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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제10 군단(Legio X)

카이사르는 황제에 즉위한 일이 없다.

그는, 기원전 68년 재정관으로관직을 시작하여, 정치적 절정기에 내전을 종식시키며 로마 최고 권력의 위치인 독재관까지 오르지만 황제가 된 일은 없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서양사 속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황제를 뜻하는 성경의 "가이사(Caesar)", 독일어의 "카이저(Kaiser)" 그리고 러시아어의"차르(Tsar)"라는 어휘들 모두가 그 어원은 카이사르다.

그를 로마의 절대 권력자 자리 까지 오르게 했던 힘의 원천에는 갈리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끈위업(偉業)이 있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 당시, "갈리아 원정기(COMMENTA- RII DE BELLO GALLICO)"를 직접 썼다.

그의 문장은 간단명료하기로정평이 나있다.

그가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납치한 후 로마에 보낸 전갈, "벤이 비디 비키(veni vidi vici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말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명언으로 남아 있다.

키케로는 공화정을 무너뜨리려는 카이사르의 정치적 야망에 죽음을 무릅쓰고 대항했지만, 그의 저서(著書)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글은 수사학적 장식을 모두벗어버린 나체상(裸體像)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카이사르가제공하는 사료(史料)를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하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그 사료를 토대로 글을 쓰기를 삼간다."

생소한 단어를 피하고 최대한간단명료하게 표현한 작품들이었지만, 후세에 라틴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된 것은 그의 글이 명문 임을 입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로마 시대의 갈리아를 지금의 프랑스 지역으로 국한하여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갈리아는 "이쪽 갈리아"와"저쪽 갈리아"로 불리었는데, 이쪽 갈리아는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를, 저쪽 갈리아는 알프스 넘어 서유럽 전체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벌은 아직 문명화가 미미했던 서유럽 지역을 로마 문명권에 편입시킨 역사적 대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로마에는 용맹을 떨친, 역사에 기록된 많은 군단들이 있었다.

제14 게미나 마르티아 빅트리스 군단, 제3 아우구스타 군단, 제6 빅트리스 군단 그리고 게르만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영화 "글래디에스터" 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제12 풀미나타 군단 등이다.

그러나, 로마 군단의 정예 중의 정예는 제10 군단(Legio X) 이었다.

제10 군단은 카이사르가 직접 창설한부대였다.

그들은 스페인에서 피의 의식을 통해단련되어 갈리아를 정복하고, 브리타니아를 침공 하고, 게르만족을 정벌하며 로마 정복사의 가장 강력한 주인공들로 우뚝 서게 된다.

카이사르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은"속전속결(速戰速決)" 이었다.

제10 군단은 카이사르의 이런 전투에 대한 신념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들은 100 파운드(45.5kg)의 짐을 지고하루에 40km를 행군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에는 후퇴하는적들보다 빨리 행군하여 허허벌판에 순식간에 진지를 세워 적군을 공포로 몰아넣는기록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이 항상 빛나는 승리만을 거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후퇴했고, 때로는 뼈아픈 패배를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불굴의 정신으로 원하는바를 반드시 이루어 내고야 말았다.

총독으로 갈리아 정벌을 마치고 이탈리아와의 경계선이었던 루비코(Rubico: 오늘날 루비콘) 강가에 머물던 카이사르에게원로원은 군대해산을 명령했다.

고뇌하던 카이사르는 제10 군단 앞에서 원로원의 부당한 처사를 규탄하며 병사들의 뜨거운 충성을 얻어 낸다.

루비콘 강을 건넌 제10 군단은 로마를 향해 질풍처럼 진격했다.

원로원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백전노장폼페이유스는, 카이사르가 원로원의 명령을 거부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다 허를 찔린다.

그리스로 도망을 친 폼페이유스는 기원전 48년 오늘날 데살리아 지역인 파르살로스(Pharsalos) 전투에서 다시 한번카이사르 10 군단에게 대패하고 이집트로 피신하지만,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고만다.

카이사르가 죽고 세월이 흐른 기원후70년, 로마의 제10 군단은 티투스의 지휘 를 받으며 예루살렘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서양사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의 하나였던 이 싸움에서, 그들은 죽음으로 저항 하는 유대 전사들을 격멸하며 로마의 영원한 전설의 군단으로 남게 된다.

우리는 최근 세계인의 부러움을 받던K 방역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적지 않은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시민의 안전과 국가 경제의 위험은 상관없다는 듯한"애너키스트 그룹(Anarchist Groups)" 같은 망동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보며경악 하고 있다.

국가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선제적으로 위기를 차단해야 할 검찰과 경찰 그리고사법부는 먼 산 바라보듯 하는 것은 또 무슨 해괴한 모습인가.

특별히, 필요할 때 쓰라고 국민이 준 권력을 갖고 있는 여당의 모습은 무력(無力)하다못해 한심하다.

정치에서 가장 쉬운 것이 이미 일어난 잘못된 일에 대해 서로 비난하는 불레임게임(Blame Game)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정부에는 비겁하고 경직된 관료들과 정권의 실패를 바라며정치질(Playing Politics) 하는 사이비엘리트들이 넘쳐나고 있다.

자신과 정치적 신념을 함께 하며, 신명을바치겠다는 건강하고 강력한 이너 서클(Inner Circle)을 구축하지 못한 대통령이 아쉽다.

인류의 역사는 장구한 세월과 함께 놀라운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권력의 속성(屬性)과 인간의 본성(本性)은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비록, 불의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로마의 제10 군단과 한 평생 고락을 함께한 카이사르는 행복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