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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松南) 이병기 선생의 모악산(母岳山)을 읽고

나에게 송남 선생의 유고시문집(遺稿詩文集) <모악산>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한 사람은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용친구다.

이정용 친구는 자신의 부친인 춘강(春崗) 이춘재 선생과 송남 선생과의 오래된 인연도 이야기해주었다.

송남 선생은 전북 대학교 교수로 이직 하기 전, 남성 여고 교장이었던 춘강 선생을 모시고 교직 생활을 했었다.

두 분은 나이 차이가 꽤 난다.

춘강 선생이 1919년 생이고, 송남 선생이1932년 생이니 13살 차이가 난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나이를 떠나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공통점이 있었다.

두 분은 술을 너무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했던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관계였다.

이런 연유로, 그들은 동생으로 형으로술 친구로 그리고 문우(文友)로 많은시간들을 함께 했었다.

내 주위의 지인들은 많이 알고 있는사실이지만, 송남 이병기 선생은, 역시, 우리 고등학교 동기(同期)인 이경재 친구의 부친이다.

얼마 전, 이정용 친구와 이경재 친구가마련한 술자리에 나도 낀 일이 있었다.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세대를뛰어넘은 두 친구의 교제가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시문집(詩文集) <모악산>을 집에 들고 온 날, 몇 페이지를 읽다가 쉽게 보며 넘길 책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조용한 시간에 하루에 몇 편씩만감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악산>에 실린 송남 선생의 글은 시와수필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보이지만, 나는 선생의 작품을 시(詩)라고 정의하고싶다.

사실, 문학 장르 중 글 쓴 이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분야가 시라고할 수 있다.

시는 소설이나 수필 혹은 일반교양서적과 달리, 은유(隱喩)가 많고 압축된 짧은 글이대부분이라, 상당한 시를 읽고 외울지라도 시인의 감정과 사상에 공감(共感)하기가 쉽지 않다.

시문집 <모악산>은 제목부터 독특했다.

보통, 시집은 한 권에 다양한 제목의 시들을 싣고, 그 시들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시를 책의 제목으로 구성하는데, <모악산> 에 실린 77편의 시들의 제목은, 어찌 된 일인지, 모두 "모악산"이라 하였다.

물론, 작품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모악산 뒤에 아라비아 숫자를 붙여 놓기는 했지만...

그 이유를 시문집에 실린 시를 모두 감상 하고 나면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시인은 독서와 사색(思索) 그리고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일들을 통해 영감(靈感)을 얻고, 그 안에서 또 다양한 시의소재를 찾아 창작의 꽃을 피운다.

그러나, 송남 선생의 모든 시의 중심에는모악산이라는 거대한 지주(支柱)가 버티고 있다.

마치, 대항해시대에 뱃사람들이 바라보던북극성(北極星)처럼, 선생의 모든 시들은모악산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시를 깊이 들여다보면, 언제인지는알 수 없지만, 송남 선생의 마음속에는모악산이 이승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야 할 때, 그가 찾아갈 본향(本鄕) 으로 굳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글을 쓰는 문인(文人)은 두 유형(類型)의 사람이 있다.

내가 박경리의 <토지>를 읽었던 게 30년전쯤 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한참 뒤에, 박경리는 토지를 탈고(脫稿) 할 때까지 하동의 평사리를 가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아니, 어떻게 작품의 배경이었던 장소에가보지도 않고 그런 장편 대하소설을 썼다는 것인지 도대체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박경리 선생이 직접 쓴 글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 위를 걷다가 문득 비슷한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추고 지나가는 곤돌라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영국인이었던 셰익스피어는 그의 대표적인 희곡들의 배경이 영국이 아닌 작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햄릿>의 배경이 덴마크였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의 베로나였으며 <베니스의 상인>은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베니스의 상인>이 쓰인 당시 베네치아 상인들의 주요 활동장소가 리알토 다리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득 하동의 평사리가 생각나 걸음을 멈춘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이 리알토 다리를 걸어보고 <베니스의 상인>을 썼을까?

셰익스피어에 대한 사적(私的)인 기록이이상할 정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그는 이탈리아에 가본 적이 없다"라는 것이 대부분 역사학자들의 의견이다.

어쨌든, 소문과 독서 위에 상상만으로 그런 명작을 남겼다는 것은 경이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혀 다른 성향의 위대한 작가도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나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으며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에 대한 그의 끝없는 탐구 욕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나폴리를 여행하며 베수비오산을 올랐다.

18세기 변변한 등산로도 없는, 화산재로질퍽거리는 산길을 유황 냄새를 맡아가며 괴테는 용암이 부글거리는 베수비오산 정상 분화구까지 세 번이나 올랐다.

나는 괴테가 그렇게 힘든 산행을 했던 이유는 그의 작품 <파우스트> 등에서 등장하는 지옥에 대해 생생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괴테는 자신의 작품 속의 배경을묘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대상(對象) 들을 탐구했다.

주제(主題)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길었다.

그러나, 그것은 송남 이병기 선생이 창작의 노고(勞苦)에 임하는 마음이 박경리나셰익스피어보다는 괴테의 기질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송남 선생은 모악산이라는 시들을 번뜩 이는 재주만을 갖고 쓰지 않았다.

그는 모악산을 노래하기 위해 인근의지형과 마을은 물론 모악산과 맥이 닿는구례와 지리산 그리고 멀리 광양까지살피고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모악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산과 강, 들과 마을 그리고 그가 탐사했던 마을 역사 속 인물들은 이를 증명하고 남는다.

강경 벌판, 벽골제, 만경강, 수왕사, 중인 리, 수월리, 매천사, 구례 운조루, 백운산, 계족산, 지리산, 구이저수지, 용화 삼거리, 입석산, 마이산, 내장산, 계화도...

모두가 모악산이 품고 손짓하고 있는호남 땅의 정다운 이름들이다.

우리 모두는 노년(老年)의 길에 들어서면외롭다.

그것은 재물이 있고 없고, 명예와 권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인생의 종착역이 점점 다가올수록 휘감아오는 고독과 쓸쓸함은 누구도 피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앞서간 현인들은 그들의 노년의 때에 마음속에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신앙과 같은 대상을 간직하고, 그와 함께동행하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송남 이병기 선생은 모악산을 쓸 때, 가까이 다가온 죽음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나온 삶을 어머니의 산인모악산에 비춰보며 인생의 환희와 허무를 함께 노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분명히 인생의 황혼기에 모악산이라는 마음속 본향을 두고, 그 영원의모성(母性)으로부터 큰 위로를 얻었다.

<모악산>의 일흔일곱 편의 시를 감상 하고 사색하며, 나는 송남 선생으로부터그 놀라운 지혜를 배웠다.

선생의 시문집 <모악산> 표지 뒷면에실린 시 한 편를 덧붙인다.

모악산.44

울고 싶습니다 그러나 소리는 없어야지요 어머니 앞에서

언제나 그대로 젊으셔웃으시며무한하게 풍기는 향기입니다

영원永遠입니다구슬에 미풍이 이는 관세음 낮은 데서는높게만 솟아나며 안에서 부르고

마음입니다내 가운데 비어놓은 바다 그런 때는 떠오르는 섬 다른 이름처럼보기에따라 새로운 느낌으로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