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사랑한 영원의 도시, 로마
괴테는 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는 약관 25세에 <젊은 베르테르의슬픔>을 발표하며 유럽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 작품은 괴테가 한창 젊을 때 쓴 글이라서 그런지, 이성 (理性)과 논리(論理) 보다는 이곳저곳에 절제되지 않은 열정(熱情)과 즉흥적인 감정(感情)이 묻어 있는 작품이다.
단숨에 완성시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대비(對比) 되는 괴테의 작품이 있다.
괴테의 필생의 역작(力作)이라고 알려진 <파우스트 Faust>다.
괴테가 24살 때 집필하기 시작하여 그가운명하기 1년 전인 1831년 82세 때 완성하였으니 장장 58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쾌락을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이야기다.
"초월적(超越的) 의지와 절망 사이에서 빛과 어둠을 다 경험하고 결국 선(善)을향한 의지로 보다 높은 영역으로 상승 한다"라는 이 희곡(戲曲)은 분명히 괴테의 지성과 세계관 그리고 천재성이 녹아 있는 놀라운 작품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대문호(大文豪) 괴테의<파우스트>를 읽으며 그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려 한다.
그러나, 역사와 신화,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뒤범벅이 된 구성(構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난해(難解) 함으로 인해 실망감을 안겨 준다.
신화와 기독교 신학 그리고 당시 사회상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이 이 작품을 읽으려는 많은 독자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비슷한 맥락(脈絡)의 이야기로, 우리는 한 작가의 많은 작품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지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일기나 수필 혹은 여행기 같은 글을 읽다 보면 글쓴이의 철학과 사상, 더 나아가 그의 인품까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이 걸출한 작가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도 가끔 밀려오는 일상의 권태(倦怠)로 인해 "도대체 내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27살에 바이마르 공국의 고문관이 되어 10년 동안 공직(公職)을 성공적으로수행하던 괴테는 1786년 37세가 되던 해 자신의 삶에 깊은 회의(懷疑)를 느끼게 된다.
부(富)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주위에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만, 그런 안락함이시인이며 예술가라고 자부하던 자신의영혼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래전부터꿈꾸어 왔던 이탈리아로 떠나야 겠다는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새벽 3시, 나는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지 못하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 가방 하나와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꾸려서 홀로 우편 마차에 몸을 실으니, 아침 7시 30분에 츠보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의 첫 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휴양(休養) 하고 있던 칼스바트에서 이탈리아를 향해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떠났다.
괴테의 영혼의 자유로움을 엿볼 수 있는대목이다.
칼스바트를 떠난지 약 2개월 후 1786년 11월 1일 괴테는 마침내 포르타 델 포폴로(로마에 오는 모든 외국인은 이 문을통과해야 했다)에 도착했다.
괴테는 그의 기행문에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썼다.
"드디어 나는 세계의 수도(首都)에 도착 했다."
괴테의 아버지는 로마를 여행한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벽에걸려있는 로마의 조감도를 가리키며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괴테는 소년 시절부터 로마의 여행을 꿈꾸었다.
조감도를 보며 거리의 이름을 외우고, 찾아갈 곳을 정했던 그 기억들이 눈앞에펼쳐지자 괴테는 흥분과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나의 젊은 시절의 모든 꿈이 생생하게 내 눈앞에 되살아 난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가 대기실에 걸어 놓았던 동판화(銅版畫)를 지금 실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괴테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 중에는 의외로 그가 글을 쓴 문학인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 많다.
그러나, 그가 로마에 머물며 보여준 폭넓은 예술에 대한 탐구 열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회화, 조각, 건축, 음악, 연극, 지리학, 도시학, 식물학 그리고 심지어 인체학까지 깊은 관심을 갖고 학문적으로접근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
그는 폐허가 된 황제 궁전들만 남아 있는 팔라티노 언덕을 거닐며, 아직 누구도 이 언덕을 그렇게 불러보지 않은, "팔라티노정원(庭園)"이라 부르며 그 아름다움을꿰뚫어 봤다.
바티칸 박물관의 시스티나 성당에서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괴테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의 만남을 연상케 한다.
"나는 쳐다보며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거장(巨匠)의 내면적 확실함과 남성적인힘, 위대함은 도저히 필설(筆舌)로 다할수 없었다. 나는 대자연을 그만큼 위대한 눈으로 볼 수 없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페인 계단은, 이제 로마를 찾아온 관광객들이라면 꼭 방문 해야 할 명소가 되었다.
스페인 계단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길이명품 거리로 알려진 콘도티 거리(Via Co- ndotti)다.
그 콘도티 거리를 따라 조금만 걸어내려 오면 안티코 카페 그레코(Antico Caffe Greco)가 있다.
우리말로는 "옛 그리스 카페"라는 뜻의 이 카페는, 괴테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과 어울려 담소(談笑)를 나누고, 때로는 토론과 논쟁을 하던 곳이다.
괴테가 사랑했던 로마의 거리를 걸어 보고 싶다면, 카페 그레코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시작하면 제격이다.
카페를 나와 콘도티 거리를 걷다 보면코르소 거리(Via dai Corso)를 만나게 된다.
그 코르소 거리에서 우회전하여 포폴로광장(Piazza del Popolo) 가까이 오면 괴테의 하숙집이 있다.
괴테는 그의 하숙집에서 카페 그레코 가는 길을 일상(日常)처럼 걸어 다니며 거리의 풍경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 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싶을 때는 포폴로 광장 너머 보르게제공원(Villa Boorghese)을 걸으며 사색(思索) 했다.
괴테는 로마라는 고전적 도시에서 인간이 이룩한 진정한 예술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과 같은거장들의 작품들을 바라보며 예술의 위대함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로마가 선사한 그 영혼의 풍요로움은 괴테의 창작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여주었고, 여행 중에 완성한 <이피게니아> 와 <에그몬트> 뿐만 아니라, 그 이후 발표한 주옥같은 작품에도 큰 영향을주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작가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다시 태어났다.
괴테는 여행을 마치고 달밤에 마차를 타고 로마를 떠나야 할 때, 그의 마음은아쉬움을 넘어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의 심정을 황제의 명령을 받고 흑해로 유배(流配)를 떠나야 했던 옛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그 날 밤을회상하며!>라는 시(詩)로 표현했다.
"그날 밤의 슬픈 광경이내 영혼 앞에 펼쳐지네. 로마에서 내가 보낸 그 마지막 밤이, 소중한 것을 많이 남겨두고 온 그날 밤을 되새겨 보니, 지금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네. 사람 소리도 개 짖는 소리도 이미 잠들어 버렸는데, 높이 뜬 달이 밤 마차를 인도했노라. 달을 쳐다보고, 카피톨리노 성당을 보니, 로마의 수호신 가까이허무하게 서 있었네."
괴테가 로마를 떠나며 떠올렸던오비디우스의 시는 오비디우스의시이지만 로마를 사랑했던 위대한 시인 괴테의 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