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黎明)의 눈동자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밑에는 빨간색풍차의 물랑루즈가 있다.
우리 세대의 3/40대 젊은 시절에는, 파리에 가게 되면 상젤리제의 리도(Li- do)와 물랑루즈(Moulin Rouge)는꼭 들려야 하는 여행 코스였다.
나도 80년대 중반 파리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동행했던 직장 동료 몇 명과 지하철 노선 도면을 들고 물랑루즈를 찾아 나섰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코트의 깃을 세우는 찬바람부는 초겨울 날씨였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한껏 들떠 있었다.
아마, 이름만 들었던 세계 최고의물랑루즈 쇼를 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몽마르뜨에는 낙엽들이 쌓여가고가로등 불빛은 처연했지만, 어둠이 내리는 언덕길을 걷는 연인들의 모습은계절과는 어울리지 않게 수채화처럼아름다웠다.
일행 중, 당시만 해도 흔치않게, 외국 여행을 많이 한 친구가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낯선 목적지도 쉽게 쉽게 찾아다니는 재주와 민첩함이 있었다.
이 친구가 뜬금없이 "힘들게 와서 보는 쑈이니, 극장 가이드에게 팁을넉넉하게 주고 앞자리에서 구경하자"라는 제안을 했다.
터무니없는 이 시도가 성공한 덕분에, 우리들은 그날 밤 물랑루즈의 무대 맨앞자리에 앉아 잊지 못할 파리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당돌하고 황당한 친구였다.
그날 밤 물랑루즈의 화려하고 몽환적인공연은 멀리서 온 젊은 여행객들의 피로 를 한꺼번에 풀어주는 마법과 같았다.
많은 레퍼토리 중에서도, 특히, 수십 명의 무희(舞姬)들이 펼치는 캉캉 춤은요란스럽지만 이국적이며 매혹적이었다.
몽마르뜨 언덕 위에 피카소나 고흐와 같은 많은 예술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듯이 아래쪽 물랑루즈도 적지 않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1차 대전 당시, 이곳에서 춤추던 한무희의 삶은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이중간첩(二重間諜) 마타하리(Mata Hari) 이야기다.
그녀의 본명은 마그레타 G. 젤러(Margaretha Geertruidia Zella)였다.
그녀의 소녀 시절은 몹시 불우했다.
네덜란드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던 마타하리는 아버지사업이 망하며 친척 집을 떠돌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녀가 비교적 어린 19살 나이에 군인이었던 C. 매클라우드와 결혼했던 것도, 사람들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결혼 당시 남편은 인도네시아에 주둔 하고 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바 섬에서신혼 생활을 해야 했다.
두 아이를 낳고 순탄하게 살아가는 듯 하던 이들은, 아들이 죽고 1901년 돌연이혼을 한다.
결혼 7년 만에 사랑하던 아들은 죽고 딸의 양육권마저 빼앗긴 채 빈손으로 유럽에 돌아온 마타하리는 다시 지긋지긋한 가난 앞에 서야 했다.
다행히 그녀는 아름다운 몸매와 빼어난미모를 갖고 있었으며, 언어에 특별한재능이 있었는지,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를 구사했다.
파리에 머물던 그녀는 마침 1905년개장한 댄스 홀 물랑루즈에서 무희로일하게 된다.
눈썰미가 좋았던 마타하리는 결혼 생활을 했던 자바 섬에서 현지인들이추던 춤을 익혀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춤은 오늘날 발리 댄스와는 달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노출과 함께 요염한 몸 동작으로 선정적이었다.
어쨌든, 그녀가 추었던 "이스탄 댄스"라는 춤은 순식간에 파리에서 폭발적인기를 얻었고, 물랑루즈 최고의 상품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유명인이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이런 저런 헛소문이 떠도는 것은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그녀가 인도네시아 왕족과 네덜란드인의 혼혈아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친척 집을 떠돌며눈칫밥을 먹으며 생존의 방법을 몸으로터득했던 그녀는 이런 소문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 했다.
그녀가 이름을 "마타하리"라는 말레이어로 바꾼 것도 이때였다.
마타하리의 유명세는 점점 더 힘을 얻어 갔고, 유럽의 사교계 인사들은그녀와 교제를 해보려 애을 썼다.
그러나, 불행의 여신은 그녀를 그냥 두지 않았다.
1차 대전이 발발하며, 독일 정보기관은 마타하리가 프랑스의 많은 고관들과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녀에게 거액을 약속하며 프랑스 육군의 정보를 파악해 넘겨줄 것을 제시했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정보당국이마타하리가 독일 측에 포섭되었다는첩보를 입수하고, 그녀에게 역으로 독일의 중요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을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활동을 종합해 보면, 마타하리는 독일과 프랑스 요원들에게 양쪽의 정보를 넘겨준 것으로 추정 된다.
그러던 중 프랑스 육군 정보부는 그녀에게 독일 방첩 기관장과 접근하여 그를 유혹하라는 지침과 함께스페인으로 가라는 지령을 주었다.
한편, 일련의 마타하리 행적을 추적 하던 독일은, 그녀가 위험인물이라고판단하고 제거하기로 결정을 한다.
독일 정보국은 프랑스 측이 도청하고 있는 사실을 감지한 무전 회선을 통해, 마타하리에게 중대한 임무를 주는 거짓지령을 흘려 그녀를 함정에 빠뜨린다.
결국, 마타하리는 프랑스 군에 의해체포되었다.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사형 판결을 받은 그녀는 1917년 10월 15일형장(刑場)에 섰다.
마타하리는 눈가리개를 거부하며 사수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어서 쏘세요! 총 들고 있는 것도 무겁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 앞에서 그녀는파란 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배고팠던 어린 시절, 짧았던 결혼의행복,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헤어져야 했던 딸, 자신을 버린 남편, 춤추는 자신을 보며 환호하던 관객들...
야릇한 미소와 "어서 쏘세요"라는 말은 웬일인지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갔던 세상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운의 여인 마타하리는 마흔 한살의나이에 그렇게 죽었다.
요즘 유럽 사회는 한 여간첩 사건이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이탈리아 언론은 나폴리에서 네이토(NATO) 관계자들과 폭넓은친분을 갖고 활동하던 마리아 아델로라는 여인이 러시아의 스파이 였다는 보도를 했다.
마리아는 뛰어난 보석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으며, 6개국어에 능통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녀는 자신이 독일 출신 페루인 아버지와 페루 현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주위를 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러시아군 대령의 딸로 러시아 총참모국 정보총국(GRU) 소속인, 1982년 생 올가 콜로보바로 밝혀졌다.
최근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올가는안면인식 소프트웨어에 의해 자신의정체가 밝혀진 것을 눈치채고 돌연 모스크바로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마타하리는 여간첩을 상징하는대명사처럼 되어, 많은 사람들은 이번올가 콜로보바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다시 그녀를 떠올린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 때아닌 밀정(密偵) 논란으로 시끄럽다.
신설된 행정안전부 경찰국 국장에임명된 김순호 치안감의 과거 행적의 이야기다.
김 국장은 1989년 노동운동 단체인인천부천 민주 노동자회(인노회) 동료들을 밀고하고 그 대가로 경찰에 특채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인사들의 증언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우리는 가끔 간교한 불의가 정의의가면을 쓰고, 역사를 뒤틀고 있는 현실을 보며 분노를 넘어 마음속에 슬픔을 느낄 때가 있다.
"마타하리"라는 어휘는 말레이어로, 마타는 "눈"이며, 하리는 "하루"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어두운 밤이 끝이 나고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의 눈(태양)이다.
1991년 김종학 PD가 연출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MBC 드라마 "여명의눈동자"가 있다.
이 드라마 제목 "여명의 눈동자"는원작 소설의 작가 김성종 씨가 "마타하리"에서 차용(借用)한 말이다.
마타하리는, 어쩌면, 음험한 공작과음지에서 활동하는 간첩과는 거리가 먼 말이다.
오히려, 다가오는 찬란한 미래를 준비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