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시인(詩人)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지낸지도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우리 집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고 오래된 단독 주택이라 겨울이면 아무래도 춥다.
추위가 눈앞에 다가오는 11월쯤이면 조그만 아파트라도 마련해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지도 꽤 됐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3월 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런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진다.
"그래도 공기 좋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사는 이 산동네가 좋다." 라는 위안과 함께...
젊은 시절에는 "무슨 계절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딱히좋고 싫은 것도 모르고 건성으로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 들며 확실히 나는 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좋아해도 다른 계절과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좋아한다.
진달래와 개나리를 시작으로동네와 산이 수채화같이 물들어가는 봄은, 시인의 표현처럼 "찬란한 계절의 여왕"이다.
북악산길은 내가 수십 년 동안 걸었던 숲이다.
초록이 짙은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6월의 숲속에서는 정말 놀라운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난다.
나무껍질이나 땅속에서 때를 기다리던 온갖 종류의 벌레들이 밖으로 나와 물오른 어린잎을먹느라고 아우성이다.
그야말로 탄생과 성장의 요란한오케스트라의 무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숲속에서기적 같은 현상들도 볼 수 있다.
변신(變身)이다.
나무가지나 풀 속을 기어 다니는 징그럽기까지 한 벌레들이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서 나방으로 변신해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있는 수많은 신화들도 이런 생명체의 변신, 메타모퍼시스(meta- morphosis)에서 영감을 얻은 고대인들의 상상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그리스 문명은 호메로스, 헤시오도스와 같은 위대한 시인을 비롯하여 많은 문장가 들을 배출했지만, 로마 문학의 자산(資産) 그렇게 풍요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로마도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라는 걸출한 두 서사(敍事) 시인을 갖고 있다.
특히, 오비디우스는 2000년에 걸친서양의 문학과 미술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은 <변신 이야기(Metamor- phoses)>다.
그리스 신화를 변신을 주제로 집대성한, 로마 문학의 걸작 중의 걸작이다.
오비디우스는 로마의 민족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저술한 베르길리우스보다27년 늦게 태어났지만, 두 사람 모두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시대에 문학의 꽃을 피운 인물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은 극명하게 대조를이룬다.
베르길리우스가 황제의 총애와 로마 시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평탄한 삶을 산 반면, 오비디우스는 말년에 바로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숱한 비극의 주인공의 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도 당대 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할 수 있는 베르길리우스가 죽은 후, 로마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던 어느 날 불행이 느닷없이 찾아온다.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그에게 머나먼야만의 땅 흑해 서안의 토미스로 유배를가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황제가 왜 오비디우스에게 그런 가혹한처벌을 내렸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의 작품 <사랑의 기술>이 환락을 경계 하던 권력층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설(說) 이, 봐서는 안될 황실의 비밀을 목격했기때문이라는 이야기 등이 있지만 모두가추측일 뿐이다.
그는 10년 동안 혹독한 변방의 이국땅에서 살면서, 여러 차례 유배지를 로마에 가까운 곳으로 옮겨 줄 것을 탄원했지만 웬일인지 그것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 <변신 이야기>에는 억울한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죽을 때, 그 육신이 새로 변해 하늘로 날아가는신화가 유난히 많다.
작품 속 새들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온 로마를 향한 오비디우스 자신의 망향가처럼들린다.
<변신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은 황제아우구스투스의 찬양과 만수무강을 소원 하는 축복으로 대단원의 막을내린다.
그러나 작품의 맺는말, 에필로그(Epil- ogue)는 "황제가 비록 내 육신은 귀양을보낼 수 있을지언정 내 작품은 불멸하리라"라는 다분히 공격적인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제 내 작품은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제우스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원한다면, 내 육신에 대해서만, 덧없는 한 평생에종지부를 찍게 하라. 하지만, 나의 작품은영속하는 존재로서 저 높은 별들 위로실려갈 것이고, 내 이름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예언대로, 그의 작품은오는날까지 살아 숨 쉬며 마르지 않는샘물처럼 수많은 문학인들과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있다.
16세기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는 "내 문학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생명의 탄생과 성장이 용트림하는, 그리고 신비의 변신이 녹색의 숲을춤 추게 하는 6월은 위대한 시인 오비디우스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