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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72자·15분 남짓·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3]

마리아는 전시실에 온 첫날부터 관심을 갖고 나를 지켜봤다고 했다. 무엇에 홀린듯 자신의 그림,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를 바라보던 그날 이후, 그녀는 늘 주위에 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신은 베를린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

그녀가 나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나는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난 언제나 혼자였어요. 이곳 베를린에서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늘 혼자였습니다."

그녀는 매일같이 전시실에 와서 그림을 바라보고 있던 나의 모습에서 자신의 내면의 고독을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았다. 그 손에 힘을 주며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나를 조금씩 알아 갈 거예요. 난 당신을 지난 20일 동안 죽 지켜보고 있었어요. 당신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요.... 그래요, 우린 좋은 친구가 될 거예요."

전시실에서 거침없이 다가와 말을 걸었 듯이, 그녀의 말과 행동은 꾸미거나 감추지 않고 직선적이었다. 오히려 나는 그녀의 남성 같은 매너에 당황했다.

"당신을 보면 어린 소녀 같다는 생각이들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잊고 있던 먼 소년의때의 슬픔이 밀려왔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계집에 같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어젯밤 일만 생각하면 웃음을 못 참겠어요. 프로 반 타이드만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당신의 모습이 꼭 소녀 같았거든요."

이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나는 깜짝 놀라며 "프로 반 타이드만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세상은 참 좁았다. 그녀는 프로 반 타이드만이, 가깝게 왕래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사촌 간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와 그녀의 첫 만남의 대화는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꽤 긴 시간 이어졌다. 바의 홀에는 손님들이 거의 빠져 나가 한산하다.

"Don't you want to walk me home? 집까지 바래다 주지 않겠어요?"

놀라는 나를 보고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밖에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옷을 갈아 입고 오겠다며 일어섰다. 나는 까닭 없이 마냥 행복했다. 밖으로 걸어 나오며 나는생면부지의 웨어터, 손님들과 악수를 하고포옹을 했다.

거리의 네온사인은 하나둘씩 꺼져가고, 카바레 '아틀란틱(ATLANTIC)' 네온도불이 꺼졌다. 그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에게 다가온 그녀는, 가까운 친구처럼팔짱을 꼈다. 베를린의 밤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맑다. 서쪽 하늘 지평선에는 은빛초승달이 앙증맞게 걸려있다.

나는 그녀가 이끄는 데로 걸었다. 가로등불빛만 비치는 텅빈 거리였는데, 가슴은 왜 그렇게 뛰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걸었을까. 티어가르텐 공원(Tiergarten Garden) 근처에 왔을 때, 그녀가 "이곳이 엄마와 함께 사는 곳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We can continue this conversation tomorrow... But don't come to the cl- ub. I don't think I would be happy for you to see me like that again." 우리 내일 이야기를 계속해요. 그런데클럽에는 오지 마세요. 당신이 다시 그제밤처럼 나를 바라보는 것이 싫어요."

그녀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I can show you some of my favou- rite places in Berlin.... Just a minute, I still don't know your name! 내가 베를린에서 좋아하는 곳들을 보여줄게요. 그런데 아- 잠깐만, 아직 이름을 모르고 있잖아요!"

"Raif Efendi 라이프 에펜디" "You can just call me Maria.... 나는 그냥 마리아라고 불러주세요...."

그녀는 집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나는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이프!"

그녀는 정말 오랜 친구처럼 내 이름을스스럼없이 불렀다. 무언가 할 이야기를 놓친 듯 계단 위에서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녀는 내가 사는 곳을 물었다.

"On Lutzow Street. 루초우 가요" "So you aren't far from here.... Why don't you come and pick me up here tomorrow afternoon." 여기서 그리 멀지 않네요. 그럼 내일 오후에 이곳으로 와서 나랑 함께 나가요."

다음날 오후까지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나는 비누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서둘러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하늘은 다시 구름이 짙게 끼었고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시 반쯤 그녀가 집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She was wearing a thin raincoat, a lavender beret, low, heeled shoes, and a smile. 그녀는 얇은 레인코트에 연보라색 베레모를 쓰고 굽 낮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리아는 나를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인 규모가 상당히 큰 식물원으로 안내했다. 이 정원은 그녀가 베를린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싶었다고 말했다.

"Well then, let's go in... I always come here. Especially on rainy day like this. 자, 들어가요. 난 (시간이 나면) 늘 이곳을찾아요. 특별히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요."

식물원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와 마리아는 모래를 다져 만든 보행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주위에는 이끼 낀 바위로 만든 연못과 다양한 식물들이 살고 있었다. 해맑고 들떠있는 모습에서, 그녀가 이 식물 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거 아세요? 베를린은 해가 뜨는 날이 일 년에 100일 정도밖에 안돼요. 그러니까나머지 265일가량은 흐리거나 비가 온다고 봐야겠지요."

마리아는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독일인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그림을 그려 팔고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번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모습은 진솔하고꾸밈이 없었다.

식물원에서 나와 어두워지는 길을 걸으며, 그녀는 지금까지 행복해 하던 모습과 달리나지막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But I don't love you. I've known this since the beginning.... So no, I don't love you.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요,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독백처럼 들렸던 그녀의 말은, 혹시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이별과 그 뒤의 아픔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나는 팔짱을 끼고 나에게 기대어 걷고 있는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이틀 동 안에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꿈결처럼떠오르며 지나간다.

나와 마리아는 거의 매일 만났다. 대부분은 갤러리나 박물관을 찾아 시간을 보냈다. 저명한 화가나 현대 미술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데이트를 마치고 '아틀란틱'까지 바래다준 나에게, 처음으로 내 입에 키스를 해준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 하던 마리아가 몸이 불편하다며 일어섰다. 나는 함께 그녀의 집까지 왔다. 집 앞에 도착한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코트 속에서키를 꺼내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방에 들어왔다. 그녀가 불을 켰다. 가구들은 오래되었지만잘 보관되어 있었다. 방 한쪽에는 예쁘고 멋진 오크(Oak) 침대가 놓여있었다.

신발과 코트를 벗은 그녀는 나에게 앉으라고 눈짓을 했다. 그런데 침대 가장 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가, 갑자기 스타킹과 옷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졌다. 깜짝 놀란 나는 일어서서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의 두 눈은 나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으라는무언의 압력을 보내고 있었다.

"Tugging at my arm, she sat me down on the bed. Then she snuggled up to me, opening my hands, so that she could rest her face in them. 내 팔을 끌어당기며, 그녀는 나를 침대에앉게 했다. 그리고 내 두 손을 벌린 후 그 안에 파고들며 그녀의 얼굴을 묻었다."

마리아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나의 얼굴에 격렬한 키스를 했다. 그녀는 이미 나신(裸身)이었다. 그날 밤 이국의 베를린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음날 잠을 깼을 때 나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운 마음을 안고 떨고 있었다. 마치 선고를기다리는 피고인처럼.... 마리아는 자신의팔에 얼굴을 묻고 등을 보이고 있었다. 머리칼은 하얀 베개 위에 펼쳐져 있었고입술 사이에서는 떨리는 듯한 숨소리가들려왔다.

"Are you awake? 깼어요?"

마리아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비로소 두려움이 사라지고 안도와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나에게 늘 익숙했던따뜻하고 정겨운 미소가 아니었다. 그녀의 미소는 왠지 바에서 손님들에게 보내는꾸며진 화려한 미소처럼 보였다.

안타깝게도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잠시 동안의 행복은 사라지고 방안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마리아는 몹시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마치 가장아끼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어린 소녀와 같은 모습이었다.

"I'm just not in love with you. We can no longer speak openly as we did before. Now it's time for you to go... I really do need to be alone...."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돌아가 주세요... 지금은 정말 혼자 있고싶어요...."

나는 그녀의 집을 나왔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가게들은 아직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그 거리를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걸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외로움이 밀려왔다.

꼬박 열하루 동안 고통 속에 지내던 나는 비로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아직 찾지 못한 무엇인가 때문에괴로워하고 아파한다는 것을....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틀란틱'을 찾았다.

그런데 그날 마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삼일 동안을 카바레 '아틀란틱' 문 앞에서 기다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든 나는 그녀의 집으로 급히 갔다.

마리아의 집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앞집에서 한 여인이 나왔다.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찾고 있다"라고 말하자, 가정부처럼 보이는 그녀가 졸리는 말투로 말했다.

"프라하(Prague)에 있는 어머니가 돌아 오지 않아, 아픈 그녀를 돌볼 사람이 없어의사의 주선으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나도 모르게 "어느 병원이냐?"라고 큰 소리로 묻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샤리테병원(Charite Hospital)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허겁지겁 밖으로 나와, 길에서 만난경찰에게 샤리테 병원의 위치를 물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뛰었다. 거리에는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직원들에게 마리아에 대해 물었지만, 그러나, 아무도 정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병원의 문은 닫혔다. 그날 밤 나는 병원 밖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냉기가 온몸을 휘감는 긴 밤을 보내며, 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타인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가 면회를 허락해 주었다. 의사는마리아가 흉막염(Pleurisy)으로 치료받고 있으며,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독방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마리아의 얼굴은 창백했다.

"What's wrong, Rief? 무슨 일이에요, 라이프?"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나의 초췌한 모습에 놀라워했다. 나는 '아틀란틱'과 그녀의 집을 찾아간 일, 그리고 어제저녁 이곳에 도착해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They didn't let me in, so I waited un- til it was morning." 병원 문이 닫혀, 할 수 없이 아침까지 기다렸어요."

"Where? 어디서요?

"Here... outside the hospital. 여기... 병원 밖에서요."

그녀는 나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다 그만두었다. 간호사의 요청으로 병실을 나설 때, 그녀는 미소를 짓지 않고 차분한 표정으로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마리아는 25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나는 늘 그녀의 곁에 있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얼굴의 땀을 닦아주고, 그녀의숨소리를 들으며 침상을 지켰다. 퇴원한후에도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돌보았다.

나와 마리아의 관계는 분명히 성숙했다. 예전의 들뜨고 산만했던 감정은 차분하고진지한 사이로 변했다. 많은 이야기들을 이제 서로의 눈빛으로 대신했다.

운명의 여신은 늘 그녀가 원치 않는 사람들의 행복을 질투한다. 나는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운 운명과 맞서야 했다. 터키의하브란에서 매형으로부터 전보가 왔다.

"Your father has died. Have wired money. Come at once.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돈을 송금했다. 속히 돌아오라."

나는 몇 마디 안되는 그 전보를 들고 얼마 동안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우선 기다리고 있는 마리아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보 이야기를 들은 마리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Didn't I tell you?: 내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어요?"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녀가 "난 당신을 사랑하지않아요"라고 말했던 것은, 어쩌면, 이처럼 갑자기 찾아올 이별의 두려움을 예견했기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나의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않다며, 어머니가 있는 프라하로 먼저 떠나겠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바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와 그녀는 서로의 주소를 확인 했다.

마리아는 다음날 저녁 열차로 떠났다. 그녀는 열차에 오르기 전까지 내내 꼭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았다.

"Raif... I'm going now. 라이프, 이제 가야 해요." "Yes... I know. 네... 알고 있어요.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나는 울고 있었다. 차창 안에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끄덕였다.

베를린을 떠난 지 4일 만에, 나는 폴란드 와 루마니아를 거처 터키의 하브란에 도착 했다. 집에 와 보니 매형들의 주도 아래 아버지의 비누 공장은 정리되었고, 재산은 많이 축소되어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매형들에 비해 척박한 올리브 농장을남겼다.

하브란에 돌아온 후 나는 마리아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그해 여름 나는 마리아로부터 이상한 편지를 받았다. 소설은 그 내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She told me that she had some very good news for me, but that she woul- d only be able to tell me in person w- hen she came to Turkey. (편지에) 그녀는 나에게 정말 좋은 소식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터키에 와서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해야 된다고 했다."

그녀의 편지는 열심히 일하며 재산을모으려는 나의 열정의 근원이었다. 나는이스탄불에 새 가구를 주문하고 화장실타일을 새로 깔며 집안을 수리했다. 친척 들은 내가 유럽 물을 먹고 겉멋이 들었다고 비웃었지만, 마리아를 위해 준비하는 모든 일은 나에게는 성스러운 일이었다.

마리아를 맞이할 준비가 정리되었다. 그런데 올리브가 익어가는 10월 초 그녀의 편지가 갑자기 끊겼다. 불안하고 초조해진 나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들은 모두 반송되었다. 겉봉에는 하나같이 "unclaimmed, return to sander: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이라는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나는 그녀의 행방을 찾아보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봤으나 허사였다. 나는 감당키 어려운 충격에 빠졌다. 열정적으로 하던 올리브 농장 일도 그만두고, 마리아의편지들만 바라보며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마리아가 다른 행복을 찾아떠났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도 결코 나의 상처를 치유해주지는 못했다. 생명보다 더 아끼고 사랑했던 마리아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

항상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는 나를주위에서는 바보 취급을 했지만 그런 시선에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과 직업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나는 이런저런 일을거치다 이렇게 앙카라에서 독일어 번역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며칠 전, 정확히, 지난 토요일, 나는 다시 한번 운명의 폭풍우와 맞닥뜨려야 했다. 아내의 부탁으로 시장에서 물건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나는 사람들의왕래가 많은 앙카라의 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독일어로 부르는 소리였다.

"Herr Raif! 라이프씨"

순간적으로 나는 도망쳐야 한다는 충동이일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꽉 붙잡으며소리쳤다.

"No, I am not mistaken. It is really you, Herr Raif! Good Lord! 아니,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지요. 당신맞지요, 라이프씨! 아이구 하나님!"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을 볼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와 큰몸집을 보고 이미 펜션에서 함께 살았던 프로 반 타이드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대답을 했다.

"Ah, Frau van Tiedemann, I never would have thought of seeing you here in Ankara. 아- 프로 반 타이드만, 당신을 이곳 앙카라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네요."

그녀는 그동안에 있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했다. 나가 떠난 후 자신과 친구들도 곧 펜션을 떠났고, 자신은 재혼을 했다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어젯밤에 도착했고 오늘 밤 곧 앙카라를 떠난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 소녀와 동행하고 있었다. 얼굴이 약한 황색 빛이 도는 소녀였다. 나는소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Is this your daugther? 당신 딸이에요?" "No, a relative... 아니, 친척이에요"

나는 그녀와 앙카라 역까지 함께 걸었다. 그녀는 마리아와 사촌지간이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의 모든 열정은 죽었지만 마리아의 소식은 꼭 확인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라는생각과 함께 용기를 내 그녀에게 물었다.

"베를린에 있을 때 박물관에서 한 화가를만났는데, 그녀가 당신과 사촌 간이라고했어요. 그녀의 소식에 대해서 아세요?"

프로 반 타이드만은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에게 화가 의 이름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마리아 푸더로 기억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간단한 몇 마디를 하고 입을 닫았다. 나는 그녀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호텔의 짐꾼이 그녀의 짐을 열차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웬일인지 그녀의 표정이 쌀쌀하게 변해갔다.

"Why do you ask? You said you hardly knew Maria? 왜 묻는 거예요? 마리아를 겨우 안다고했잖아요? " "Yes... but she must have left a stro- ng impression.... 아-네... 그녀가 하도 강한 인상을 남겨서 ...." "She was an excellent painter. 그녀는 뛰어난 화가였었지요."

나는 프로 반 타이드만이 마리아에 대해과거형(was)을 쓰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You said she was a good painter? Not now?" 지금 훌륭한 화가였었다고 말했나요? (그럼) 지금은 아니고요?"

프로 반 타이드만은 소녀를 둘러보았다. 소녀는 벌써 열차의 칸막이 객실 창가에 앉아 있었다.

"Obviously not... because she is no longer alive. 당연히 아니지요....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요." "What? 뭐라고요?

나는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열차의 출발이 가까워 오자 프로 반 타이드만은 마리아의 마지막 삶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임신 중에 있던 마리아에게 의사가 산모가 위험할 수 있으니 의학적 조치를 취해야 된다고 경고했지만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분만 일이 가까웠을때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그녀는 끝내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은 후 곧바로 혼수상태에 빠지며 죽었다고 말했다. 프로 반 타이드만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But she never gave her the father's name. Her mother remembered how her daughter spoke of Turk. 마리아는 한번도 어머니에게 뱃속의 아이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리아가 수도없이 터키 이야기를 한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는 네 살 때까지 병원 유아원에 있다할머니에게 왔다고 했다.

"This girl? 이 아이예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Yes... she's sweet, isn't she? so qui- et and well behaved! 그래요... 사랑스럽지 않아요? 정말 조용 하고 얌전한 아이죠!

나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머릿속은 하얘 지고 온몸은 굳어버렸다. 소녀는 창 너머기차역을 무심히 바라보다 언뜻언뜻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프로 반 타이드만은 소녀를 껴안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노여움이 서려 있었다.

기차가 멀어지고 있다. 나는 비로소 모든 것을 알았다. 올리브가 익어가는 그 해 10월 마리아가 죽었다는 것을.... 그녀가 꿈꾸었던, 아이를 안고 터키로 나를 찾아오려 했던 환희의 여행은 그녀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을....

밤이 깊어가며 앙카라의 거리에는 찬바람이 불어온다. 아이의 이름도 묻지 못하고,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나에게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던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마리아가 마음 한구석에서 원망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나의 어리석음이 너무나 비참하고미웠다.

그날밤 나는 아침까지 사무치는 회한 속에서 앙카라의 거리를 정처없이 걸었다.

라이프 에펜디 노트의 이야기가 끝나고, 작품 전반부의 화자(話者) "나"가 다시등장하며, 소설은 피날레(Finale)를 향해 가고 있다.

다음날 나는 노트를 들고 라이프의 집으로 향했다. 그와의 "하룻밤만 읽고 노트를불태우겠다"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라이프 에펜디가누워있는 방문을 열자, 그의 아내와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참 동안 서 있다 발길을 돌려 거리로 나왔다.

나는 라이프 에펜디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무실로 온 나는 그의 빈 책상 위에 노트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폈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그가 걸어왔던 여정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안고....

- Fin -

김종호

•위 글은 Sabahattin Ali의 <Madonnna in a fur coat" 영문본을 읽고, 임의 해석을덧붙여 쓴 글이므로 번역본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