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권력자 블라디미르 푸틴 (Vladimir Putin)
인간은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속성이 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병"을 말하는 영어의 노스탤지어(Nostalgia)는, 원래 그리스에서 온 어휘로, "귀향(歸鄕)"을 뜻하는 노스토스(nostos)와 "아픔"을 나타내는 알고스(algos)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다.
문학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이 어휘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의학(醫學) 용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스탤지어(Nostalgia)의 어미(語尾) 엘지어(algia)가 붙은 아래와 같은 많은단어들을 의사들의 처방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통의 뉴랄지어(Neuralgia), 심장통의 카디앨지어(Cardialgia), 근육통의마이앨지어(Myalgia), 관절통의 아트랠지어(Arthralgia) 등... 이런 어휘들은 모두 노스탤지어와 사촌지간이다.
어쨌든, 흘러간 지난 세월에 너무집착하며 우울해하는 것도 일종의 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이런 노스탤지어가 한 개인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로 방대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노년층이 잃어버린 30년을한탄하며, 지난 70/80년 대의 좋았던 경제 호황기를 그리워 하는 것도 일종의 집단적 노스탤지어다.
특히, 80년대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기이전까지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며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러시아인들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인들의 이런 노스탤지어를 최대한 이용한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웃옷을 벗고 말을 모는가 하면 한 겨울에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가수영을 하며 강력한 러시아를 상징하는지도자의 이미지를 굳혀 나갔다.
푸틴은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국내의 어려움을 국제 분쟁과 연결시키며 해결해나가는 뛰어난 전략가의기량도 보여 주었다.
그는 2011년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서방 측이 지원하던 반군을 무차별 공습하며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편을 들었다.
푸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반군 진압에 성공한 알 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 해군에게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전략적요충지의 한 곳인 타르투스(Tartous) 항구 사용을 사실상 승인하며 서방 진영을 아연 긴장 시켰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뉴스가 시시각각으로 전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며독립한 우크라이나가 서방 측으로 기울며 EU와 네이토(NATO)에 편입하려하자 극심한 거부 반응을 보여왔다.
결국, 2014년 3월 푸틴은 군을 동원 하여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장악한 후 국민 투표를 실시해 러시아와 합병한국제적 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시기가 참으로 절묘했다.
2014년 당시, 러시아는 경제 불황으로 푸틴의 지지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크림반도 무력 합병은 단숨에 그의 지지도를 80퍼센트 이상 급상승시키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비록, 크림반도 무력 합병으로 러시아는 G8에서 추방되고 미국과 EU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고 있지만, 푸틴은 국내 권력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하며 국제사회에 그의 카리스마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소득을 얻었다.
크림반도 합병 후 지금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극도의 긴장상태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명분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구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우크라이나가 EU와 밀착해 가며 사실상 네이토(NATO) 군사 시스템으로무장하고 있는 상황은, 모스크바와 근접한 지정학적 이유를 떠나 러시아 국민정서가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위해 그동안 군사 무기 현대화를 서두르고6200억 달러의 외환을 비축하는 등 그 준비를 치밀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2만 명에 달하는 정규군을군사훈련이라는 명분 아래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전격 배치했다.
이번 겨울이 침공 적기(適期)라고판단한 푸틴의 계산을, 독일의 정치평론가 슬로미르 쎄라코브스키(Slaw- omir Sierakowski)는 2월 6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The United States is busy with China. Germany has new, untested government whose leading party tend to be friendlier toward Russia. French President Emmanuel Mac- ron is busy trying to win re-elect- ion. British Prime Minister Boris Johnson is on the verge of losing power. 미국은 중국과의 대립으로 정신이 없고, 독일의 검증되지 않은 새 정부(연립정부) 다수당은 친 러시아 경향을보여왔다. 프랑스 이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은 내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바쁘며, 영국 총리 보리스 총리는 (최근) 권력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푸틴은 러시아가 개전을 하면네이토(NATO)는 강경파와 온건파 그리고 미국과 유럽이 의견 차이를 보이며내분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푸틴이 수(手)를 잘못 읽은 듯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푸틴의 도발을 아프가니스탄에서 구긴 체면을 회복 하는 계기로 이용하고, 러시아에 의존 하고 있는 유럽의 에너지 시장을 탈환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나약한정권의 이미지를 벗으려 러시아와의공동 가스관 프로젝트인 "노드 스트림투(Nord Stream 2)"를 파기하겠다는초강경 경고까지 보내며 덤비고 있다.
특히,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팬데믹기간에 총리 공관에서 "bring your ow- n booze"와 "wine time Friday"라는술판을 벌인 파티게이트(Partygate)로 정권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는데,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에 강력한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러시아가 침공을 하면, 그동안 주로 런던 금융 시장에서 관리 하던 푸틴의 측근 정재계 인사들, 올리가크(Oligarch)의 자금을 모두 압류하겠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총 공세를취하며 침공해 올 경우 수도 키예프(Kyiv)는 수일 내로 함락될 것으로 예측 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은 게릴라 전을 펴며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럴 경우 자칫하면 러시아는 지난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길고 긴 소모전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이렇게 네이토와 우크라이나가 동맹 관계를 굳혀가며 탄탄한 연합 전선을형성하자 푸틴의 전략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어제(17일) 세계 모든 언론들은 러시아가 긴장 완화를 위해 철군을 시작하고 외교적 해법을 환영한다는 보도를 쏟아냈지만, 안타깝게도, 푸틴이 아무런성과 없이 철군을 감행하는 것은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
첫째, 네이토는 더 이상 러시아를 자신들의 강력한 적수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우크라이나는 지체 없이 EU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 네이토에 가입하려 할 것이며, 네이토는 동 유럽에 무력을 확장하며 러시아의 영향력을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셋째, 미국이 내심 러시아에 양보하려 했던 협상 카드를 모두 거두어 드릴 것이다.
무엇보다, 옛 소비에트 연방의 영광을되찾겠다며 지금까지 쌓아왔던 푸틴의유산(遺産), 레거시(Legacy)는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워싱턴의 베테랑언론인인 마틴 슈람(Martin Schram) 같은 칼럼니스트는 서방은 코너에 몰린푸틴에게 "오프 램프(off-ramp: 진출차선)"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