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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아의 사모곡(思母曲) H 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는재팬이스 브렉퍼스트(Japanese Bre- akfast)라는 미국의 인디밴드(Indie Band)의 리드 싱어다.

밴드의 이름을 보면 미셸이 일본계미국인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녀는 미국인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다.

2021년 가수인 미셸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청소년 시절과 어머니를잃어야 했던 과정을 그린 자전적에세이(Essay) <H 마트에서 울다: Crying in H Mart)를 발표했다.

사실, 나는, 미셸의 에세이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많은 언론사들로 부터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지만, 그녀가 한국계이민 2세임에도 밴드의 이름에 "Jap- anese"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껴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토크쇼에 나와 그녀가 밴드의 이름은 우연히 부쳐진 것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부정적 선입견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팝(Pop)과 드라마(Drama) 에 이어, 케이 푸드(K food)의 무한한 성장을 기대하고 있는 시기에, 그녀의 작품이 미국 사회에서 한식(韓食)에 대한 관심을 크게 확산 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을 편견 없이 읽어 보기로 했다.

전문 작가가 아닌 사람의 글은, 일반적으로,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셸의 글은 깔끔한 문장과 섬세한 묘사로 독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 에세이의 주제가 되고 있는어머니와의 관계를 담담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많은 노력을기울인 흔적이 돋보인다.

다수의 메이저 언론사들로부터 찬사를받았는데, 그중에서도 타임스의 아래와 같은 기사가 그녀 작품의 문학적 평가를 짧은 한 문장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Michelle Zauner is fast becoming a rising literary star too. (가수인) 미셸 자우너가 빠르게 스타작가로서의 이름도 얻어 가고 있다."

한국 음식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어가면서, H 마트는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슈퍼마켓 체인 중 하나가 되었다.

H 마트는 아시아 식자재를 주로 판매 하는 슈퍼마켓이다.

H는 한국어 "한 아름"이라는 말을 나타내는 알파벳인데, 이는 가슴 위에 먹을 것을 가득 얹고 양 손으로 바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미셸의 에세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Ever since my mom died, I cry in H Mart. 엄마가 죽은 후, 나는 지금까지 H 마트에 가서 울고 있다."

이 첫 문장이 암시하듯이 작품 <H 마트에서 운다>는, 그 내용의 가장 많은 부분을 음식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미셸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간 미국 소녀였다.

그녀는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와의 인연의 끈을 찾으려 애를쓰는데, 그것은 바로 음식이었다.

어머니가 담가둔 김치와 손수 끓여주던 된장찌개는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교포들이 즐겨 하는 "언어는 2대에 끝이 나지만, 음식은 3대, 4대까지간다."라는 말이 미셸의 책에서도 어김없이 증명되고 있다.

그녀는 책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I can hardly speak Korean, but in H Mart it feels like l'm fluent." 나는 한국말이 정말 서툴지만, H 마트에 가면(진열해 놓은 먹거리 이름을 거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말을 잘 한다는 기분이 든다."

미셸의 아버지는 1983년, 중고 자동차매매업 트레이닝(미군 차량 대상)을 위해 서울에 왔다.

그는 용산에 있는 내자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그 호텔의 프런트데스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아버지가 알게 된 첫 번째 한국인인 셈이다.

그들은 3개월 동안 데이트를 하다 연수기간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청혼을 했다.

결혼 후 그들은 업무상 서울과 독일, 일본을 옮겨 다니며 살았는데, 미셸을 낳은 곳은 서울이었다.

미셸이 태어난 1년 후, 아버지가 같이 사업을 하자는 형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미셸의 가족은 오리건주 유진(Eugene) 에 정착하게 된다.

미셸의 어머니의 외로움은 그때부터시작되었다.

가족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낯선 타국에서 평생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미셸의 어머니는 그런 혹독한 외로움 속에서 자신이 먹고 자랐던 음식을 찾아 먹으며 큰 위안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운 겨울이면 가스불을 들이마시면서도 밤을 구워 먹었고, 가족들의 생일에는 어김없이 미역국을 끓였다.

어쩌다 한국 음식을 파는 마트에 가는 날에는, 그녀는 새로 수입한 명란젓과 짜파게티를 주워 담고, 음식 코너에서는 달콤한 팥이 들어있는 붕어빵을먹느라 정신이 없다.

때가 되면 직접 김치를 담그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자주 밥상에 올렸으며 김, 콩자반, 계란장조림, 쇠고기장조림, 멸치볶음 등은 일상의 먹거리였다.

이런 어머니와 함께 성장한 미셸은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의 깊은 맛을 알게 된다.

미셸이 어머니가 자신을 키우며 보였던, 미국인 부모와 전혀 다른 모습들을기억하며 쓴 구절들도 우리들을 미소짓게 한다.

"When I was an infant, she pinched my nose because she was worried it was too flat.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코가 너무납작한 것이 걱정이 돼 내 코를 잡아당기곤 했다."

"Stop shaking your leg; you'll shake the luck out. 다리 떨지 마라, 복 달아 난다."

가끔, 미셸이 큰 소리를 내며 웃을 때면, 어머니는 "이마에 주름 만들지마라(stop making wrinkles)"라며미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미셸의 글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한국의 엄마들은 아이를 낳은 후에는, 이상하게도, 자신의 이름 대신 아이들의 이름 뒤에 "엄마"를 붙인다.

예를 들어, 지선이의 엄마는, 사람들이지선이 엄마 이름은 제쳐두고, 모두가"지선 엄마"라 부른다.

어쩌면, 이것은 한국의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Their identities were absorbed by their children. 엄마들의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녹아들어 간 것이다."

미셸은 혼혈아로 다른 아이들보다는심한 사춘기를 겪으며 성년이 되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미셸이 대학을 졸업하고 세 개의파트타임 일을 하며 "리틀 빅 리그(Little Big league)"라는 밴드를 만들어가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어머니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직 헤어질 준비가 안된 아버지와미셸을 남기고 그녀는 끝내 2014년 10월 18일 죽었다.

그리고, 미셸은 어머니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마치 순례자처럼세월의 뒤안길을 여행한다.

그녀는 H 마트에 가서 어머니와 웃고떠들며 먹었던 음식을 바라보며 혼자울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며 먹었던 음식들의 추억이 그녀를 폭풍 같은 그리움으로 몰아간다.

술 취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비 오는 밤, 명동의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떡볶이는 그녀의 머릿속에 지금도 생생하게 입력 되어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미셸은 어머니, 이모와 함께 수조(水槽)에서 살아있는 고기를 골라, 2층 식당에서 요리해 준생선회와 매운탕을 먹으며 이야기꽃을피웠다.

미셸에게, 그곳에서 있었던 산낙지에 대한 충격적인 기억도 이제는 미치도록그리운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