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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충성한 마르쿠스 카토

로마의 통치기구는 공공 단체인원로원(Senatus)과 민회(Comi- tia)가 있었고, 고위 관리직에는집정관, 독재관, 감찰관, 법정관, 조영관, 재정관 그리고 호민관이 있었다.

선공후사(先公後私)와 청렴함으로 이름을 드높였던 마르쿠스카토(BC 234-149)는 로마의 공화정 시대 감찰관이었다.

감찰관은 과세와 징병을 위한인구조사, 시민의 재산 조사, 그리고 재산의 도덕적 결함이 있는 원로원 의원을 제명, 보충 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카토는 감찰관 업무를 어찌나투명하고 엄격하게 수행했던지, 그가 로마 거리를 걸어가면 사람들이 "감찰관 카토(Cato Conso- rius)가 지나간다"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가 평생 동안 소박하고 절제된 삶을 추구했던 것은 " 쾌락은 모든 악의 근원이므로 이성적인 능력으로 이를 피해야만 자유롭고정결할 수 있다" 라는 플라톤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로마 최초의 산문(散文) 작가였으며 탁월한 웅변가였다.

그의 연설은 우아하면서도 힘있고, 쾌적하면서도 충격적이었고, 기지가 넘치면서도 준엄하고, 경구적이면서도 논쟁적이었다.

카토는 젊은 시절뿐만 아니라관직에서 물러나 백발노인이 된 후에도 변함없이 자신을 엄격히관리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명성 때문에 그는 로마가사치에 물들기 전, 옛 로마를 대표하는 공직자의 표상 같은 인물이 되었다.

카토의 기개와 절제는<플루타르코스영웅전>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잠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AD50년-120년)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로마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 그리스인 이었다.

로마에 머물 때, 플루타르코스는 철학을강의했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며 로마의사상과 정신을 배우려 노력했다.

일찍이 아테네 플라톤 학파인 암모니오스(Amonios) 문하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철학, 신학, 윤리, 종교, 문학, 자연과학 등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인물이다.

그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지만, 특히, 그리스, 로마의 영웅들의 삶을 기록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후세의예술가와 작가들에게 엄청난 영감과창작의 원천(源泉)을 제공한 놀라운고전이다.

플루타르코스 저서의 내용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그는 영웅들의 객관적인 업적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성격과 기질을 찾아보려 누구보다 애를 쓴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이끌고 호령했던 영웅들에게아부하지 않고, 직필(直筆)로 그들의 위대함과 흠결(欠缺)까지 부각 시키며 시대를 초월한 인물열전을 완성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생각하면서 정독(精讀) 해야 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마르쿠스카토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다.

카토는 "나는 노예가 늙어 쓸모가 없어 지면 이들을 먹이느니 내다 파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공직자로써 로마의 국고를 최선을 다해 아꼈다고 말했다.

카토가 그런 자신의 처사를 자랑스럽게이야기했지만, 플루타르코스는 이를"하인을 짐싣는 짐승처럼 혹사시키다늙으면 쫓아내거나 내다 파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유용성 외에는 어떤 관계도 인정하지 않는 냉혹한 성격의 특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아테네인들은 파르테논 신전을 지을 때 너무 힘들어하는 노새들을 풀어주어 자유롭게 풀을 뜯게 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가 마치 격려하듯 아크로폴리스를 향해달구지를 끌던 노새들 옆에서 나란히 걸어 가며 길라잡이 노릇을 했다. 그래서 아테네인들은 그 노새를 죽을 때까지 공금으로부양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말 못 하는 동물도 인간과 은혜를 생각하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하물며 같은인간인 노예를 평생 곁에 두고 부리다늙었다고 내다 판 카토의 비 인간적 처신을 비웃는 말이다.

카토가 청렴함과 엄격함으로 로마인들로부터 큰 존경과 신망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人情)이 정의(正義)보다범위가 더 넓다"라며 플루타르코스는 카토의 인격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바라본 것이다.

오늘날, 법과 정의를 들먹이며 인간관계를 왜곡하는 천박함에 대해 이천 년 전 한 그리스의 현인이 들려주는 따뜻한 조언(助言)이다.

작년 여름부터 정치 뉴스 중심에는 늘윤석렬 검찰총장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가 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권력과 맞선 용기 있는 공직자였는지, 아니면, 쥐어준 권력을 잡자말자 은혜를 베푼 자에게 칼을 겨눈 배은망덕한 인물이었는지는 세월이 말해줄 것이다.

윤석렬 총장도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야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의 퇴장하는 걸음이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 후 우리 사회가 그를 어떻게평가할지 정말 궁금하다.

로마인들의 큰 자랑이었던 감찰관 마르쿠스 카토의 인성을 꾸짖은 플루타르코스는 작가라기보다는 신(神)을 향해 걸어 갔던 사람이다.

그리스로 돌아온 그는 델포이에서 아폴론 신전의 성직자(聖職者)로 마지막 30년을 조용히 보내며 인생을 마감했다.

델포이 신전이 있는 파르나소스 산을오르며 나는 젊은 시절 끊임없이 인간 내면의 본성을 탐구하려 했던, 그리고 나중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신을 찾아 순례의 길을 걸었던 플루타르코스를 생각했다.

세월은 빠르다.

특히, 노년(老年)의 세월은 정말이지유수(流水)와 같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나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크고 작은 은혜를 받으며 살아 왔다.

남은 인생은 그것들을 조금씩이라도갚아가며 살고 싶다.

김종호

• 위 글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