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죽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이야기를 즐겨 사용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후세에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더진실에 가깝다.
인류에 회자되는 모든 소크라테스의 말은 플라톤의 저서에 등장하는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알려진것들 중에 다소 황당한 이야기들도 많다.
대표적인 례(例)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말은 델포이 신전 정문에 새겨져 있던 문구라는 것이 정설이다.
또, 소크라테스가 친구에게 했다는 "이웃에 닭 한 마리 빚진게 있으니 갚아주기 바라네" 라는 말이 있다.
플라톤의 저서 파이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닭 한 마리를바쳐야 하네. 잊지 말고 드리도록 하게."라는 말을 잘못 해석한 이야기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친구 이고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으로, 그의 죽음과 제사(祭祀) 와 관련한 부탁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에게 도대체 왜 아테네 시민 법정이 사형이라는 극단적 판결을 내렸는지는 아직까지 큰의문으로 남아 있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주제로 한 플라톤의 세 작품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그리고 "크리톤"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자신이 직접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기의결백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제자파이돈이 고향 플리우스에 돌아와 그의 친구 에케크라테스에게스승과 마지막 날 함께 나눈 대화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크리톤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 훨씬 인간미를 풍기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 크리톤과의 대화가 주제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아테네 일은걱정 말고, 데살리아에 안전한 거처를마련해 놓았으니 어린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도망치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 법정이 내린 판결을 따르겠다며 거절한다.
소크라테스에게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은 "플라톤"과 페르시아 원정기를 저술한 "크세노폰" 그리고"알키비아데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사람 중 알키비아데스는 독특한 인물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최고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파르테논 신전을 건설한 아테나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았던정치가 중 한 명인 페리클레스의 조카이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언변과 준수한 용모 그리고 화려한 생활로 아테네 시민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던 인사였다.
그러나 후에 알키비아데스는 조국 아테네를 배신하고 스파르타로 망명하게 되며, 다시 스파르타를 탈출하여 그리스폴리스들의 적국인 페르시아로 간다.
그는 스파르타로 망명한 후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비난하며, "아테네를 가장 잘 아는 나를 이용해 아테네를 쳐라"라고스파르타인들을 부추긴다.
그의 이런 배신행위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증오를 가져왔고, 어떻게든 소크라테스 사형 판결에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 없다.
더 나아가, 그는 아테네가 철학자를 죽인도시라는 오명을 듣게 만든 장본인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알키비아데스의 뒤틀린 삶의 행적은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잘 기록되어 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태구민은태영호의 개명된 이름이다.
북한 사람 같지 않은 깔끔한 용모로 가끔 BBC에 등장해 미국과 남한을 비난 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10년 동안 주 런던 북한 공사라는 고위 외교관 생활을 한 후 귀국 직전에대한민국에 망명했다.
망명한 사유야 알 길이 없지만, 별로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의 변신이 어지럽다.
그가 북한 체제를 비방하는 많은 강연을 하고 국회의원까지 하려는 것을 보며, "아테네를 가장 잘 아는 나를 이용해 아테네를 쳐라!"라는 말을 했던 알키비아데스를 떠올리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가 선동하지 않아도 북한의비인도적 정치 사회 시스템과, 가난함과참혹함을 다 알고 있다.
그의 정치적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망명한 사람답게 조용한 여생을 보내지 못하고, 그렇지 않아도 극단적 이념 싸움에 함몰된 우리 사회에 고단함을 더하려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내가 소크라테스의 감옥을 찾았을 때, 한낮의 정적을 뒤로한 채 벤치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겨있던 한 중년 신사의 모습이 오늘 아침 내 생각의 주위를맴돈다.
김종호
- 사진 설명1.헤파이스토스 신전 언덕에 올라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 끝에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철학을 이야기하던 아고라가보입니다.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있으며, 파르테논 신전도 보입니다. 2. 프뉙스 언덕 가는 길에 있는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던 감옥 앞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