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兔死狗烹)
토사구팽은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재상 범려의 말에서 유래했지만, 사실, 이 고사성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한신이다.
<초한지>의 주인공은 유방과 항우다.
그러나, 두 사람 못지않게, 이 역사소설에서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절대적 역할을 한 한신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까마득한 20대 초반에 읽었던 소설이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유방과 그의 부인 여후에 의해 한신이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을 때 분노를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한신은 원래 별 볼일 없는 동네 건달이었다.
그런 그가 늦은 나이에 유방의 눈에띄어 그의 휘하에 합류하며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한신은 싸우면 결코 지지 않는 백전백승의 전략가로 성장하며, 초나라의 항우를꺾고 유방이 천하 통일의 꿈을 이루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다.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그는 통일 후 초왕의 자리까지 오른다.
한신이 영광의 정점에 오르자 불행의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한다.
생사를 오가는 전쟁 중에는 끈끈한군신 관계에 있던 유방과 한신은 통일 후 예기치 않던 긴장 관계를 형성해간다.
자신의 대업(大業)의 행보에 축복과 같았던 한신의 탁월한 지략과 용맹이, 오히려, 유방에게 점점 근심거리로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한신은 황제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죽는다.
유방과 여후가 괜한 트집을 잡았는지, 한신이 겸손하지 않고 자신의 공을 과시 하며 교만했는지 역사의 진실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한신은 "토끼 사냥이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라는 고사성어 "토사구팽"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토사구팽이 인류 역사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신화(神話) 속에서도 존재한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제우스(Jeus)"의 노여움을 사 카우카소스(Ca- ucasus)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파 먹히는 형벌을 받은 신이다.
언뜻 보면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제우스가 신들의 세계를 통일하는 과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두 신의 관계가 그리 간단치 않다.
제우스가 올림포스 신들의 영원한제왕으로 올라서는 데는 골육상쟁과요란한 전쟁이 있었다.
우주가 형성된 후 "혼돈의 카오스(Chaos)" 를 거치고 "질서의 코스모스(Cosmos)" 시기가 되며, 스스로 생명을 얻은 대지의 신 가이아(Gaea)와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가 있었다.
우라노스와 가이아가 낳은 일족 중, 영어 발음으로 타이탄(Titan)이라 불리는 12남매의 거신(巨神) "티탄족"이탄생하게 된다.
태초의 이 부부에게도 자식 문제로불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자식들 중에 티탄족이 아닌 외눈박이 거인 3형제와 백수거인 3형제는 저희들끼리 싸우는 것은 물론이고 걸핏하면형제들에게 시비를 걸어 행패를 부리는 일이 일쑤였다.
그러자, 보다 못한 우라노스는 이들을 어머니 가이아의 뱃속인 대지의 가장 깊은 곳, 타르타로스(Tartaros) 무한지옥에 가두어 버렸다.
문제는 타르타로스에 갇힌 이들의 소동으로 어머니 대지의 여신은 배가 아파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보내야 했다.
어느 날 자식들 앞에서 가이아는 이렇게하소연을 한다.
"내가 원치도 않았던 불량한 아들을낳게하고, 이제, 이 애들을 내 뱃속에가두어 놓으니 고통이 말이 아니구나!"
형제들 중 막내인 여섯째 크로노스(Cronus)가 가만히 말을 듣고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모자(母子)는 귓속말을 주고 받았다.
그날 밤 신들의 세계에서는 실로 엄청난비극적이고 잔인한 일이 벌어졌다.
어둠이 찾아오자 우라노스는 대지의여신인 가이아의 몸을 감싸며 덮쳐왔다.
이때, 커다란 낫을 들고 숨어있던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발기한 성기를 가차 없이 잘라 버렸다.
한순간에 아버지를 거세(去勢)하여퇴출시키고, 막내 크로노스는 신들의 세계 폐권을 장악하게 된다.
크로노스는, 그 후, 누이인 레아(Rhea) 를 아내로 맞아 하데스(Hades), 포세이돈(Poseidon), 헤스티아(Hestia), 데미테르(Demeter), 헤라(Hera)를 차례대로 낳았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레아가 자식을 낳으면 지체 없이 그들을 삼켜버리는엽기적인 행태를 보였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크로노스는 자식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처럼반기를 들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뜻하며, 시간은세월이고, 또, 세월은 태어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크로노스는시작이 있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자연의 법칙을 말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크로니클(chronicle: 연대기), 크로노미터(chronometer: 항해, 천체용 정밀시계), 싱크로나이즈(syn- chronize: 동시에 일어나다), 크로닉(chronic: 만성적인)과 같은 영어 어휘의 어원(語原)이 되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살아 우리 곁에 있다.
레아가 여섯째, 즉 제우스를 잉태했을때 일이다.
한 아이라도 살리고 싶던 레아는 어머니가이아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레아는 가이아의 조언에 따라 제우스를 낳은 후, 아이를 숨기고 강보에 바위덩어리 하나를 싸 크로노스 앞에 놓아두었다.
크로노스는 그것이 새로 태어난 아이로 생각하고 곧바로 삼킨다.
어머니 레아는 은밀하게 제우스를 크레타 섬 한 동굴에 옮겨놓고 요정아말테이아에게 맡겨 기르게 했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제우스는 자신의 내력을 알게 된다.
제우스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어머니 레아를 찾아가 아버지 크로노스의 시중꾼으로 일할 수 있게 해줄 것을 간청 한다.
마침내, 시종이 된 제우스는 신찬암브로시아(Ambrosia)와 신주 넥타르(Nectar)에 토제(吐劑)를 타 크로노스가 먹고 마시게 했다.
계속해서 토제를 먹은 크로노스는 어느 날, 드디어, 다섯 형제자매와 제우스 대신 삼킨 바위 덩어리를 토해냈다.
매일같이 먹은 토제로 몸이 쇠약해진데다 배앓이로 고통스러워하는 크로노스를 제우스가 제압하여 결박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대지의 깊고 깊은 곳 타르타로스에 가두어 버린다.
크로노스가 토해낸 5남매는 제우스의형과 누나들이지만, 아버지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제우스에게 복종을 맹세 하게 된다.
이렇게 제우스는 "나중에 태어났지만 가장 큰 자"가 되었다.
제우스 형제들은 올림포스 산에 천궁을 짓고 세력을 빠른 속도로 키워갔다.
당시, 제우스 형제를 제외한 티탄족은오르튀스에 웅거하고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달리 세력이 무섭게 커가는 올림포스 산 쪽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티탄족은 올림포스 신들과 나머지 티탄족이 나누어져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싸움이 제우스가 신들의 세계를 평정 하고 올림포스 시대를 연, 신들의 전쟁티타노마키아(Titanomachia)다.
전투가 진행되며, 티탄신족 측에서 올림포스 쪽으로 투항하는 신들 중에 바로 영웅 프로메테우스가 있었다.
그는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의 형이아페토스(Iapetos) 아들이다.
따라서,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는사촌지간이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은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다.
당연히,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프로메테우스는 이 전쟁에서 올림포스 신들이 승리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운명적으로 티탄신족을 떠나 올림포스 쪽에 합류한 후, 제우스를 도와 빛나는 무공을 세운다.
신들의 전쟁은 올림포스 제우스 측의 승리로 끝났으며, 붙잡힌 티탄신족들은 모두 무한지옥 타르타로스에 갇혔다.
하늘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제우스는 명실상부한 신들의 제왕이 되었다.
그러나, 제우스의 마음속에는 꺼림칙한 것이 남아있었다.
미래를 내다보며 용맹스럽기까지 한프로메테우스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