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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패러독스(Paradox)

BTS 단체 사진
BTS 단체 사진 · 위키미디어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지난 7월 29일 BTS 멤버들은 서울에서 각자의 이름으로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SNS에 띄웠다. 한국어로 포스팅한 글은 곧바로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 주요 외신의 문화면 헤드라인이 되었다. 메시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We have decided not to enter the Grammys this year. I hope that music can be heard and loved for what it is, rather than being divided by region or language."

"우리는 올해 그래미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지 않고, 음악 그 자체로 들어주고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한 보이밴드의 단순한 의사 표시 정도로 보였던 이 발표는 세계 음악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 논란의 단초는 그래미 시상을 주관하는 "리코딩 아카데미(The Recording Academy)"가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Asian pop music performance)"라는 새로운 케터고리를 신설 하겠다는 자사 웹사이트 보도였다.

그래미는 K-pop, J-pop, C-pop과 같은 아시아 음악의 다양성과 깊이를 기념하고, Pop 음악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은 북미와 유럽의 영어권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 팝 음악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K-pop을 신설 케터고리 안에 가두어 놓으려는 불순한 시도라는 쪽으로 흘러갔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인데, 50/60년 세대 사람들에게 추억처럼 떠오르는 기기(機器)가 있다. 축음기다. 당시 축음기가 있는 집은, 말할 것도 없이 큰 부자집이었다. 축음기라는 뜻의 영어 "그래모폰(Gramophone)"은 서구 고전 소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친숙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미(Grammy)"라는 말은 이 그래모폰에서 만들어진 고유명사다.

그래미 수상(Grammy Awards)은 1957년 음악의 문화적 확장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협회 리코딩 이카데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래미 수상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래와 같은 4개 부문이 있다.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그리고 "최우수 신인상(Best New Artist)"이다.

BTS가 세계 주요 Pop 수상 중 아직 받지 못한 상은 위 4개 부문이 유일하다. BTS 팬들은 그 그래미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불만의 내용은 단순하다. 그들은 BTS가 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미가 시상식에 불러 흥행에 실컷 이용만 하고 정작 수상은 외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BTS 불참 논란은 북미를 넘어 남미, 유럽, 아시아로까지 번져 나갔다. 주요 미디어들의 보도는 "그래미가 세계적 보이 밴드인 BTS를, 4개 부문의 수상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새 케터고리를 만들어 게토화(Ghettoization) 하려 했다."라는 내용이 대체적 흐름이었다. 논란은, 급기야,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세계 음악시장 권력의 중심에 있던 백인 주류 인맥의 인종차별주의(Racism)와 외국인 혐오(Xenophobia)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파단했는지 BTS가 불참을 선언한 2주 후인 지난 8월 15일, 리코딩 아카데미 CEO 하비 메이슨(Harbey Mason)은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신설을 재검토하겠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참 놀라운 일이다. 비록 폐지 여부를 확정 짓지 못하고 신청 마감일을 어정쩡하게 넘겼지만, 지난 7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아티스트들의 불평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래미의 행적을 돌아볼 때 이번 반응은 분명히 이례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사태를 BTS 팬들의 저항과는 다른, 자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꽤 흥미로워 보인다. 미국의 문화 시장은 규모가 엄청나다. 대중문화는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는데, 그중에서도 영상과 음악의 위치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국의 시장도 그렇지만, 미국이 세계 대중문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미국 시장 제패는 곧 방대한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말과 같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비틀스(Beatles)와 밥 딜런(Bob Dylan)을 무척 좋아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자서전 형식의 책은 정말 많다. 그러나, 잡스가 자신의 전기로 인정한 책은 한 권뿐이다. 전 CNN 회장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쓴 <Steve Jobs>다.

아이작슨의 <Steve Jobs>에는 잡스가 비틀스와 밥 딜런의 노래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잡스는 더 나아가 자신이 설립한 아이 튠즈 스토어(iTunes Store)나 애플(Apple)을 통해 노래를 팔려고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는 음악 시장을 장악하면 문화 패권을 얻고, 그것이 회사 이미지와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이작슨의 <Steve Jobs>에는 디즈니(Diseny)가 혁신을 위해 어떻게 잡스와 협력관계를 이루었는가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문화 역사는 디즈니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한때 관료화의 늪에 빠질 뻔했던 디즈니는, 스티브 잡스의 혁신 DNA를 접목하며 다시 "디즈니 왕국"이라는 명예와 함께 세계 최강의 문화 기업의 위치를 지켜 갔다.

그런데 무적의 패권자로만 보였던 디즈니에게도 시련이 닥친다. 영상 산업이 극장 상영에서 빠르게 인터넷으로 옮겨가며 강력한 경쟁자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OTT(Over the top) 업체들이었다. 대표적 기업이 넷플릭스(Netflix)와 아마존(Amazon)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OTT 분야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넷플릭스가 고속성장의 엔진으로 "오징어 게임"과 같은 K-컬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급기야, 작년 2025년에 넷플릭스의 "Kpop Demon Hunters"가 "겨울왕국"을 능가하는 메가히트를 기록하자, 디즈니는 아연실색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뒤늦게 디즈니가 K콘텐츠에 상당한 투자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그래미를 주관하는 리코딩 아카데미는 시상식 중계권을 오랜 파트너였던 CBS와 계약을 종료하고 디즈니와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디즈니가 2027년부터 10년간 행사를 OTT로 중계하기로하고 계약금 5억 달러, 우리 돈 약 6900억 원을 지불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디즈니가 리코딩 아카데미와 파트너쉽을 맺은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디즈니는 K-pop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시상식 중계를 통해 K-컬쳐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의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디즈니는 이번 그래미의 행태에 대해 몹씨 분노해 하고 있을게 뻔하다.

필자는 미국의 백인 주류 대중문화 파워 그룹이 BTS를 그레미 4개 부문 시상에서 배제하려했던 배경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첫째, 백인 사회, 특히 백인 남성들의 정서적 거부감이다. 그들은 말로는 인종차별은 반 인륜적이라며 휴멘어티(Humanity)를 떠들지만, 사실 그것은 포장된 장식용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는 수많은 백인 젊은 여성들이 동양의 한 보이밴드에 열광하는 모습에 말 못할 거부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래미처럼 대놓고 BTS를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주요 시상식인 "VMA(MTV Video Music Awards)", "빌보드 뮤직 어워드(Billbpard Music Awards)",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의 속마음도 그래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맞을 것이다.

둘째로, BTS로 상징되는 K-pop이 이제 백인 주류 음악시장까지 위협하는 단계에 왔다고 판단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그래미가 그들을 대신해서 시장 방어 차원의 선제적 공격을 취했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의 자본은 늘 그렇게 해 왔다. 공정하고 개방적이며 포용적이라고 알려진 미국의 주류 시장은,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언제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대상을 공격한다.

그런데, 이번 그래미의 전략은 심각한 문제와 충돌을 하게 된다. 그것은 미국의 또 다른 주류 자본이 그래미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디즈니는 물론이고, BTS를 통해서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많은 협찬사와 스트리밍 회사들의 반발이다. 같은 성격의 한쪽 자본이 돌변하여 동일 자본을 공격하는 패러독스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역시, 자본, 즉, 돈은 이념도 인종차별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은 오직 이익을 향해 움직일 뿐이다. 돈에게 애국을 이야기하고 정치인처럼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래서 이번 그래미의 행태는 대단히 경솔하였으며, 자칫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세계적 문화 파워하우스(Powerhouse), "한류(K-Culture)"를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한 매체들을 따져보자. 수많은 요인들과 매체들이 있을 것이다.

"고 바이럴(Go Viral)"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소문이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간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곧바로 우리는 "유튜브(You Tube)"와 "틱톡(TiK ToK)"이 떠오른다. 그렇다. 한류는 순식간에 수백만 수천만 "Go Viral"을 만들어 내는 인터넷 시대의 총아(寵兒)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한류 관련 짧은 영상들을 삽시간에 지구촌 곳곳으로 퍼나르는 TiKToK의 공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오늘날 보통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는 "한류(韓流)"라는 단어는 중국인들이 만들어 낸 말이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류를 경계하고, 확산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아시아 문화의 대표 자리를 빼앗겼다는 실망감과 초조함의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한한령(限韩令)이라는 희한한 정책까지 시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 지도층이 한류를 바라보고 있는 정서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TiKToK은 중국 회사다. 안보 문제 때문에 미국 내 지분을 넘겨주는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바이트댄스(ByteDance)"라는 중국 모기업 산하의 엄연한 중국 기업이다.

한류의 폭발적 확산에, 한류를 가장 시기하고 경계하는 중국 자본의 회사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전혀 이상할 것 없다. 그것이 오직 이익만을 쫓는 자본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한류"와 "TiKToK"이 기묘한 협력을 통해 한류는 세계 최강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TiKToK은 세계 최대의 영상 플렛폼을 이루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그래미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래미의 이번 결정은, 분명히 BTS라는 엄청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파트너를 저버린 어리석은 짓이다. 자본에 인간의 정서와 감정을 불어 넣으려 한 그래미는 이미 "돈의 노여움"을 샀다. 이런 경우, 대개는 큰 낭패, "피에스코우(Fiasco)"로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