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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프레너미(Frenemy)

영화 <대부>는 숱한 명대사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아버지 돈 비토 꼴레오네(말론 브란도 분)가 숙명적으로 자신의후계자가 되는 막내아들 마이클 꼴레오네(알 파치노 분)에게 해주는 짧은 대사는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Keep your friends close, but your enemies closer" "친구는 가까이, 그러나 적(敵)은 더 가까이 두거라"

그냥 지나치면 흔한 이야기 같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커다란 교훈이 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호전적으로 적을 만들어 가면서투쟁한 자들보다는 오히려 적을 인정하고 설득하여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간 사람들이 훨씬 많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누군가를 공격하고헐뜯는 것보다 그들을 포용하여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다.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람 사는 세상에 큰원수진 일이 없으면 적과 친구의 의미가모호한 것 같기도 하다.

사생결단할 것 같던 사이가 우연한기회에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며 풀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죽고 못 살던 우정이 어느 날 원수 같은 사이로 벌어지는 일도드물지 않다.

영어의 프레너미(Frenemy)는 친구를 뜻하는 프렌드(Friend)와 적을 의미하는에너미(Enemy)를 결합하여 만들어진 꽤 오래된 신조어다.

이 어휘 속에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뉘앙스가 있겠지만 "살아가며 괜시리 주위에 적을 만들지 말고, 친구라고 해서 너무 내 마음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말라"라는 해석도 가능하리라 본다.

그런데, 이런 이치가 개인적인 삶을 넘어 서 한 조직과 사회, 더 나아가 국가 간의관계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지난 한 주간의 국제 뉴스는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칸)에서 미군 철수와 그에 따른 혼란을 다룬 기사들로 도배를 했다.

미국의 아프칸 전쟁은 2001년 시작해서 올해 2021년까지 20년을 끌어온, 지금까지 미국 역사에서 가장 긴 전쟁으로기록되고 있다.

전쟁에 쏟아 부은 돈이 2조 달러가 넘는다는 보도가 있으며, 2312명의 미군과3800명의 미국 민간 안전 요원이 죽었고20,666명이 부상을 당했다.

아프칸의 인명 피해는 7만 명의 정부군과 4만 7천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2백7십만 명이 고국을 떠나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전쟁의 직접적 빌미는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Al-Qaeda)의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공격이었다.

미국은 당시 아프칸 집권 세력인 텔레반에게 알 카에다를 추방하고 테러 조직의수장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즉시 미국에인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텔레반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요구를 거절하며, 미군의 폭격과 함께 전쟁이 시작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과의 전쟁이 발발하기 20년 전으로 올라가 보면, 아프칸의 무장세력들에게 싸움을 가르친 장본인이 바로미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0 여년 전인 1979년, 아프칸의 친(親)소련 정권과 내전을 벌이고 있던 무자헤딘(Mujahidin)이 그 세력을 점점 확장해가자 이를 제거하기 위해구소련은 아프칸을 전격 침공했다.

냉전시대였던 당시, 소련의 중앙아시아로의 영향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무기와 자금 지원, 게릴라전(戰) 교육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무자헤딘을적극적으로 도왔다.

당시, 중동 지방에서는 무슬림 수니파를대상으로 무자헤딘에 지원하라는 미국CIA 요원들의 활동이 공공연하게 진행 되었다.

1989년 2월 소련군이 철수하고 아프칸의 여러 지역에 기반을 둔 군벌들이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며 정정 불안이 계속되자 이를수습하기 위해 일어난 정치 조직이 텔레반이다.

텔레반(Taliban)이라는 말은 이슬람 학교마드라사(Madrassa) 등의 "학생(學生)"을 가리키는 말이다.

1994년 10월 이 2만 5000명의 수니파학생들이 남부 도시 칸다하르에 모여 정치 조직을 결성하고 자신들을 "텔레반"이라 부르며 무력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빠른 속도로 아프칸 전국으로 세력을 확장해가며, 4년 넘게 계속되던 무자헤딘 권력 투쟁을 종식시키고 정권을 장악 했다.

그 후, 텔레반은 무자헤딘과 달리 극단적 수니파 테러 조직인 알 카에다를 끌어들여 서방 세계와 긴장 관계를 형성하더니 급기야 9.11 테러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렇게 텔레반은 미국과 길고 긴 전쟁을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막강한전력을 보유한 미국이 전쟁을 빨리 끝내지 못하고 시간을 끌 수밖에 없었던 대에는 아래와 같은 복잡한 사정들이 있었다.

첫째, 적과 아군의 경계가 지극히 불분명 했다.

파키스탄은 겉으로는 미국의 아프칸 전략 의 동반자였지만 동시에 텔레반의 후원자였고 은신처 제공자였다.

독일 베를린에서 불름버그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레오니드 버쉬드스키(Leonid Bershidsky)는 얼마 전 그의 칼럼에서 미국과 파키스탄의 이런 미묘한 관계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The war against the Taliban is im- possible to win as long as Pakistan provides sanctuary and safety, train- ing, equipment, and funds for the Taliban." "파키스탄이 탈레반에게 피난과 은신처 , 군사 훈련과 무기 그리고 자금을 지원하는 한 탈레반과의 전쟁은 이길 수 없다."

파키스탄 외에 탈레반을 은밀하게 돕는 나라가 또 있었다.

미국과 중동지역 전략적 동맹관계에 있는사우디아라비아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는 탈레반이 태동할 때부터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특히 이슬람 학교 마드라사의 가장 강력한 자금 지원국가였다.

끊임없이 "알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라는 극단적 테러리스트를 배출하는 마드라사를 키워온 국가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결국, 미국은 텔레반과 전쟁을 했다기보다는, 뒤에 숨어 텔레반을 도왔던 이슬람 최대 계파인 수니파와 싸웠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전선(戰線)이 불투명한 전쟁이었다.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이 미군을 가장 힘들게 했던 난제 중의 하나였다.

멀쩡하게 미군을 돕던 아프칸 정부군병사가 갑자기 미군을 향해 총을 난사 하고, 지나가던 어린 소년이 검문소를 향해 달려와 자살 테러를 했다.

미군과 교전하던 텔레반이 국경 넘어파키스탄으로 사라지고, 또, 시민들 속으로 숨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셋째, 아프칸 정부 관리들의 부패다.

부패한 아프칸 정부는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은 지 오래다.

아프칸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황당한 이야기도 많다.

미국 정부가 아프칸 정부군에게 공급한무기들이 얼마 되지 않아 텔레반에게 흘러 들어가는 일이 수도 없이 발생했다.

군 관계자나 정부 관리들이 원조 받은무기를 텔레반에게 팔아넘긴 것이다.

미군 입장에서 보면 자국에서 만든 무기 들을 적이 들고 나타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복잡한 난제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바이든 정부의 철군은 단언컨대 옳은결정이다.

특히, 이번 철군으로 미국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아프칸의 인접국 중국과 이란에의표(意表)를 찌르는 선수(先手)를 쳤다고 봐야 한다.

무자헤딘으로부터 텔레반까지 아프칸의무장세력들은 지난 40년 동안 전쟁을 해온, 어떻게 보면 싸움뿐이 모르는 집단들이다.

자국 내 신장 위구르 이슬람 세력과 늘 긴장 관계에 있는 중국은 이 호전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것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앙숙 관계에 있는 이란에게도텔레반 정권은 옆구리를 겨냥한 단도(單刀)가 될 수 밖에 없다.

시아파를 이교도로 간주하고 있는 수니파탈레반의 입장에서 볼 때, 시아파 종주국이란과는 근본적으로 화해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