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 만난 연인(戀人)
눈을 뜨자 창문 커튼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빛이 눈부시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가로 가 창문을 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5월의 하늘 아래 베네치아는 사프란색 지붕 위로 쏟아 지는 햇빛에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날아와 코끝을스치는 빵 굽는 냄새는 신선하고 감미롭다.
미술을 공부하러 왔다가 베네치아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민박집 젊은 여주인이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은 게토(Ghetto)와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를 찾아가야겠다"라는 내 말에 "게토는 뭐 볼게 있다고 가냐"라며 의아한 듯 쳐다 본다.
그녀는 베네치아에서 3년 넘게 한국인을 상대로 민박집을 운영했는데, 게토에가겠다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영어에서 "빈민가(貧民街)"를 뜻하는 단어는 꽤 많다.
일반적으로 "슬럼(Slum)"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뉴욕에서는 "할렘(H- alem)", 파리에서는 "반류(Banlieue)"브라질에서는 "파벨라(Favela)"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게토(Ghetto)"라는 어휘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이라는 영어의 보통명사가 되었지만, 원래, 게토는 베네치아에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한 동네 이름이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순전히 세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 때문이다.
핸드폰 구글 맵을 들고, 산타루치아역근처에 있는 민박집에서 20여 분쯤 걷다 보니, 황토색 건물 벽에 "Ghetto"라고 쓰여있는 마을과 마주쳤다.
조그마한 광장도 있는 이곳에는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지, 특산품을 파는 상점들과, 유대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전통 풍습을 시연하는 곳도 있다.
<베니스의 상인>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Shylock)은 게토에 모여 사는 유대인의 상징적 인물로, 작품 속 비중은 단연 주연급이다.
1700년 대 초부터 중반까지 이 작품이 <베니스의 유대인>으로 번안되어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샤일록이 당시 유럽 사회에 끼친 영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나는 발길을 돌려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수상 버스를 타고 가는 승객들이 가끔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베네치아 수로 옆길은,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화단의 꽃들이 정답다.
그렇게 걷다보면 리알토 다리를 만난다.
지금은 대운하를 건너가는 다리로아카데미아 다리, 스칼치 다리, 콘스티투지오네 다리가 건설되었지만, 15세기때만 해도 리알토 다리가 유일했다.
산 마르코 광장(Piaza San Marco)과 함께 베네치아 관광 명소의 상징과 같은 리알토 다리는 세익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주요 무대다.
베네치아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유럽의 무역 도시였으며, 그 상업의 중심은 리알토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베니스의 상인> 주인공 중 한 명인 상인(商人) 안토니오(Antonio) 와 그의 친구들 바사니오(Bassanio), 그라시아노(Gratiano), 로렌조(Loren- zo), 살레리오(Salarino) 그리고 솔라니오(Solanio)가 함께 일하며 노래하며 우정을 나누었다.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안토니오의일가이며 친구인 바사니오가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말하며 시작된다.
상대는 벨몬트(Belmont)의 부유한상속녀 포샤(Portia)라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바사니오는 포샤에게 구혼하기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며 우울해하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바사니오를 돕고 싶었지만, 마침 상품을 구입하는데 모든 자금을 투자한 상태였고, 물건을 실은 상선은 아직 항해 중이었다.
그는 이곳저곳에서 돈을 융통해보려 애를 써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찾아간다.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그동안 리알토에서 자신의 고리대금업 사업에 대해비난해 왔던 사실을 언급하며 비웃는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면서,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차용 금액 3천 투카트를 약속한 3개월 내에 갚지 못할 경우 안토니오의살점 1파운드를 떼어 가겠다는 거래를제안한다.
바사니오가 깜짝 놀라며 만류하지만, 낙천적인 안토니오는 서슴없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돈을 빌린다.
한편, 벨몬트의 포샤는 아버지가 남긴유언에 따라 결혼 상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포샤의 아버지는 딸에게 금상자, 은상자, 납상자 3개를 남기며, 구혼자들중 그 안에 그녀의 초상화가 있는 상자를 선택한 사람과 결혼하라고 유언했다.
그녀는 마음속에 언젠가 만났던 바사니오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어길 수 없어 모든 것을 운명에 맞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구혼자는 모로코 군주였다.
모로코 군주는 금상자를 선택했다.
상자를 열자 초상화는 없었고, 두루 마리 종이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All that glisters is not gold--- Often have you heard that told. Many a man his life hath sold But my outside to behold Gilded tombs do worms enfold.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그대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네. 나의 이런 겉모습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팔은 이야기를. 금칠한 무덤 안에는 벌레들만 우글거리네."
두 번째 찾아온 아르곤 왕자도 은상자를 선택하며 실패하고 서둘러 떠난다.
그리고, 세 번째 구혼자로 바사니오가벨몬트를 찾아온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포샤는 편안히쉬며 천천히 상자를 선택하라고 요청하지만, 조급함에 기다릴 수 없던 바사니오는 세개의 상자 앞에 섰다.
고심 끝에 그는 납상자를 선택한다.
상자 안에는 포샤의 초상화와 함께 이런 글이 있었다
"You that choose not by the view, Chance as fair and choose as true. Since this fortune falls to you, Be content and seek no new
겉모습을 보고 선택하지 않은 그대, 기회는 공정했고 선택은 옳았도다. 이 행운이 그대에게 찾아왔으니만족하고 새 여인을 찾지 말아라."
두 사람은 약혼과 함께, 포샤는 바사니오 손에 반지를 끼워 주며 벨몬트의 모든 재산과 권리는 바사니오 것이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앞으로 바사니오를 군주처럼섬길 것이며, 다만, 그가 손에서 반지를빼거나 잃어버렸을 경우 사랑이 시든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은 이를 비난할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바사니오는 죽는 날까지 이 반지를 절대 빼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한다.
한편, 환호와 기쁨이 넘치는 벨몬트와 달리, 리알토 거리에는 소문이 흉흉 했다.
상품을 싣고 오던 안토니오의 배들이 폭풍을 만나 좌초되어, 그가 망하게되었다는 어수선한 말들이 파다하게퍼졌다.
불행하게도, 아무런 소식도 없는 가운데, 차용할 금액을 갚아야 할 기일이 지나고 만다.
그리고, 재판 날짜가 잡히는데, 문제는, 샤일록이 기어코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떼어 가겠다는 것이다.
큰 곤경에 빠진 사람은 안토니오뿐만 아니라, 이 재앙의 원인을 제공한 바사니오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스러워하던 바사니오는 모든 사실을 포샤에게 털어놓는다.
막대한 재산의 상속녀였던 그녀는원금의 2배/4배를 준다고 말했으나샤일록은 도무지 막무가내였다.
샤일록이 안토니오에게 그런 원한을 품은 것은 그동안 당했던 수모도 수모지만, 자신의 딸 제시카(Jessica)가 집안의 보석들을 갖고 안토니오의 친구로렌조를 따라 가출해버린 이유도 크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많은 여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를상대로 "그 여주인공들 중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가?"라는 조사를 한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