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강(Rhone)의 별이 빛나는 밤
어제까지 더위 때문에 겉옷를 벗어 들고 길을 걸었는데, 오늘은 5월 말남(南)프랑스의 날씨가 아니다.
조각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눈부시지만, 바람이 불며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아를(Arles)역 앞에는 시내를 무료로 왕복하는 소형 셔틀버스가 있다.
그러나, 역에서 도심까지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10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셔틀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남프랑스의 이 조그만 도시를 찾아오는 여행객들 대부분은 빈센트 반 고흐의 숨결을 느껴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아를의 거리에는 고흐의기념 장소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바닥에 노란 표시판들이 박혀있다.
고흐는 1888년 2월 20일 몽마르트 테오의 집을 떠나 하얗게 눈이 내린아를에 도착했다.
프로방스에는 곧 봄이 찾아왔다.
고흐는 네델란드나 파리에서 느낄 수 없었던 남프랑스의 빛나는 봄 색채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 해 4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고흐가 찬란한 빛깔과 짙은 향기의한가운데 있던 아를의 봄에 얼마나취해있었는지 알 수 있는 글이 있다.
"오늘 아침, 꽃이 핀 자두나무가 있는 과수원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멋진 바람이 불어오더니 다른곳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보았다. 그럴 때면 작고하얀 꽃잎들이 햇빛을 받아 불꽃처럼 반짝이곤 한다."
고흐는 아름다운 봄을 화폭에 담고 싶은 열정에 들뜬 아이처럼 주문한물감들을 테오에게 나열했다.
"내가 주문했던 물감들, 즉 오렌지색, 노란색, 레몬색, 프레시안 블루, 에머랄드 그린, 번들거리는 빨간색, 베로네즈 그린 등은 마리스, 모베, 이스라엘스 같은 네델란드 화가들이 별로 사용하지 않았던 색이다."
우리는 고흐가 주문한 물감에서 이미 그가 아를의 봄을 그린 아름다운 명작들을 떠올릴 수 있다.
<꽃이 핀 복숭아나무>, <꽃이 핀자두나무>,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해바라기>, <씨 뿌리는 사람>, <항혼의 밀밭> 등등...
무엇에 홀린 듯 그림을 그리고 난 후, 그러나, 고흐는 언제나처럼 물감사는데 써버린 돈에 대한 허탈감을느껴야 했고, 살아가야 할 생활비를걱정해야 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자신의 그림값이 적어도 그림의재료 원가(原價) 이상은 받았으면 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내 그림의 가격이 경비를 충당할수 있어야 할 텐데. 경비를 넘어선다면 정말 좋겠지만. 지금까지 사용한 돈이 얼마인지 생각해 보면... 아, 그래, 꼭 그렇게 될 것이다."
파리의 몽마르트에서 점점 밝아지며 매혹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던 고흐의 그림은 이곳 아를에서 그 예술적 표현의 기교는 절정(絕頂)을맞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건강은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특히, 아를을 찾아왔던 고갱과 예술에 대한 의견 차이로 심하게 다툰 후 고흐의 정신 질환은 잦은 발작을일으키며 나락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귀를 잘라 라첼이라는매춘부에게 주고, 물감을 빨아먹는 등의 발작을 보이다 생폴 드 무솔요양원에 입원한 것이 이 즈음이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 처해 있던 아를에서 200점이 넘는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것을 보면, 그의 그림에 대한열정이 놀랍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도시에서 남긴 고흐의 작품 가운데 사람들은 <별이 빛나는 밤> 과<아를의 포럼 광장 카페테라스>를 가장 사랑한다.
가스등 불빛이 비치고 별이 보이는노란색의 카페는, 그곳의 낭만적인 모습을 표현하려 한 것 같지만, 화가 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밤의 카페>를 통해서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은 "이제 이 세상을 떠나야겠다"라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강렬한 메세지였다고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때의 마음을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는갈 수 없을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고흐의 편지를 읽다 보면 동생 테오의 독특한 인간성에 대한 궁금증을 버릴 수 없다.
테오는 고흐의 동생이었지만, 고흐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했던평생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는 고흐가 아버지와 관계가 극도로 나빴을 때에도, 매춘녀 시엔과동거를 할 때에도, 정신 질환으로 고통을 겪을 때에도 변함없이 형을도왔다.
무엇이 테오가 형에 대해 그렇게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원천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테오가 여동생 윌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에서 어렴풋이 그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형의 지식과 세상에 대한 명석한시각은 정말 믿기 어려운 정도란다. 게다가 형은 항상 남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란다."
이름있는 그림상(商)이었던 테오가 형의 자질을 꿰뚫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다.
아를에서 그렸던 고흐의 후기(後期) 작품들을 보고, 테오는 형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형의 그림에는 싸구려 그림들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힘이있어. 그 그림들은 시간이 흘러 물감의층이 안정되면서 더 아름다워 질꺼야. 언젠가는 분명 큰 평가를 받게될거라고."
어쨌든, 테오는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고흐의 내면의 세계를 흠모하고 존경했던 것이분명해 보인다.
첫 아들을 얻었을 때,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서 테오의 형에 대한 이런 존경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사랑하는 형, 집사람이 힘든 시간을 넘기고 아주 예쁜 아들을 낳았어. 아이는 많이 울어대지만 건강해. 전에 말한 대로 우린 아이를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고 부를 거야. 이 아이 역시 형처럼 강직하고 용감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어."
아를 역에 도착하자 나는 곧바로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던론강(Rhone)을 찾았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강변은 쓸쓸함마저 느끼게 한다.
오래전에 안개비 내리는 스위스레만호(Leman 湖)를 여행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친다.
알프스에서 발원(發源)한 론강의물줄기는 그 레만호를 거쳐 리옹을 지나 멀고 먼 이곳 아를까지 흘러와 얼마 남지 않은 지중해를 향해 길을재촉하고 있다.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고흐의 편지를 읽은 여행객들은 남프랑스에 오면 아를의 론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혹독한 가난, 그림에 대한 열정, 병으로 쇠약해진 육신, 의식마저빼앗아 갔던 정신적 발작, 그 막다른골목에서 자신의 운명을 예견(豫見) 하며 그리고 치열했던 청춘을 돌아보며 이곳에서 그는 <별이 빛나는 밤 >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