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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일탈(逸脫)

권력의 최고위층이나 대부호들의성 추문(性醜聞)은 소리만 요란하다나중에는 세간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제프리 웹스타인(Jeffery Epstein) 사건도 그렇게 지나가나 싶었는데 요즘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끌고 있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의 파트너였던 억만장자 제프리 웹스타인이 미성년 성 착취혐의로 체포된 것은 2008년이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성범죄 중 미성년 성착취는 보통 가혹할 정도로 무거운 형을 받는다.

그런데, 당시 제프리는 돈을 얼마나 뿌렸는지 겨우 18개월을 선고받고, 이 사건은유야무야되었다.

성적 상대로 미성년자에게 집착하는소아성애자, "피도필리아(Pedophilia)"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그는 치료받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려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제프리 웹스타인은 석방 후에도 자신의 막대한 재력과 권력의 끈을 등에업고 범죄행위를 계속 이어갔다.

비극은 늘 소리 없이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다.

2015년 1월 4일 BBC는 피해 여성 중 한 명인 버지니아 로버츠(30)가 제프리웹스타인의 강요로 영국 왕실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Prince An- drew)와 세 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영국 사교계의 유명 인사이고 제프리 웹스타인의 전 애인이었던 저슬레인 맥스웰(Ghislaine Ma- xwell)이 제프리에게 소녀들을 공급 해주는 뚜쟁이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트럼프, 클린턴 두 전 대통령들도 제프리와 가깝게 지냈다는 소문이돌면서, 두 사람은 이를 해명하느라 한바탕소동을 벌였다.

결국, 제프리 웹스타인은 2019년 다시 체포되어 뉴욕 맨해튼 교도소에 수감 중, 그 해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피 중이던 저슬레인 맥스웰은 2020년 7월 2일 뉴햄프셔 브레드포드의 한 호화저택에 숨어있다 FBI에 체포되었다.

미국 IT 산업의 1세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Bill Gates)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라고 할 수 있다.

1955년 생, 동갑내기인 이 두 파이어니어(Pioneer)는 때로 협력하기도 했지만, 운명적인 라이벌 관계는 피할 수 없었다.

하버드에서 수학을 전공했던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가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라며은근히 무시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는 인문학적 사고가 없는 사람이라 그의 제품에는영혼이 보이지 않는다며 깎아내렸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윈도(Window) 라는 독점적 컴퓨터 운영 체계를 구축한빌 게이츠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쫓겨났던 애플에 다시 복귀한 후스티브는 아이팟(i Pod), 아이폰(i Phone) 같은 창조적 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세계 IT 업계의 아이콘(Icon)으로 우뚝 서게 된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적 사고는 IT 분야 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계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가 빌 게이츠와 경쟁하며 던진 아래와 같은 말 한마디는, 세계 유수(有數) 대학들의 이공계와 인문계의 담을 허물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He is bright and actually has a good sense of humor. But Microsoft never has the humanities and liberal arts in its DNA."

"그는(빌 게이츠) 뛰어난 사람이고 유머감각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인문학과 그 소양(素養)에 대한유전자가 없다."

어쨌든, 세계 IT업계의 주인공이라고 자부하고있던,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에게는 잡스의 빛나는 성공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2008년 빌 게이츠는 "후배들에게 길을열어준다"라는 말을 남기고 마이크로소프트를 홀연히 떠난다.

그의 갑작스러운 퇴진에 대해 실리콘밸리의 호사가들은 "스티브 잡스와 IT업계의폐권 싸움에서 패했기 때문"이라고 떠들었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이런 이야기는, 2011년 봄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집필한 월트아이작슨(Walter Isaacson)과 저녁 식사를 하던 빌 게이츠가 한 말에서 어느 정도사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Here I am, merely saving the world from malaria and that sort of thing, and Steve is still coming up with am- azing new products. Maybe I should have stayed in the game." He said wistfully.

"나는 지금 말라리아로부터 사람들을구하는 그런 소소한 일을 하고 있는데, 스티브는 지금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제품들을 내놓고 있군요. 아마 나도 현직에 남아 있었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부럽고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2011년 6월 27일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그가 설립한 세계 최대 규모인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제단(Bill and Melinda Foundation)을 통해자선 사업에 전념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구상했던 재단의 백신 공급 사업을 추진하며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가고 있었다.

빌 게이츠가 제프리 웹스타인과 여러 번 만난 가까운 사이라는 보도가 처음 나온 것은 2019년 10월 뉴욕 타임스에 의해서였다.

당시, 빌 게이츠 대변인은 " 자선 사업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몇 번 만난 것뿐"이라고 짧게 말했다.

얼마 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 찾아오며 이 일은 별일 아닌 작은 소동으로잦아드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5월 초 빌 게이츠 부부는이혼을 전격 발표했다.

월 스리트 저널(WSJ)에 의하면, 빌의 부인 멜린다(Melinda)는 이혼은 제프리웹스타인과의 관계가 폭로된 2019년 부터 논의되어왔고 이혼의 사유도 이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자신들의 결혼은 이미 회복 불능(irretrievably broken) 상태라고 말했다.

그 후 터져 나오기 시작한 보도들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일만 아는 얌전한 천재" 빌 게이츠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충격적인 내용들이었다.

별의별 소문이 다 나돌자, 빌 앤 멜린다재단의 전 CFO(Chief Financial Officer) 였던 알렉스 프리드먼(Alex Friedman)은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We would all benefit from focusing less on salacious gossip about their personal lives and more on how to take a good foundation model and make it better."

"우리는 그들의 음탕한 사생활 가십거리에 대해 떠들어봤자 얻을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빌 앤 멜린다 재단을) 모범적인 재단으로 세워나가고 더욱 발전시킬 수있는지를 이야기 해야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번 성(性) 스캔들(Scandal)과이혼은 빌 게이츠에게 깊은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소아성애자인 제프리 웹스타인과 어울렸다는 사실은 평범한 성 추문이아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맏딸인 제니퍼 게이츠(Jennifer Gates)가 부모 이혼 발표 후, 아버지를 빼고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인스타에 올린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IT 업계의 거인에서 백신 전도사로 변신 했던 빌이 이번에는 무슨 사업을 들고 이 어려움을 뚫고 나가려 할지 궁금하다.

그가 요즘 자주 언급하는 "소형 원자력발전" 같은 것일까?

세상에는 정말로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 같다.

145조 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빌 게이츠에게도 고난의 시기가 찾아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첨단 IT 산업 제왕의 자리를 놓고 끊임없이 스티브 잡스와 경쟁하다 물러선빌 게이츠, 그는 다시 한번 죽은 잡스에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