소화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고빈다가 싯다르타에게 말했다.

"싯다르타여, 우린 이제 노인이 되었네. 지금 헤어지면 아마 우리는 이승에서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네. 존경하는친구여, 내가 여생 동안 마음에 새기고살아갈 수 있는 한마디만 해 주기를 바라네."

싯단르타가 고빈다어게 조용히 말했다.

"가까이 와서 내 이마에 입을 맞추게."

고빈다가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싯다르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때 참으로경이로운 일이 일어났다. 고빈다의 앞에 인간의 탄생과 죽음, 기쁨과 슬픔뿐만 아니라 세상의 온갖 생명체들의 나고 사라짐의환상이 펼쳐졌다.

눈앞에 있는 싯다르타의 미소는 부다를닮았다. 고빈다는 고개 숙여 절을 하였다. 그의 두 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흘러내렸다. 그 앞에는 여전히 아무런 미동도 없이 싯다르타가 신비로운 미소를 띤얼굴로 앉아 있었다.

김종호

•위 글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의 영문소설 <Siddhartha>를 읽고 요약한 내용입니다. 의역한 문장과 각색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다른 번역본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