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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철학자(哲學者)의 이야기

가끔 주위 지인들 중에 이탈리아 여행, 특히, 로마의 자유여행에 대해 궁금해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그들에게 꼭 들러보라고 추천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팔라티노 언덕"이다.

팔라티노 언덕은 나도 로마에 갈 때마다 찾아가는 곳이다.

잠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도시락을 준비해 소풍 가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놀다 오는 정든 장소이기도 하다.

유적지의 기원을 탐구하는 따위의 그런 무거운 마음은 다 내려놓고, 푸른 하늘 밑 잔디밭에 앉아 이것저것 주전부리하며 사색에 잠겨보기에는 정말이곳만 한 곳이 없다.

로마의 일곱 개 언덕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이 동산은, 늑대의 젖을 빨며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티베르 강을 타고 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괴테는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왔을 때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을 숨겨 놓은 "팔라티노 정원"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괴테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은, 아마, 팔라티노에서 내려다보는 로마의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였던 포로로마노(Foro Romano)의 장관(壯觀) 때문이 아니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한눈에 들어오는 포로 로마노를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대 제국을 건설해나갔던 수많은 영웅들이 금방이라도 말을 타고 달려 나올 것만 같아, 쉽게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로마인들의 용맹과 기상 그리고 사치와탐욕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예술가와문인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 pear)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고 <줄리어스 시이저(Julius Caesar)> 를 썼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이저>는 그의 희곡(戲曲) 중 독특한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은 <줄리어스 시이저> 이지만, 이 희곡의 주인공은 시이저의 암살을 주도한 브루투스(Brutus)다.

작품의 중반부에 시이저는 살해되고, 그 뒤 이야기는 브루투스를 중심으로이어저 나간다.

전쟁을 마치고 갈리아 지방에 머물던 시이저는 국경을 넘지 말고 대기하라는원로원의 명령을 거부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로마까지 진격해 단숨에 권력을 장악했다.

인간사(人間事)가 다 그렇듯이, 시이저가 권력을 손에 넣자 그를 시기 하고 견제하던 세력들까지 고개 숙이며찬양하기에 바빴다.

이런 와중에 시이저의 측근 안토니우스가 3번이나 왕관을 바치려 했으나, 시이저는 이를 사양한다.

그러나, 이런 즉위(卽位) 거절은 자신의겸손을 나타내려는 의도였을 뿐, 로마는 이미 공화정 시대가 끝나고 시이저가제위(帝位)에 오르는 것은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이런 극적인 권력의 전환기에 공화정을 신봉하던 사람들 중 한순간에 모든 권력을 빼앗기고 자유민이 아니라 노예 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극도의 반감을 갖는 무리들이 있었다.

브루투스를 중심으로 카시우스(Cass- ius), 카스카(Casca) 그리고 데키우스(Decius) 같은 인물들이다.

전통적 공화파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은 브루투스는 뛰어난 웅변가이기도 했으며 많은 원로원 의원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정치인이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 시이저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에서 브루투스를, 로마를 독재자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대의(大義)적 의무와 시이저와의개인적 관계에서 고뇌하는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결국, 로마를 위해 사적인 관계를 버리고 시이저를 암살하기로 결심 하게 된다.

거사를 실행하던 그날, 카스카가 제일 먼저 시이저의 등에 칼을 꽂으며 다른음모 가담자들이 뒤따르고 마지막에브루투스가 찌른다.

"브루투스여, 너도인가?"라는 유명한 말은 이 작품에서 태어났다.

흥미로운 것은, 셰익스피어는 원작에서 이 문장을 "And you too, Brutus?"라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에뚜 투 브루테?(Et tu, Brute?)"라는 라틴어를 사용하므로 극적인 효과를한껏 끌어올렸다.

시이저가 암살되고 정국은 "독재자를제거했다."라는 여론과 "왜 로마의 위대한 영웅을 죽였느냐?"라는 동정론이팽팽하게 맞섰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브루투스가 암살사건 후 시이저의 측근 안토니우스를제거하자는 카시우스의 요청을 거부한 것은 그가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무시한이상주의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판단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브루투스는 안토니우스가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市場)에 시이저의 빈소를 설치하고 장례식을치르자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평생 전쟁터만 떠돌던 무식한장군으로 알고있던 안토니우스는 시이저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빈소에모여든 로마 시민들 앞에서 노련한 정치인 뺨치는 열정적인 연설을 하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브루투스의 인간적배신을 꾸짖으며, 그에게 예상치 못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

"For Brutus, as you know, was Caesar's angel. Judge, O you gods, how dearly Caesar loved him! This was the most unkindest cut of all.

브루투스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시이저가 가장아끼던 사람이었습니다. 시이저가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신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브루투스가 시이저를 찌른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무정한 처사입니다"

팽팽하던 시민들의 여론은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들은 후 브루투스에게 등을 돌리는 쪽으로 급변했고, 급기야 그는 지금의 마케도니아 지방의 필리피(Philippi)로 피신해야 했다.

결국, "평화와 자유를 위해 시이저를죽여야 했다"라는 브루투스의 항변은"신의를 버리고 정치적 아버지를 배신했다"라는 로마 시민들의 비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브루투스는 스토아 철학을 깊이 공부한 고매한 인품의 사색가(思索家)이자철학자였다.

적어도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서는그렇다.

그런데, 브루투스와 동 시대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또 한 명의철학자가 있었다.

스토아 철학의 대가(大家)이며브루투스와 같은 공화주의자였던키케로(Cicero)다.

시이저의 암살 계획을 준비할 때, 현실감각이 뛰어난 카시우스는 브루투스에게 귀족들과 시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키케로를 끌어들이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키케로의 인품을 알고있던브루투스는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며 단호히 거절한다.

"O, name him not. Let us not break with him, For he will never follow anything That other men begin.

아니요,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마시오. 그에게 우리의 계획을 말하면 안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짜놓은 어떤 계획에도 절대 따라오지 않을 것이오."

키케로는, 그의 학문적 깊이와 덕망을알아본 시이저가 신뢰를 보이며 끊임없이 회유했지만, 공화정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한 길을 갔다.

시이저는 키케로가 언급될 때마다, 그는 로마의 학문을 빛낼 큰 인물이라고 말했다.

시이저의 끈질긴 호소와 권유를 물리치며 공화정 수호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멈추지 않던 그는, 끝내, 현실 정치에좌절하고 로마를 떠난다.

키케로는, 결국, 시이저가 죽은 후 기원전 43년 자신이 탄핵했던 안토니우스의 부하들에게 암살을 당한다.

키케로의 정치 신념은 꽃피우지 못했고 당시 평가는 냉정했지만, 시이저의 예견(豫見) 처럼 시대를 거듭하며 그의 사상과 철학의 명성은 역사 속에 우뚝 섰다.

필리피에 있던 브루투스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연합군과 숙명적 결전을 피할 수 없었다.

전쟁은 브루투스의 패배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둔 그는, 다만, 로마인들이 자신이 로마의 평화(Peace)와 해방(Fr- eedom) 그리고 자유(Liberty)를 위해앞장섰던 사람으로 명예를 지켜주기를간절히 소원했다.

그리고, 브루투스는 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