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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巫俗)과 르네상스 (Renaissance)

영어의 어원을 따라 과거로의 먼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유럽 문화의 발전과정을 추정(推定)해 볼 수 있는 꽤나 흥미로운 어휘들을 만날 때가 있다.

Astrology(어스트랄러쥐)라는 단어가 있다.

astro(애스트로우)는 라틴어로 별을 뜻하며, ology(알러쥐)는 학문을 말 하기 때문에 언뜻 보면 이 단어의 뜻은 별을 연구하는 학문, 즉, "천문학"처럼 보인다.

그런데, Astrology는 천문학이 아니라"점성술"이라는 의미의 어휘다.

점성술에 관련한 이야기는 문학 작품과기타 기록이나 예술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또, 현대 영어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Disaster(디자스터) 같은 어휘를 꼽을 수 있다.

dis(디스)의 "떨어지다"라는 라틴어어원과 "별"을 뜻하는 aster(애스터)를결합시켜 "별이 떨어지다"라는 어휘가 만들어진 것이다.

"별이 떨어졌으니 큰 혼란이 올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으므로, 당연히, Disa- ster(디자스터)의 뜻은 "재앙"이다.

점성술 뿐만 아니라, 유럽의 전설이나민담에는 마법과 무속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기록에 나타난 인류사의 가장 오래된점쟁이는 3천 년 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이레시아스(Teiresias)이다.

테이레시아스가 점쟁이가 된 기원은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아테나 여신의 벗은 모습을 보게 된 죄로 눈이 멀었고, 후에 이를 가엾게 여긴 여신이 예언의능력과 앞을 인도할 수 있는 지팡이를주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유럽 문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문학은 크게 두 장르로 나눌 수 있다.

비극(悲劇)과 서사시(敍事詩)다.

신화 속의 이 독보적 점쟁이 테이레시아스는 대표적인 비극과 서사시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에서 테이레시아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작품의 주인공 오이디푸스 왕에게 곧 다가올 참담한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앞 못 보는 장님이 되고 부자에서 거지가 되어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이국땅으로 길을 떠날 운명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함께 살고 있는 그의 자식들의 형이자 아버지이며, 자신을 낳아준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며, 아버지의침대를 이어받은 자이자 자기 아버지의살해자임이 밝혀질 것이오."

수수께끼 같은 저주에 가까운 점괘를늘어놓는 테이레시아스를 오이디푸스 왕은 "음흉한 마법사, 교활한 돌팔이설교사"라며 모욕했지만, 결국, 자신이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실이 밝혀지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 왕비는 곧바로 목매 자살한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 왕비의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두 눈을 찌르며 (자신의 두 눈을 향해) 이렇게 저주한다.

"이제 너희는 내가 겪고,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의 예언대로 장님이 되어 지팡이를 집고 딸이자 누이인 안티고네의 부축을 받으며이국땅 아테네를 떠돈다.

테이레시아스는 호메로스 서사시<오뒷세이아>에서 죽어 저승에서도 점을 본 것으로 유명하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를 향해 고난의 항해를 하던 중 마녀 키르케를 만나 함께 살게 된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야 한다며 한탄하자 측은하게 생각한 마녀는 오뒷세우스에게 그러려면 먼저 저승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태양신의 딸인 키르케의 도움으로 오케아노스 강을 건느고 페르포네스 숲을 넘어 보이지 않는 곳, 알 수 없는 곳 저승 하데스(Hades)에 도착한다.

오뒷세우스는 저승에서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와 트로이 전쟁의 옛 전우인아가멤논, 아킬레우스, 아이아스 등을 만났다.

그리고, 드디어 테이레시아스를 만나게 된다.

오뒷세우스를 만난 테이레시아스는 이렇게 말 한다.

"불운한 자여, 그대는 무슨일로사자(死者)들과 기쁨없는 장소를 보려고 햇빛을 떠나 이리로 왔단 말이오? 내가 피를 마시고 거짖없는 진실을 말 할 수 있도록 그대는 구덩이에서물러서고 날카로운 칼을 치우시오."

오뒷세우스는 뒤로 물러서며 칼을칼집에 넣었고, 테이레시아스는 검은 피를 마시고 예언을 했다.

"영광스러운 오뒷세우스여, 어떤 신(포세이돈)께서 그대에게 힘든 귀향길을 정해두셨소. 그분은 그대가 사랑하는 자기 아들(외눈박이 폴뤼페모스)을 눈멀게 한 것에 화가 나서 그대에게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이오. 그러나 그대는고생은 해도 고향에 돌아가게 될 것이오."

오뒷세우스는 테이레시아스의 점괘대로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서양의 신화, 철학 그리고 문학과 관련한 고전들을 읽다 보면, 그들도 동양과 비슷하게 무속이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은 동양이 갖지 못했던 엄청난 문화적 혁명의 자산을 얻게 된다.

바로, 르네상스(Renaissance)다.

14세기-16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나라로 퍼져나간 르네상스는 문학, 미술, 건축, 자연과학과 같은 분야의 근대적사상의 거대한 분출구가 되었다.

르네상스를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 운동의 근본적인 정신은 신(神)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중세의 사상을 거부하며 인간의 지적 창조적 힘을부흥시켜 인간성을 해방시키려는 저항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를 거치며 서구사회는 인문학 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에서도 대 전환기를 맞이했다.

서양의 과학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교황청의 경고를 견디며 이 지동설을 지지한, 신이 중심이었던 "닫힌 우주관"에서 "열린 우주관"으로 혁명적인 길을 열었던 갈릴레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된다.

현대 사회에서 동서양의 과학의 간격이 많이 좁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인류의 삶을 바꾼 혁신적인원천 기술은 동양에는 아직 하나도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라디오, Tv, 카메라,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반도체,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이 모든 원천 기술은 서양에 있다.

이제,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화성에 가겠다고 하며, 하이퍼루프(Hyper- loop) 열차로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30분 만에 연결시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분에 주파 하는 믿기 힘든 속도다.

또, 우주 개발 사업에 뛰어든 아마존 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워싱턴DC에서 열린 이그나티우스 포럼에서수백만 명이 살 수 있는 우주 식민 도시를 개척해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공장을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무속적 점성술((Astrology)을청산하고 과학의 천문학(Astronomy) 시대를 연 르네상스의 DNA를 갖고 있는 서구인들의 창의성은 무한하다.

논리의 비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인간의 지적 창조성을부르짖은 르네상스를 품은 서구인의창의적 사고는 분명히 동양인을 압도 하고 있다.

나는 델포이의 신전 터를 걸으며 인류사의 불세출의 영웅 알렉산더를 생각했던 일이 있다.

2300여 년 전 알렉산더는 저항하던아테네와 테베를 제압하며, 페르시아원정 준비를 끝내고 신의 예언을 듣겠다며 이 델포이 아폴론 신전을 찾았다.

그러나, 델포이 무녀 피티아(Pythia) 는 택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신(接神) 을 거부했다.

알렉산더는 부관들에게 무녀를 끌고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신전에서도 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氣像)을 보이는알렉산더 앞에 무녀는 기가 막혀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세상에 당신을 가로막을 자가 누가있겠습니까?"

알렉산더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됐다, 신탁을 받았으니 돌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