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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깃발 아래, 아라비아 제국

아라비아반도 중간 홍해 해변에위치한 메카성 근처 히라 산을 생계를 위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냥꾼과 나무꾼들이다.

그들은 지난 15년 동안 정해진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간단한 음식과 물만 가지고 동굴에 들어가 깊은 명상에잠기는 한 40대 남자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비록, 글은 모르지만, 끊임없는수양을 통해 인간의 삶과 우주의 이치를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런던 어느 날, 여느 때 처럼 명상에잠겨 있던 그에게 갑자기 하늘로부터음성이 들려왔다.

"읽어라"

남자는 깜짝 놀라 두려움에 떨다 마음을가라앉히고 대답했다.

"저는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의 음성이 계속되자, 그는 고개를 들고 "무엇을 읽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네가 찬양해야 할 창조주의 이름이다."

젊은이는 이 음성이 신의 계시임을깨닫고 고개 숙여 받아들였고, 하늘의음성은 그를 "신(神)의 사도(使徒)"로임명했다.

이 젊은이가 바로, 우리가 영어 이름으로 "마호메트"라고 부르는, "무함마드(Muhammad)"다.

메카의 히라 산 동굴에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교가 탄생한 이야기다.

이슬람 신도들이 날마다 외우는 "꾸란(qur'ran)"은, 보통 "암송(recitation)"이나 "읽기(reading)"라고 해석하지만, 그 근원적인 뜻은 무함마드가 히라 산동굴에서 받은 계시 "읽어라"다.

서기 601년에 탄생한 이슬람교는, 그 후 오늘날까지 기독교와 끊임없이반목하며 싸우고 있다.

이슬람 신도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관련된 책을 읽다보며, 흥미롭게도, 두종교가 그렇게 원수처럼 싸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신도들은 다 같이 아브라함 (Abraham)을 자신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이슬람교 신도들은 히라 산 동굴에서무함마드에게 계시를 준 천사를 "지브릴(Jibril)"이라 부르는데, 이는 동방박사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린 가브리엘(Ga- briel)과 동명(同名)의 천사다.

무슬림들은 유대교인이나 기독교인을, 넓은 의미에서, 뿌리가 같은 자신들의영적인 형제(Spiritual Siblings)로보고있다.

그러나, 이 세 종교는 신학적으로화합할 수 없는 교리(敎理)를 갖고 있는데, 그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구세주(救世主), 즉, "메시아(Messiah)"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유대교는 "메시아는 아직 오지않았으며, 언젠가 선민(選民)인 유대인을 구하러 오신다"라는 믿음이며, 기독교는"이미 오신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本體)이신 메시아다"라는 신앙이다.

그리고, 이슬람은 예수를 메시아가 아닌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지만, "신의 최후의 예언자(God's final messenger)는무함마드다"라는 종교다.

이슬람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난 서기 632년 경에는아라비아 반도에 정교 합일의 통일 국가가 세워진다.

이 나라가 바로 7세기부터 13 세기까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세계를 위협했던 아라비아 제국이다.

짧은 기간에 거대한 제국의 탄탄한 기반을 다져놓았던 무함마드... 그러나, 그도 역시 한계가 있는 인간이었던 것 같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결정적 실수를 하고 죽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며, 이슬람 내부의끊임없는 파벌 싸움의 씨앗을 뿌려 놓은 것이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 아라비아반도에는"4대 칼리프 시대"가 열리는데, 이 시기를 거치며 이슬람은 최대 계파인 "수니파"와 "시아파"가 형성된다.

오늘날까지 테러와 피의 복수를 계속 하고 있는 두 파벌을 알기 위해서는무함마드 죽음 후 이어진 이 4대 칼리프 시대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칼리프(Caliph)라는 아랍어는 "대리인" 혹은 "계승자"라는 뜻이 있다.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파벌들의합의를 거쳐 제1대 칼리프로 쿠라이시족 가문의 "아부 바크르(Abu Bakr)"가선출되었다.

칼리프의 자리에 오른 후, 그는 곧바로여기저기에서 예언자라고 자칭하는배교자들을 제압하는 일에 모든 힘을쏟아야 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죽음 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이슬람교의 권위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부 바크르를 이어 제2대 칼리프로"우마르(Umar)"가 선출된다.

명문가라 할 수 없는 이디 가문 출신으로, 마흔세 살에 칼리프로 선출된우마르는 뛰어난 재능과 용기를 겸비한 지도자였다.

그는 무함마드와 함께 이슬람 제국의건설자로 추앙받을 정도로 용맹을 떨치며 큰 업적을 남겼다.

우마르는 638년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점령했으며, 642년에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무너뜨렸다.

우마르의 지칠 줄 모르는 정복 사업이계속되던 644년 11월 3일,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다.

새벽 기도를 위해 메디나 모스크로 가던 우마르가 기독교도 페르시아인노예 아부 루울루아의 칼에 찔려숨진 것이다.

우마르를 이어 3대 칼리프로 "우스만" (Uthman)이 선출되었다.

우스만은 아부 바크르의 유지를 이어 받아 정복에 박차를 가한다.

우스만은 이슬람 제국 탄생 후 가장 넓은 영토를 이루고, 최초로 해군을결성하여 비잔틴 제국의 해군을 초토화시키기도 했지만 한 가지 큰 결점이 있었다

그는 능력에 관계없이 주요 요직에는모조리 측근들만 기용하는 우(愚)를범했다.

우스만은, 결국, 그의 정책에 불만을품어오던 반대 세력의 음모로 656년암살을 당하고 만다.

4대 칼리프 시대의 마지막 인물은, 흔히, "알리"라고 불리는 "알리 이븐아비 탈리(Ali ibn Abi Talib)"이다.

칼리프 알리는 메카의 쿠라이시족하심 가문 출신으로 무함마드의 4촌동생이며, 후에 무함마드의 딸과 결혼하여 그의 양자가 된 혈족이었다.

바로 이 "칼리프 알리"가 이슬람 양대 계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죽음 후 계파의합의에 의해 선출된 칼리프 "1대 아부바크르", "2대 우마르", "3대 우스만", "4대 알리" 모두를 합법적인 칼리프로인정한다.

그러나,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인 알리"만을 유일한 칼리프로 인정하고 있다.

"시아파 무슬림"이라는 말 자체가"알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날까지 피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렇게, 이슬람의신학적 교리의 차이가 아니라, "누가정당한 칼리프였느냐"라는 다소 엉뚱한 견해의 차이로 형성된 파벌이다.

알리는 칼리프에 오른 후 이슬람교내분을 잠재우려 많은 노력을 했으나, 분열을 막기에는 너무 늦어, 끊임없이 계속되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싸움을지켜봐야만 했다.

661년 1월 24일, 쿠파의 한 모스크로 향하던 알리는 압둘라 라흐만이라는광신도의 독검에 찔려 죽었다.

알리의 무덤이 있는 이라크의 쿠파근교 "나지프(Nazif)"는 시아파 신도들에게는 메카와 다름없는 성지다.

4대 칼리프 시대가 끝나고, 아라비아 제국은 세습 군주 시대가 열린다.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가 예루살렘에서 칼리프 지위를 선언하며, "우마이야" 왕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90여 년간 지속되던 우마이야 왕조는, 750년 시아파와 손을 잡은 "아부 알아바스"에 의해 무너진다.

아부 알 아바스에 의해 제국의 주인이 된 "아바스 왕조"는 750년부터 1258년까지 508년 동안 이어진 명실상부한최장수 왕조다.

특히, 아부 알 아바스의 뒤를 이은 "아부 자파르(Abu Jafar)"는 아바스왕조의 튼튼한 기반을 다진 실질적창업자다.

그는 유서 깊은 쿠라이시족 하심 가문출신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베르베르족 노예였다.

"만수르(Mansur): 항상 승리하는 자" 라 불리던 아부 자파르는, 특히, 티그리스 강 작은 시골 마을을 인류사에 기록된 위대한 도시 바그다드를 만든 장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