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1,514자·2분 남짓

인간의 원초적 본성, 오만(傲慢)

그리스 신화는 의외로 해피 엔딩(Happy Ending)보다는 비극(悲劇)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다.

당연히, 문학도 비극이 주류(主流)를 이루었다.

이런 영향으로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라 불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탄생했다.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는 주로검투사들의 결투나 동물들의싸움으로 피가 마르지 않았지만, 그리스의 야외극장에서는 비극의 공연으로 인간의 눈물이 있었다.

비극은 후에 로마 시대에 바쿠스신으로 불리었던, 디오니소스 신을 기리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은"바카날리아"라는 폭음(暴飮)과춤이 난무하는 잔치를 벌였다.

축제의 대미(大尾)인 비극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그들은 염소를잡아 디오니소스 신에게 제물(祭物)로 바쳤다.

비극을 뜻하는 영어 어휘 트래저디(Tragedy)가 염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트라고스(Trag- os)에서 온 연유가 여기 있다.

오늘날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보다는 상류층이나 권력자들이 많듯이, 그리스의 비극도 신이나 영웅 혹은 왕실의 가족들을 주요 인물로 등장 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詩學)에서 비극의 주인공들이영웅이나 귀족들인 것은 관객들이 공연을 보며 "나보다 뛰어난 영웅도 무너 진다"라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하기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들은 비극을 보며 응어리로남아있던 우울감, 외로움, 긴장감 등을 해소하며 마음을 정화(淨化) 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언급했던 이 카타르시스는 오늘날에도 분명히 유효하다.

세월이 흐르며 인물과 배경이변하고 발전해 왔지만, 인간의 감성을 파고드는 공연극 예술의플롯(Plot)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비극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할지라도 오만이 찾아오면 예외 없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유럽의 박물관이나 공원을 걷다보면 날개 달린 말(馬) 그림이나 동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 천마(天馬)의 이름은 페가소스다.

페가소스 신화의 주인공은 코린토스 왕자벨레로폰이다.

그는 아르고스에 식객(食客)으로 있을 때, 왕비 안테이아의 유혹을 뿌리치며의(義)로운 길을 갔던 용사였다.

벨레로폰은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선사 받은 황금 고삐를 들고 페가소스의 주인이 되어 뤼키아(지금의 터키) 땅을 황폐케 하던 괴물 키메라를 죽이므로 헬라스인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영웅이 된다.

그러나, 천마를 타고 하늘을 날던 이 용사에게도 어느 날 오만이 찾아온다.

그는 천마를 타고 신들의 세계인 올림포스천상에 오르려는 만용(蠻勇)을 부린다.

신들의 왕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벨레로폰은 천마에서 알레이온 들에 떨어져 절름발 이에 장님이 되어 세상을 헤매다 쓸쓸히 죽었다.

알레이온은 "방황의 벌판"이라는 말이다.

오만을 뜻하는 영어의 휴브리스(Hubris) 의 어원은 같은 의미의 그리스어 히브리스(hybris)인데, 이는 우리가 흔히 잡종, 혼성체를 말하는 하이브리드(Hybrid)라는 어휘와 연관이 있다.

하이브리드(Hybrid)는 원래 "집에서 키우는 암퇘지와 야생 멧돼지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만이라는 영어 단어 휴브리스(Hubris) 가 갖고 있는 어원의 부정적 뉘앙스가 참으로 기괴(奇怪) 하다.

얼마 전 이태원에서의 집단 감염은 많은 사람들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세계의 주요 언론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바이러스와 큰 관련도 없는 성(性)소수자차별 문제까지 끄집어 내며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 냈다.

다행히 감염이 잦아들고 여론의 방향이바뀌고 있지만, 한순간의 오만과 방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삶이 편안하고 승리의 길에 들어 섰을 때 "오만"은 이렇게 도둑처럼 찾아오며, 그 아래에는 방황의 벌판 "알레이온"이 있다.

김종호

• 위 글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