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어휘 선택과 언론의 책임
새로운 어순(語順)과 낯선 단어들을 외워야 하는 외국어 공부는 만만치 않다.
특히, 방대한 수(數)의 어휘를 자랑하는 영어를 익히는 것은 힘들고 긴여정(旅程)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배우려 하는 이유는 빠른 속도로 국제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좋든 싫든 이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 내가 말한 단어가 상황에 적절한 것인지, 혹은, 발음이 정확했는지를 의식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외국어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즉, 정확한 단어 설정과 발음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오히려 언어 발전에방해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틀린 단어도 말해보고 부정확한 발음일지라도 용기 있게 계속 대화를 하며, 언어 구사 능력를 자연스럽게 향상시켜 가는 과정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이라는 이야기다.
발음에 대한 한 예를 들어 보면, "연어"를 뜻하는 새먼(Salmon)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의 "엘(l)" 발음이 묵음(默音) 이기 때문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새먼"이라고 발음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가끔 비 영어권 출신의 세계적 쉐프(Chef)들이 방송에 출연해이 단어를 "살몬" 혹은 "샐몬"이라고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복되는 이야기 같지만, 단어 선정이나발음에 지나친 부담을 갖지 말고 용기를 내 부딪쳐 보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화(會話)와는 달리, 국가 간의조약 문서, 국제회의 성명서 그리고 회사 간의 계약 문서 등을 작성할 때는 어휘선정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우에서 열렸던26차 UN 기후변화 콘퍼런스(Confer- ence)가 지난 11월 13일 막을 내렸다.
콘퍼런스에서 많은 안건을 논의했지만, 주요 의제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실천하자"라는 센턴스로 함축할 수 있다.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었던 이 회의의 마지막 날, 발표한 성명서를 본 과학자들과 환경 운동가들은 "실패한 합의"라는혹평과 함께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은 최종 합의문에서 탄소 배출의주범인 석탄 사용에 대해 2050년까지점진적 퇴출을 의미하는 "페이싱 아웃(Phasing Out)"을 중국과 인도의 강력한 요구로 점진적 감축을 뜻하는 "페이싱다운(Phasing Down)"으로 수정했기 때문이다.
문구 하나의 변경이 많은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2주가량의 열띤 토론과 논쟁으로 어렵게 얻어낸 합의문 내용을 완전히퇴색시켜 버린 것이다.
영국의 BBC는 이를 "합의서 내용을희석 시킨 물타기 워터 다운(Water Do- wn)"이라고 보도를 했다.
짧은 문구 하나가 몰고온 엄청난 파장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영어에서 차용(借用)해 사용하는 어휘 중에 흥미로운 말들이 꽤 많다.
대표적인 단어로 "원피스(One Pie- ce)"라는 말이 있다.
영어에 위아래로 나누어 입는 옷을 투 피스(Two Piece)라고 하니, 하나로입는 옷은 원피스라고 해도 되겠다는생각에서 이런 말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러나, 영어에서 원피스라는 말은사용되지 않으며, 이는 드레스(Dress) 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어디 원피스뿐이겠는가,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무심코 사용하는 출처 불명의 영어 어휘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이제 늘 한 몸처럼 갖고 다니는 핸드폰(Hand Phone)은 "셀폰(Cellphone)"의 한국식 표현이며, 노트북(Noteboo- k)은 영/미인들의 "랩탑(Laptop)"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11월 17일 더 코리아 헤럴드에 기고한 서울대 김성곤 명예교수의 영문칼럼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얼마 전 뉴욕 주립대에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는 외국인 참석자들에게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일이 있었다.
"At the Orientation, we will give you
a notebook." "오리엔테이션 참석자들에게 노트북을제공하겠습니다."
이 이메일을 본 한국인 학자들은 크게 기뻐했지만, 참석 후 노트북(공책) 을 지급받고 적잖이 실망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는 생활 필수품이 된 자동차에도 이런 유(類)의 어휘들이 넘쳐난다.
영어의 스티어링 휠(Steering Wheel) 을 "핸들(Handle)"이라 하고, 이머전시브레이크(Emergency brake)를 "사이 드 브레이크(Side Break)"라고 당당히사용하고 있다.
또, 레어뷰 미러(Rearview Mirror)를"백 미러(Back Mirror)"라고 말하며, 윈드쉴드 와이퍼(Windshild wiper)를"윈도우 브러쉬(Window Brush)"라고 부른다.
이런 이상한 어휘들이 비단 생활 용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북핵 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정작 우리만 빼놓고 미국과 중국 그리고북한이 물밑 협상을 하고 있다며 언론과야당이 정부를 공격하는 용어로 "코리아패싱(Korea Passing)"이라는 말을 사용 해 많은 외신 기자들의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한일이 있었다.
패싱(Passing)이라는 어휘는 "지나가는"이라는 뜻도 있지만 "죽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His Passing"은 "그의 죽음"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코리아 패싱"은 분명히 어감(語感)이 좋지 않은 적절치 못한 표현이다.
오미크론(omicron)이라는 변종 바이러스가 발발하기 얼마 전에, 정부가 코로나 통제로부터 점진적 개방을 발표하며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영어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라는 말이 최근에 각종 언론을 통해 오르내리고 있다.
틀린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의 뉘앙스가 긍정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가 최선을 다해제압해야 할, 혹은, 그 독성이나 전염성을 감기 정도로 무력화(無力化) 시켜야 할 적(敵)이지 동행의 대상은 아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라는 말이유행하면서 사람들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돌아봐야 한다.
이 말의 적절성을 떠나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위드코로나(With Corona)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단계적 규제 완화", "점진적 일상 회복"과 같은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언론이 이런 외래 신조어를 만들어사용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고 싶다면,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하는 "(점진적) 정상으로회복"을 의미하는 "리턴 투 노말(Return to Normal)"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문구다.
"우리끼리만 통하면 되지 꼭 영어다운영어만 쓸 필요가 있느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왕에 영어를 우리말과 함께 사용할 거라면 정상적이고 표준화된 어휘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
더군다나 교육을 받고 있는 어린 세대를 생각한다면 더욱더 외국어 차용에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성장한 후 국제 무대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경쟁해야 할 때, 어린 시절부터 무심코 말해오던 수많은 왜곡된 단어들이 혼란을 주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마치, 노트북을 준다는 이메일을 보고기뻐하는 학자들처럼 말이다...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우리가 사용 하고 있는 정상적이지 않은 외래어들을정리하여 바로잡음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의 불필요한 혼란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