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네의 거리 에 봄비 내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견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교토의 후시미 성으로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 한다.
"천하는 그대에게 준다. 히데요리를 부탁하네. 백만석 정도의영지를 주어 편안하게 살게 해 주게."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나야 하는 히데요시는, 그러나 이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린다.
히데요시의 눈물은 저승으로 떠나며 이승의 사람과 약속을 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아픔의 표현이었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고조선에서 철군도 끝났다.
미완의 통일은 다시 일본을 팽팽한 긴장 속으로 몰아갔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두 가문의물러설 수 없는 패권 싸움이다.
결국, 1600년 양 진영 간 한 판승부, "세키가하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저승에서 히데요시가 이 싸움을 보고 있었다면 땅을 치며통곡할 일이 벌어진다.
한 평생을 같이 했던 정실부인기타노만 도코로와, 아들 처럼 키웠던 가토 기요마사의 배신이다.
이 두 사람이 도요토미의 서군(西軍)의 편에 서지 않고 도쿠가와 의 동군(東軍)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전쟁은 동군의 승리로 끝났다.
가토 기요마사는 그 공을 인정받아 52만 석의 영지를 하사받은구마모토 번의 초대 번주가 된다.
가토 기요마사와 함께 조선 침공 의 선봉으로 한양 성에 제일 먼저입성했던 서군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히데요시가 이에야스에게 눈물로 부탁 했던 히데요리는 어머니 요도기미와 15년을 오사카 성에서 지내다, 결국, 둘 다자결한다.
이렇게 일본의 100년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도쿠가와 막부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정실부인 기타노만도코로는 이미 오래 전에 고다이인 이라는 법명을 받고 출가하여 교토의 고다이사(寺)에서 승려 생활을 하고 있었다.
법문(法門)을 외우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그 녀는 난데없는 소문을 듣게 된다.
"히데요리님의 아들 구니마쓰가 잡혀로쿠조 냇가에서 처형된다" 라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소문으로 어렴풋이 히데요리가 성 밖에서 낳은 아들 하나가 있다고 들었지만, 막상그 어린애가 잡혀와서 처형된다고 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가문의 가신(家臣) 들이 이 분란의 씨앗을 그냥 놓아둘 리 만무(萬無)하다.
처형의 명분은 간단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손자를 사칭한 죄"였다.
인간사(人間事)는 돌고 돈다.
아들이 없던 히데요시는 친 누님의 아들이며 자신의 양자였던 히데쓰구를 후계자로 키웠지만, 후처 요도기미에게 아들히데요리가 태어나자 마음이 변한다.
후계자로 친자식에게 마음이 기울며조카 히데쓰구는 걸치적 거리는 존재로전락한다.
결국, 히데요시는 히데쓰구에게 할복을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처첩 38명도 함께 처형하고 그 주검들을 짐승의 시체 처럼 한 구덩이에 묻어 버린다.
처첩 중에 히데쓰구의 아이를 가진 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히데요시가조카에게 이런 잔혹한 짖을 저지른 것이다.
한때, 누구보다 영민했고 치밀했던히데요시였지만, 말년의 그는 욕심에 눈먼 망령든 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백성들은 이런 풍자시를 노래했다.
"세상은 명백한 인과(因果)의 수레바퀴 좋은 일 나뿐 일이 함께 도노라"
히데쓰구의 처첩들이 아무 죄 없이죽어야 했던 그 로쿠조 냇가에서 이번에는 히데요시의 유일한 핏줄 도요토미구니마쓰가 처형된다고 하니, 사람들이 히데요시의 업보라고 수군거리는 것은당연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던 어린 구니마쓰의 목에 망나니의 칼이 지나가자 붉은 선혈이 치솟았다.
가난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나 갖은풍상을 극복하고 일본 통일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 그러나 말년에 분로쿠의 역(임진 왜란)을 일으켜 수 많은 생명을 잃게 했던 풍운아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의 멸문(滅門)의 순간이다.
기타노만 도코로는 몽롱한 가운데 그 광경을 바라보다 눈을 돌린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계(家系)로 보면 구니마쓰는 자신의 손자이기도 하다.
히데요시와 함께 했던 고단하고 영화로웠던 한 평생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네네"다.
청수사에서 야사카 신사로 이어지는나지막한 언덕길은 교토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트래킹 코스다.
야사카 신사에 가까이 오면 고다이사가 있고, 기타노만 도코로가 생전에 걷던 길을 사람들이 훗날 그녀의 어린 시절 이름을 따 "네네의 길"이라 이름 지었다.
"네네는 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분명히 그녀는 그녀와 함께 했던 광풍 처럼 지나간 전국시대의 세월을 돌아보며 인생의 허무를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그 길을 걷던 때가 2월 말이었지만, 교토는 어느새 매화와 벚나무가 꽃봉오리를 부풀리고 있었다.
나는 네네의 길을 걸으며 조선을 침략 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재앙을 안겨주었던, 불행한 최후를 맞은 세 사람을 생각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고니시 유키나가 그리고 구마모토 번주가 되었지만 막부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파다 했던 가토 기요마사....
며칠 전 금요일(8월 28일) 오후 3시경신조 아베의 사임 소식이 브레이킹 뉴스(Breaking News)로 전 세계에 타전 되었다.
지난해 8월만 해도 한국에 반도체 소재금수 조치를 발표하며 결기에 차 있던당당한 모습은 간 곳 없고, 병색이 완연한 그의 퇴장하는 모습이 쓸쓸하다.
그러나, 그의 재임 중 가장 큰 치적이 "중국과 한국에 대한 단호한 정책"이라는 황당한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끝나지 않은 일본과의 싸움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이라면 모든 게 싫다는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선진국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에서 책방 한편에 혐한 코너를 버젓이 만들어 놓고 반인도적 행태를 일삼는 사회... 모든 것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나라다.
그러나, 이런 일본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한국의 상당수 엘리트들의눈물겨운 짝사랑은 더 알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다.
기모노를 입은 한 무리이의 젊은 여인들의 교태스러운 웃음과 함께 벚꽃의 계절을 준비하는 네네의 거리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