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오디세이 를 기다리며
밀라노 공항에서 시칠리아 팔레르모행비행기에 탑승했다. 유럽에서 단거리 항공노선을 이용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비행기들이소형이고, 높게 뜨지 않기 때문에 운 좋으면 비행경로 아래 펼쳐지는 풍광을 제데로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날 창가에 자리를 잡은 나는횡재를 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탈리아반도 서쪽 해안을 따라 비행하는 동안 초 여름의 날씨는 맑고 쾌청했다. 당초 배를 타고 시칠리아 앞바다를 여행하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비행기를 탔는데 생각 보다 좋은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호메로스 대서사시 <오디세이>의 하이라이트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오디세우스가 사이렌 자매(Sirens)와 스킬라(Scylla)를 만났던 곳이 바로 지금 창밖에 보이는 시칠리아 앞바다다. 사람들은 사이렌 자매들과 스킬라를 동일시하거나 혼동 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디세이>의 내용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오늘날 커피 회사 스타벅스의 심벌이기도한 사이렌은, 작품 <오디세이>에서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다만 사이렌 자매들은 극한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홀려 배에서 뛰어내리게 한다. 그리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뱃사람들을 잡아먹는요괴가 스킬라다.
요괴 스킬라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미끌미끌한 바위섬과 그 주위 죽음의 소용돌이를 카립디스(Charybdis)라 부르는데, 이는 의인화한 지명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항해하던 배가 카립디스에 빠지면, 당연히, 난파되고 이중의 덫에 걸린 뱃사람들은스킬라의 먹이가 된다.
필자는 팔레르모에 착륙할 때까지 눈 아래 펼쳐진 광대한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무자비한 소용돌이 카립디스가 있었다는 시칠리아 앞바다는 푸르고, 하늘은맑기만 하다. 아득히 멀리 보이는 하얀색여객선 몇 척이 마치 정물화 속 물체처럼평화롭다.
흔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서구 문학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작품으로 <일리아스>를 꼽고 있기 때문이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는2700여 년 전, 지금의 터키 서쪽, 이오니아 해안 지방에서 호메로스에 의해 완성되어음송(吟誦) 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호메로스를 '이오니아의 눈먼 시인'이라고불렀던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일리아스>를 '아킬레우스의 분노'라는부제(副題)를 달며, 이 작품의 주인공은아킬레우스라고 주장하는 평론가들이 많다. 그러나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 외에도아가멤논, 메넬라오스, 오디세우스, 페트로클로스, 엔틸로코스, 헥토르와 같은 영웅들의 활약상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킬레우스 한 사람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에 비해 <오디세이>는 작품 전체의스토리가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중심으로구성되어 있다. 시간적으로 <일리아스>는 10년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1년을 노래한작품이지만, <오디세이>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향하는 또 다른 10년의 긴 세월의 서사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지인들로부터 독서에 대한 문의가 있을 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오디세이>를 추천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고전이지만, 사실, 이 작품은 그렇게 녹록한 책이 아니다. 내용이 어렵고구성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오디세이>가 읽기 까다로운 것은 순전히 이질적인 발음의 수많은 등장인물과 지명 이름 때문이며, 상당한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을 요구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디세이>를 네 번 읽었다. 학창 시절 어렴풋이 읽었던 한 번을 포함해서다. 나이 들어 천병희 번역의 <오뒷세이아>를 한 번, 그리고 펭귄 출판사D.C.H. Rieu의 영문본 <The Odyssey> 를 두 번 읽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등장인물과 지명 의 낯선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쉽지 않은 책 임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오디세이>는 그리스 비극 문학의 어머니와 같은 작품이다. 작품의 시작부터'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이 등장한다.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와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복수하는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 이야기다. 아테나 여신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너도 오레스테스 처럼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다"라며 용기를 불어넣는다.
비극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있다. 오디세우스가 저승에 갔을 때, 오이디푸스의어머니였으며 아내였던 테바이의 왕비이오카스테를 만날 수 있었다. 작품은 그녀가 이승에서 겪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훗날 비극 작가들에게 많은 작품의 소재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영감을 제공하므로 그리스 문학의 시원(始原)이 되었다.
둘째, <오디세이>의 놀라운 구성(Plot) 이다.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노래한 서사시(敍事詩)다. 보통 우리는 이 작품을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겪는 낭만과 모험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디세이>의 스토리는 크게 두줄거리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오디세우스 자신의 귀향의 어드벤처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 이타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이를제압하는 구도다. 그 시공간의 연속성과사건의 연결성은 가히 호메로스의 위대한엔지니어링(Engineering)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오디세우스가 동료들을 모두 잃고표류하다 도착한 파이아케스족 나라에서, 왕 알키노오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현대문학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회상(回想) 의 너레이팅(Narrating), 플래시백(Flash- back)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오디세이>의 대부분의 모험은 오디세우스가 알키노오스에게 들려준이야기이다. 거인족 키클롭스의 폴리페모스를 장님으로 만든 이야기, 아이아이에섬의 요부 키르케와 만남과 동거, 저승의 여행, 사이렌과 스킬라와의 대결, 죽음의 소용돌이 카립디스의 통과 그리고 오기기아 섬의 요정 칼립소와의 로맨스 등이다.
셋째, <오디세이>의 탁월한 문학성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오디세이>가 한 영웅의 단순한 어드벤처 정도로 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갖고 있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 묘사와 교훈도 만만치 않다.
신화학자나 문학평론가들 중에는 오디세우스가 동료들을 모두 죽게 하고 혼자살아남았다고 힐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작품을 정독하다 보면,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왜 그런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해야 했는지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오디세우스가 많은 고난을 겪은 후, 아이올리에 섬에 왔었다. 이곳의 왕은 제우스로부터 바람을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아이올로스였다. 오디세우스를 환대한 아이올로스는, 그에게 항해를 방해하는폭풍들을 가죽 부대에 넣어 단단히 묶은 후넘겨주며, 이타카에 닿을 때까지 절대 풀지말라고 당부했다.
아이올로스 덕분에 오디세우스 일행은이타카 근방까지 무사히 항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을 작품 <오디세이>에서는 "이타카의 화톳불이 보일 정도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고난이 끝이 나고 고향땅이 눈앞에 보이자, 전우들의 내면에 숨어있던탐욕과 시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디세우스가 잠깐 잠이 들었을 때, 살아 돌아온 것에 감사함 대신, 그들은 지도자 오디세우스와 자신들을 비교하며 이렇게한탄을 한다.
"아아, 저 사람은 어떤 사람들의 나라에가든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받고존경받는가! 그는 트로이아의 전리품 중에서도 훌륭한 보물을 수도 없이 가져가고있소. 하지만 그와 똑같은 여정을 거친 우리는 빈손으로 귀가하게 생겼소."
그들은, 잠든 오디세우스가 곁에 두고 있는, 가죽 부대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열어 보자는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가죽 부대의 끈을 풀었다. 한순간에 미친 듯한 폭풍우가 울부짖으며 쏟아져 나와 오디세우스와 동료들을 먼바다로내팽개쳐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고난의 기나긴 항해를 계속해야 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떠돌았던 것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로 인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불로달군 올리브나무 말뚝으로 눈을 멀게 한거인족 폴리페모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테나 여신이 신기(神技)에 가까운 항해술을 갖고 있는 파이아케스족으로 하여금 오디세우스를 돕게 한다. 그렇게 오디세우스는 10년의 방랑을 마치고 마지막 항해의 길에 올랐다.
오디세우스는 거지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드디어 자신의 왕국에 돌아온다. 동료들을 모두 잃고 홀로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예전의 오디세우스가 아니었다. 그는 더 신중하고 낮은 자세로 신의 목소리를 듣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아테나 여신의 조언을 경청 하며 구혼자들과 일전을 준비한다. 그는충성스러운 종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농장 집에서 갓난아이 때 친구 멘토르(Me- ntor)에게 맡기고 떠났던 아들 텔레마코스와 상봉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주인을 기다리며 집안을 섬기는 유모 에우리클레이아와 소치기 필로이티오스도 만나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이들과 한 팀을 이루어 끊임없이 아내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요구 하며 살림을 축내고 있던 안티노오스와에우리마코스를 비롯한 무도한 구혼자들을 일거에 제거한다.
구혼자들을 죽인 후,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대신해 구혼자들과 동침하며 집안을 어지럽힌 하녀 12명을 목매달아 죽였다. 그들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페넬로페의 사랑을 받아오던 시녀 멜란토도 있었다. 멜란토는 딸처럼 아껴주었던 주인을 배신하고 에우리마코스의 정부(情婦)가 된 여인이다.
또, 텔레마코스는 구혼자들과 같이 식사 하고 어울리며 왕국을 농락한 멜란티오스를 죽였다. 염소치기 멜란티오스는 멜란토와 남매이기도 한데, 그는 마지막까지 구혼자들의 편에 서며 철저하게 주인집을 배신 한다. 그의 귀, 코, 남근 그리고 사지를 잘라 버리는 처형은 <오디세이>에서 가장 잔인 하고 처참한 장면이다.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와 재회하며, 위태롭고 소란스러웠던 집안을 바로 세웠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난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많은 유력한 인사들의 아들들, 구혼자들을 죽이며 이타카와 주변국들이 혼란에 빠진 것이다. 이를 지켜본 아테나 여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므로 이타카는 평화를되찾게 되며 대서사시 <오디세이>는 막을내린다.
많은 독자들은 <오디세이>를 읽고 나면, "한 인간이 무엇을 이룬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도 결과 못지않게중요하다"라는 말을 한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돌아온 것만큼 그의 오랜 항해도 중요한 것 처럼....
그리스의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Constantinos Kavafis:1863-1933)가그 여정(旅程)의 아름다움을 시로 승화시켰다.
너는 이미 수많은 고난을 만나고 극복하며현자(賢者)가 되었으니, 키르케와 요정 칼립소를 만나 애증의 강을 건넜으니 .... 고향땅 이타카에서 또 다른 영화를 꿈꾸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허영이라고 노래 하고 있다. 시인이 시 속에서 부르는 "너"는 어쩌면 승리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지 못하고 부질없는 욕심을 붙들고 있는 우리들을가리키고 있는지 모른다.
•이타카(Ithaca)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중략)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너의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 마라 비록 네 길이 오래더라도늙고 나서야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나으니길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기를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아름다움을 선사했고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않았으리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지혜로운 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가 가르친 것을 이해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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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8월에는 고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하나 기다리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8월 5일 국내 개봉한다는 소식 때문이다. '오펜하이머'와 '덩케르크'를 감독한 거장 놀란 감독이 그리스의 고대 서사시 <오디세이>를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에 구현할지 정말 궁금하다.
특별히, 동굴 속에서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순간, 사이렌과 스킬라가 있는 공포의 소용돌이 카립디스를 통과 하는 모습, 요정 칼립소와의 로맨스 그리고 이피토스의 활로 구혼자 안티노오스와에우리마코스를 죽이는 장면들을 어떻게연출할지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권면(勸勉)하고 싶은 말이 있다. 8월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상영되기 전에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를 꼭 읽어 보기바란다. 시기적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지금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호메로스가 인류에게 남긴 별처럼 빛나는 불멸의 고전 <오디세이>를 읽고 영화를감상한다면, 틀림없이, 올여름은 우리의영혼을 살 찌우는 풍요로운 계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