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Montmartre), 화가(畫家)에게 빛을 주다
삐갈(Pigale)은 파리의 환락가다.
몽마르트를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12호선을 타고 아베쎄 역에서 내려걸어가면 편하지만, 오늘은 일부러삐갈 역에서부터 걷는다.
길 옆에 늘어선 섹스 숍(Sex Shop) 과 야릇한 바(Bar)들이 한낮인데도심리적 불안감을 일으킨다.
30대 초반에 회사 동료들 몇명과이 길을 걸었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
샹젤리제 근방에 있던 숙소에서지하철을 타고 이 삐갈 역까지 와어둑한 뒷골목을 밤늦게까지어슬렁거렸다.
길가에서 마네킹처럼 서서 농담을던지던 거리의 여인들에게 가볍게응수하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우범지역 같은 뒷골목을 야밤에 걷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두려움 없이 우선 부딪쳐 보자는무모했던 청춘이 이제는 아득한추억으로 남아있다.
삐갈을 한참 걷다보면 캉캉 춤으로유명했던 빨간 풍차의 물랑루즈가보이는데, 이곳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곧장 오르면 몽마르트 언덕이다.
해발 179m의, 우리에게는 야산이나 다름없는, 몽마르트 언덕은 파리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로마 점령기인 서기 250년 경 생드니 성자(聖者)가 이곳에서 참수를 받고 순교(殉敎) 하므로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몽마르트는 특히 예술가들이 많이 살던 곳이다.
많은 예술가들 중에서도 몽마르트 를 생각하면 피카소와 고흐를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된다.
두 사람이 살았던 인생은 극적인대조(對照)를 보여준다.
피카소는 살아있을 때 이미 큰 명성과 부를 이루고 여인들에 둘러쌓여 온갖 염문(艷聞)을 뿌리며요란한 삶을 살다 죽었지만, 고흐는 평생을 혹독한 가난 속에 살다 말년에는 극심한 정신 질환까지 얻어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다.
이런 고흐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몽마르트를 걷는 이들 중에는 그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고흐는 엔트워프(네델란의 도시)를 떠나 파리에 오기 전에 늘 아버지와불화(不和) 했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칼뱅파 목사였던 아버지는 고흐의 종잡을 수 없는 생활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흐도 젊은 시절 한때 전도사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치게 엄격하고광적인 신앙심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고흐는 두 여인에게 사랑을 거절당하고, 한 여인은 자신이 버렸다.
첫 번째 여인은, 그가 1873년런던의 구필 화랑에서 일할 때 하숙집 딸 "유제니 로이어"로, 그녀에게구혼했다가 거절당한다.
두 번째는, 외숙부의 딸인 "케이"에게 연정을 느껴 청혼했지만, 케이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일로 고흐는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을뿐만아니라가족은 물론 친척들과도 갈등을겪게된다.
세 번째, 그가 버린 여자는, 자신의모델 일을 하던 "시엔"이라는 여인으로, 직업적으로 만났지만 점점가까워지며 사랑하게 된다.
불행한 매춘녀였던 그녀는 알코올중독자에 매독 환자였다.
고흐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동거 하게 되는데, 이 소란으로 조금씩 가족과 화해해가던 관계도 다시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생활력이 없는 고흐는 결국 씨엔을버리게 되며, 오갈 데 없는 그녀를떠났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고흐는 화가였지만 책을 무척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은 많은 독서를 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수려(秀麗)한 표현들로 인해 하나의문학작품이라고 해도 전혀 흠잡을데가 없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후 진지하게 독서에 몰두했다. 성경, 미슐레의 <프랑스 혁명>, 지난겨울에는 셰익스피어와 빅토르 위고의 책, 그리고 디킨스와스토, 최근에는 아이스킬로스와좀 덜 고전적인 여러 작가들, 마이너 계열의 위대한 거장 등..."
사람들은 보통 고흐의 편지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흐의 이름이 "빈센트 반고흐(Vincent Van Gogh)"이며동생은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이므로, 정확히 말하면"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라고 표현해야 맞다. (그러나, 편의상 고흐와 테오라고부르자.)
파리에 도착하기 전 고흐의 그림들은,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알려진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볼 수 있듯이, 대체로 어둡고 칙칙했다.
그런 고흐의 그림이, 동생 테오의집이 있는 이 몽마르트에 머물며 파리의 밝고 화려한 색채에 영감을 받고 고갱, 베르나르, 투르즈 로트레크, 앙크탱 같은 인상파(印象派) 화가들과 교제하며, 점점 밝은 빛을띄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의 그림이 빛을 얻어 생명을 얻어 갔던 것과는 반대로, 고흐는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며과음과 무절제한 생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 갔다.
결국 파리라는 도시에 염증을 느낀 고흐는 더 밝은 빛과 색을 찾아 남 프랑스 아를로 떠나게 된다.
그는 1885년 11월에 파리에 와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정물화, 자화상, 몽마르트 풍경 등 200여 점이 넘는 그림을 남겼다.
지난 3월 25일 파리의 소더비(Sotheby)에 진귀한 그림 한 점이경매에 나왔다.
빈센트 반 고흐가 1887년 몽마르트 테오의 집에 기거하고 있을 때 그린 <몽마르트 거리의 풍경(Str- eet scene in Montmartre)>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파리의 한 가족이 100년 넘게 소장하고 있다가 경매에 내놓은 작품인데,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명화 수집가에게 1309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75억 원에 낙찰 되었다.
밝은 하늘 아래 "후추 빻는 풍차(Pepper Mill)"로 불리던 풍차와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말뚝울타리(Wooden Palisade) 옆을성인남녀와 어린 소녀가 걸어가고 있는 130여 년 전 몽마르트의 풍경이다.
인상파 그림 분석을 담당하고 있는에트네 헬만(Etienne Hellman) 소더비 이사는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It's an important painting in the oeuvre of Vincent Van Go- gh. Before this, , his paintings are much darker. ... In Paris he discovers color." "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그림입니다. 그가 이런 그림을 그리기전에는, 그의 그림들은 매우 어두웠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빛과) 색을 발견한 것이지요."
흔히, 미술 평론가들은 빈센트 반고흐를 "광인(狂人)처럼 살다간비운의 천재 화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생 테오, 여동생 윌 그리고 동료 화가 베르나르 등에게 보낸 수 백통의 편지 속에 비친 고흐는광인도 천재도 아니다.
그는, 다만, 견디기 힘든 가난 가운데에서도 영혼이 담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빛과 색을 찾아 순례자처럼떠돌며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모두 불태우고 홀연히 떠나버린 화가였다.
김종호
•위 글은 3년 전 프랑스 배낭여행을 기억하며 썻으며, 빈센트 반 고흐 저, 신성림 번역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