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와 접두사 K
3년 전에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걷고 있을 때였다.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의 수학여행과 비슷한 유적지 단체방문으로 보였다.
한 학생이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라고 말을 걸어와 "코리아"라고 대답하자, 주위의 아이들이 "아- 강남 스타일" 하며말춤을 추며 한참을 즐거워했다.
이렇게 외국의 낯선 거리를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반가운 한류 팬(?)들을 만나게 된다.
2/30년 전만 해도 LA의 한인 타운에 가면, 방문객들의 7/80 퍼센트는 한국인이었고, 백인이나 흑인 혹은 히스패닉계 사람들은 드문드문 보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거꾸로 7/80 퍼센트가외국인들이라고 한다.
외국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진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후진국이라는 선입견을 뗄 수 없었던3/40년 전을 돌아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이런 때 쓰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온 라인 스트리밍기업인 넷플릭스(Netflix)에 의해 서비스 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세계적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83개국에서 방영되고 있는데, 83개 전 국가에서 1위를 했다고 하니, 정말이지, 한류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 공동 CEO인 리드 헤스팅스(Reed Hastings)가 오징어 게임의 상징 같은 녹색 트랙슈트(Tracksuits: 운동복) 를 입고 스퀴드 게임(Squid Game: 오징어 게임)의 457번째 참가자가 되었다며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런 기세라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기존의 넷플릭스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것만 같다.
그러나, 기우(杞憂)이겠지만, 드라마 한 편의 흥행 성공에 모두가 너무 들떠 있는현상을 보며, 자칫 우리도 "우리 것이 최고 라는 문화 쇼비니즘(文化 Chauvinism)"에 빠져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 영문학 명예 교수인 김성곤 씨가, 지난 9월 8일 더 코리아 헤럴드에 "한국의 국제화와 접두사 K- (The globaliza- tion of Korea and the prefix K-)"라는영문 칼럼을 기고했는데 꽤 흥미롭다.
김 교수는 그의 칼럼에서 요즘 한국 유무형 문화에 접두사 "K-"가 남용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K-Culture(문화), K-Literatu- re(문학), K-pop(팝 뮤직), K-food(음식), K-Cars(자동차), K-Dramas(드라마), K- Quarantine(방역) 등과 같은 것들이다.
김 교수는 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작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가 <The Vegetarian>으로 번역되어 해외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2016년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라는 상을 수상한 일이 있었다.
국내 언론들이 당시 이를 두고 "국제 사회 K-문학 인정하다"라는 헤드라인으로 일제히 비중 있게 보도를 했다.
그런데, 정작 이 작품을 영어 번역 했던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는 이런보도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 했다고 한다.
데보라 스미스는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상을 받은 것은 K-문학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흥미를 자아낸 훌륭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래와 같은 말로 자신의 주장을정리했다.
"We should not use the term K-Lit- erature for 'The Vegetarian' becau- se it limits the novel to the category of regional literature." "우리는 <채식주의자>에 K-문학이라는 말을 붙이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는 (자칫) 이 소설을 지역 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보라 스미스가 자신의 의견을 담담하게 이야기 한 것이지만, 그녀의 의견은 한편으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크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서 발행되는 영어 신문에 BTS를표현할 때, "K-Pop sensation BTS"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K-Pop sensation"을 굳이 우리말로번역해 보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K- Pop 스타" 정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빌 보드 차트를 휩쓸고 있으며비틀스나 마이클 잭슨에 비견되고 있는BTS 앞에 그런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있는지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각해봐야 한다.
데보라 스미스의 의견을 존중한다면, 당연히, BTS 앞에 따라붙는 "K-Pop스타"라는 말은 어색한 미사여구(美辭麗句)이며 불필요한 수식어, 리던던시(Redundancy)이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BTS를 K-Pop 스타가 아닌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대우를 해주고 성원하는 것이 옳다고본다.
비틀스가 "B-Pop 스타"가 아니고, 마이클 젝슨이 "A-Pop 스타"가 아니라 전 세계인이 사랑했던 위대한 아티스트였듯이 말이다...
7/80년 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쳤던 일본의 "J-Pop"과 "일본 문화"는 문화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
당시, 일본인들은 마치 자신들은 아시아인이 아니라는 듯한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할 정도로 문화 우월주의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지금, 과거 자신들의 이기적 선민주의(選民主義)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배워가고 있다.
어떤 문화든지 그 문화 속에 오만의 빛이 보이고 편견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이를거부하려는 움직임이 필연적으로 일어나 게 되며 결국은 소비자들이 냉정하게 등을 돌린다.
맥도날드가 미국의 문화라고 자랑하는 미국인이 없고, 이제 세계인의 언어가 된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영어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자랑하는 영국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엄격히 말하면, 문화에는 주인이 없으며, 문화의 우열을 가리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누구든지 어떤 문화를 받아들여 즐기며향유(享有) 하면 그들이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우리 문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들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쯤 누군가 경고음을 울려 주어야 한다.
자기 문화를 비하하는 패배주의도 금물이지만, 맹목적이며 천박한 문화 우월주의도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은 무분별한 접두사"K-"의 사용을 억제해야 하며, 아울러, 시민들이 지금 일고 있는 한류에 절제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선도 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의 국경이 사라진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한류의 작품들을세계인들과 함께 작품 그 자체를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