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카(Plaka) 카페의 소크라테스
요즘 <테스 형>이라는 노래가 유행하고 있다.
기존의 유행가 가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라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르며 이것저것 묻고하소연하는 노래니, 누가 뭐래도 그 가사가 평범함을 뛰어넘는다.
가수 나훈아의 살아가는방식이나 외모에서 풍기는 모습은 정형화된 관행은따르지 않겠다는 논콘포미스트(Nonconformist) 의 기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테네는 신화의 도시이지만, 철학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 서쪽 플라카 지역에서동쪽 방향으로 모나스티리키(Monastirki)까지이어지는 거리는 아테네의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 거리를 아테네의 샹젤리제라고부르지만, 사실은, 파리의샹젤리제와는 전혀 다른분위기다.
지극히 현대적인 파리와는 달리, 위 쪽으로 보이는아크로폴리스와 주위의곳곳에 남아있는 유적지로 인해 플라카 지역은 화려함속에서도 고풍스러운 맛이 물씬 풍긴다.
길가에 늘어선 카페나레스토랑 문밖 파티오(Patios)에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유쾌하면서도 뜨겁다.
그들은 지금 어쩌면 먼 옛날에 이 거리를 걸으며 논쟁을 벌였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수많은소피스트(Sophist)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지 모른다.
플라카 거리를 걷다 보면 금방이라도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여보게 이 사람아, 자네는 지금 무엇 때문에 그리 바쁘게가는가?"라고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소크라테스가 서양사에서 갖고 있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왜냐하면, 그는 신화의 시대에서 철학의시대로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인물들의 한가운데에 서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 하나 있다.
동(同)시대의 많은 학자들은 자신들의저서(著書)를 남겼지만 그는 웬일인지 아무런 작품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아 볼 수 있는 길은 그와 함께 살았던 인물 들, 혹은 그 후에 그를 연구했던 이들의저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철학자 의 반열(班列)에 올려놓은 것은 순전히 플라톤의 공(功)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톤의 작품 <국가>, <소크라테스의변명>, <향연>, <파이돈>,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한 대화체(對話體) 형식의 저서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플라톤의 책들은딱딱한 논문(論文) 형식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굳이 문학의장르(Genre)로 구분하자면 그의 작품들은 모두 소설(小說)이라고 보아야 한다.
플라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를 지혜롭고, 재치 있고, 농담 잘 하고, 그러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플라톤이 학구적인 인물이었다면,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 크세노폰은 자신의 정치적 이상(理想)을 실현하고자 전쟁터로 뛰어든 혁명가적 사고를 갖고 있던사람이었다.
그의 <페르시아 원정기>는 자신이 바빌론 근처에서 고립무원에 빠진 그리스의 용병(傭兵)들의 지도자가 되어, 페르시아 군과 원주민 그리고혹한과 기아와 싸우며 귀향(歸鄕) 하는 파란만장한 대장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가 페르시아 (소)키루스의 용병으로떠나기 전 소크라테스와 상의를하러찾아갔을 때, 소크라테스는 "떠나기로 다결정하고 의논하러 오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우선 델포이에 가서 신탁을 받아보라며 나무란다.
이렇게 크세노폰의 작품에 그려진 소크라테스는 진중(鎭重)하고 신에 대한 신실한믿음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플라톤과 크세노폰과는 전혀 다른 인물로 묘사한 사람이 있다.
그리스의 대표적 희극(喜劇) 작가인아리스토파네스다.
그는 그의 대표작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를 "돈만 주면 옳고 그른 것을 마음 대로 뒤집을 수 있는 소피스트의 원흉"으로 풍자하고 있다.
작품 <구름>에서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나이 든 농부 스트렙시아데스는 빚쟁이들로부터 돈을 떼먹는 방법을 배워오라며 아들 페이딥피데스를 소크라테스에게 보낸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법정에서 현란한 말 솜씨와 논리로 빚쟁이들을 나가떨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들은 아버지를때리기 시작한다.
그의 논리는 "아버지는 아들을 때리는데 아들은 왜 아버지를 때릴 수 없는가"라는 황당한 궤변(詭辯) 이었다.
결국, 아버지 스트렙시아데스는 소크라테스 학숙을 찾아가 불을 지른다.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 서명실 벽에는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당>이 있다.
이 프레스코화에는 그냥 지나치기에는석연치 않은 내용이 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의 중앙에는 돋보이는 두 사람,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스승이고 스승의 스승인소크라테스가 한쪽으로 밀려나 있다.
그림의 위쪽, 왼쪽으로부터 8번째올리브색 옷을 입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그의 앞에 있는 알키비아데스(투구를 쓰고 있음)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이야기 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38살에 요절한이 천재 화가 라파엘로는 소크라테스를"근본도 안된 알키비아데스에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한심한 영감"으로 표현한 것만 같다.
그러나,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를 과장되게 비하하여 풍자한 듯하고, 라파엘로도 <아테네 학당>을 그릴 때 어느 정도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는 늘다면성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만난 고전 속의 소크라테스는, 그의 지혜의깊이와 상관없이, 진솔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크로폴리스를 가운데 놓고 나는 아테네를 일주일 동안 걸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과 논쟁을 하고 제자들과 대화를 했던 아고라 광장 은 잡초와 관목들만 무성해 쓸쓸하다.
나는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고 그들의 작품을 정독(精讀)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삶을 돌아보며 숙고하고, 그리고 반성하며 내면의 풍요로움을얻기 위함이라고 정의(定義)하고 싶다.
철학의 거리 플라카의 카페에는 해가 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대화는 점점 더뜨거워지고 있다.
은은한 붉은 오렌지색 불빛이 아름다운 신화와 철학의 도시 아테네는 오늘 밤도잠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