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왜 짧은가
영화 <알렉산더>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와 그의 교우(校友)들을데리고 산책길을 걸으며 강의를 하는 장면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건물 안보다는 그렇게숲길이나 정원을 걸어 다니며 제자들을가르쳤다.
"페리파토스(Peripatos)"는 그리스어로"산책길"이라는 뜻의 어휘다.
이 어휘는 영어의 "이동해 다니는" 뜻을 갖고 있는 페리퍼테틱(Peripatetic)이라는 말로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페리퍼테틱 스쿨(Peripatetic school) 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우리는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소요학파와 비슷한 탄생배경의 어원(語源)을 갖고 있는 철학의학파가 하나 더 있다.
스토아(Stoa) 학파다.
기원전 3세기 초에 오늘날 키프로스 섬키티온에서 아테네로 온 제논(Zenon) 에 의해 창시된 학파다.
스토아라는 말은 주랑(柱廊), 즉 기둥 이라는 뜻으로 아테네 공공건물 스토아포이킬레(Stoa Poikile)에서 유래했다.
마케도니아의 부유한 왕자 알렉산더의가정교사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의 할 장소가 없어서 산책길을 걸으며 가르쳤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제논과 그의 제자들은 마땅히 자리 잡고 공부할 곳이 없어 신전이나공공건물 주랑 밑을 걸으며 학문을 탐구 했던 것 같다.
스토아 철학은 그리스의 다른 학파와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제논에 의해 탄생한 이 스토아 철학은 로마에 와서 비로소완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로마의 걸출한 스토아 철학자로 알려진인물로는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루키우스 아나에우스 세네카(Lucius Ann- aeus Seneca), 노예 출신으로 장관의자리까지 오른 에픽테토스(Epictetus)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중에서 특히, 루키우스 아나에우스세네카는 로마의 지성(知性)을 상징하는인물이며, 그의 수필은 향락에 찌든 로마에서 길어올린 철학적 사색(思索)의 보고 라는 평을 듣고 있다.
어느 시대나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뛰어난 문장가들은 지배자들에게 위험 인물로 낙인(烙印) 찍히기 쉽다.
세네카도 숙명적으로 권력자들과 긴장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황제 칼리굴라의 시기심 때문에 목숨이 위태롭게 되기도 했으며, 후임 클라우디우스 황제 통치 기간에는 코르시카섬으로 유배되어 8년의 세월을 보냈다.
세네카를 유배지에서 다시 로마로 돌아 오게 한 사람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조카이며 부인이었던소(小) 아그리피나였다.
누구보다 권력에 집착했던 그녀는 아들네로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당대의 석학세네카를 가정교사로 불러들이기로 결심하고 황제 클라우디우스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그의 승낙을 얻어낸다.
12살 어린 네로의 가정교사가 되어, 17세에 황제에 즉위하고 초기 5년 동안 비교적 선정(善政)을 베풀던 기간까지세네카는 네로의 스승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서기 65년 네로는 자신의 암살음모에 스승이 연루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세네카는 즉시 목숨을 끊어야 된다" 라는 명령을 내린다.
세네카의 죽음은 사형 판결을 받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던 소크라테스를연상케 한다.
그는 울고 있던 동료들을 나무라며스토아 철학의 완성자(完成者)답게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세네카는 뛰어난 수사(修辭)와 유려한필치(筆致)로 주옥같은 수필(隨筆)들을남겼다.
그의 수필 중, 특히, 양곡 조달관인파울리누스에게 헌정한<인생의 짧음에관하여>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우리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마음은 아직청춘이다"라는 말을 한다.
나는 세네카의 수필을 읽던 중에 이실없는 농담이 깊은 철학적 의미가 있는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노년이 그들을 덮쳤을 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소년이지요. 그들은 준비도 없이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노년을 맞으니까요. 그들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노년이 되어 버렸으니, 노년이 날마다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지요."
세네카는 우리의 인생은 태어났을 때 그 속도로 여기까지 왔으며 지금도 지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행자가 대화하거나 독서하거나 골똘 하게 무엇을 생각하다가 어느새 목적지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하듯이, 더없이 빠른 인생 여정도 그 끝 무렵에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지요."
"아무도 그대에게 세월을 되찾아주지 않을 것이오. 인생은 처음 시작했던 그대로 흘러갈 것이고, 진로를 되돌리거나 멈추지 않을 것이오. 인생은 소란도피우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상기시키지도 않은 채 소리 없이 흘러갈 것이오."
우리는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인생 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들의 삶을 보람있고 알차게 살았으리라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세네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도 대부분은 여전히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고백 하며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속절없는 인생의 남은 여정을 어떻게 보내야 한단 말인가.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자연과 부질없는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고, 마음의 훈련을쌓으면 모든 것을 이긴다"라는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도 자연이다.
그러니, 세월 가는 것에 대해 초조해하거나 애달파 할 필요가 없다.
세네카는 그의 수필에서 여가(餘暇)를즐기라고 조언하고 있다.
세네카가 말하는 여가는 육체적인 여가가 아니라 마음속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사색하는 삶, 진정한 정신적 여가를 가리키고 있다.
"철학을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만이여가를 즐기지요. 그들은 인생의 시간을 잘 건사할 뿐 아니라, 모든 시간을 자신의 인생 시간에 덧붙일 줄도 알지요."
그는 우리에게 소크라테스, 제논, 퓌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를 만나 토론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배우라고 조언하고 있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북서쪽에는 고대 아고라가 있다.
이곳에 길이 120m, 너비 20m의 아름다운 아탈로스 주랑(Stoa of Atalos)이 자리 잡고 있다.
바깥쪽 화강암과 이오니아식 대리석기둥의 2층 건물로 복원된 이곳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토론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스토아를 걸으며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세네카를 만날 수 있다.
비록, 이곳에 왔었다는 기록도 없고, 그에 대한 아무런 흔적도 없지만 스토아 철학을 완성시킨 세네카는 웬일인지 이 주랑의 주인처럼 느껴진다.
아탈로스 주랑 옆 숲속에서 불어오는바람은 세네카의 부드럽지만 단호한가르침처럼 상쾌하다.
"우리의 인생이 짧다고 하지만, 지혜가축성(祝聖) 한 것들은 세월도 해(害)할수 없다."
김종호
•위 글은 세네카 저 천병희 번역<인생이 왜 짧은가>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