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종교(宗敎)는 무엇인가
가을을 우리는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선선한 바람과 온화한 햇빛 그리고 푸른 하늘의 가을이 찾아오면, 괜스레 사람들은 서점에 들러 이것저것 뒤적거리기도 하고 집안 책장의 오래된 책을 빼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봄 가을은 책 읽기 보다는 바깥으로 놀러 나가고 싶은 계절이다.
파릇한 풀잎들이 생명을 노래하고, 연분홍 꽃봉오리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 그리고, 여름의 짙은 녹음이 서서히붉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이 오면 누구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의 취향이 다 다르겠지만, 나도 개인적으로 봄 가을에는, 소위 말하는 문학의 큰 작품들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오히려, 밖으로 쏘다니기 어려운여름과 겨울에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특히, 젊은 시절, 에어컨이 대중화 되기 전, 삼복 가운데 선풍기 모터 소리를 벗 삼아 문학작품들의 세계에 빠져무더위를 잊었던 기억들이 있다.
작년 8월,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책 두 권을 사들고 여름을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었다.
학창시절에 읽은 두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전쟁과 평화>와 <죄와 벌>도 다시 한번 보고 싶었지만, 우선, 위에 언급한 두 작품을 정독해 보기로 했다.
서양의 영미권(英美圈) 외(外) 소설은 영어로 번역한 후 이를 다시 한국어로번역한, 중역(重譯) 작품들이 많다.
따라서, 번역이 중복되며 원래 작가가의도했던 주제가 흐트러지기도 하고, 중언부언(重言復言)한 표현들이 많을수 있다.
그러니, 욕심이고 꿈같은 이야기지만,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러시아어 오리지널로 읽어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펭귄 클래식(Penguin Classics) 의 영문판을 구입했다.
두 작품 모두 천 페이지 가까운 만만치 않은 두께였지만, 8월 한 달 보내기에는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사실, 내가 이 대하소설을 서둘러 읽게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5월,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티어스(David Ignatius)의 "늘 함께 있는 푸틴의대주교(Putin's patriarch for all sea- sons)"라는 제목의 칼럼이 계기였다.
그는 위 제목의 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종교적 갈등이 짙게 드리워진싸움이다"라는 다소 의외의 주장을 폈다.
데이비드 이그네이티어스는 평범한칼럼니스트가 아니다.
오랜 저널리스트 생활에서 구축한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 정확한 정보 그리고 주제에 대한 심층적 분석 능력 은 때때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거의 모든 정치 평론가들이 "우크라이나가 견딜 수 있는기간은 길어야 한 달이다."라고 주장할때, 그는 "푸틴이 침공을 감행하면 치명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라는 글을 쓰기도했다.
그의 현실적 실증(實證)과 깊은 통찰력 위에 쓰인 칼럼은 시간이 지난 후에 읽을 때 더 빛을 발한다.
두 나라 간 종교적 갈등에 대한 그의 글은, 당연히, 독자들로 하여금 러시아인들의 신앙에 대해 깊게 들여다 보고 싶은 학습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 했다.
위에서 언급한 두 작품 중,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은 러시아인들의 종교관을 알아보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는 걸작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제정 러시아의 시골 지주 카라마조프가의 존속 살해 사건을 둘러싼 형제들, 그리고, 그 형제들과 연결된 인물들의 인간 탐구가 주요 내용이다.
아버지 표도르가 본처에서 낳은 드미트리, 후처에서 얻은 이반과 알렉세이, 그리고, 사생아 스메르쟈코프는 각자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작품의 완성도를높여간다.
그런데, 굳이, 이들 중에 소설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신앙에 귀의해 수도원에서수도자 생활을 했던 후처의 둘째 아들알렉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죽음으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작가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렉세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후속 작품을구상했다고 말한 것만 봐도 알레세이가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대학을 나온 수재이며 냉철한 무신론자인 친형 이반이 아버지의 죽음 후 서서히 정신적으로 무너져갈 때, 알렉세이는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은 은연중에 신앙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호색한이며 탐욕스러운 아버지 표도르파블로비치가, 백치 여인 리자베타를겁탈하여 낳은 사생아 스메르자코프에 의해 살해되는 내용은 인과응보의 신의섭리를 성찰하게 한다.
어쨌든, 러시아 문학의 금자탑이라는<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러시아인들의 기독교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두 작품에 대한 더 깊은 평론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시 전쟁 중에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현실로 돌아가 보자.
푸틴은 작년 7월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신앙적 배신이 큰원인이 되었다는 글을 발표한 일이 있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정교회(Russian Orthdox Church) 라는 교파로 묶여있는 하나의 공동체인데, 이를 파괴하려는 우크라이나의 행태는 믿음의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푸틴의 이런 논리는 러시아 정교회키릴(Kirill) 대주교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전쟁을 적극 옹호하는 키릴 대주교의 발언은 대부분 동방정교 교파들의 반감을 불러왔다.
뿐만 아니라, 로만 가톨릭의 프란시스교황은 키릴 대주교와 통화에서 이렇게말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Brother, we are not state clerics, we cannot use the language of pol- itics but that Jesus. 형제님, 우리는 국가의 성직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해야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로만 가톨릭과 정교회는 서기 1054년비잔티움(Byzantium) 교회에서 로마교회가 독립한 "대분열(The Great Sc- hism)"을 기점으로 나누어졌는데, 로만카톨릭은 베드로(Peter) 사도를 계승한교파이며 정교회는 안드레(Andrew) 사도를 계승했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 정교회의 뿌리는 서기 988년 비잔티움으로부터 들어온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브(Ky- iv)에 세워진 교회다.
후에 이 교회가 모스크바로 옮겨져교세가 계속 확장되어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러시아 정교회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니, 키이브는 러시아 정교회의고향과 같은 곳이다.
이런 교회 역사를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무력에 의한 크림반도 합병 후, 2015년 우크라이나교회는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을선언했다.
러시아 정교회를 대표하는 키릴 대주교는, 물론, 이를 즉시 거부했다.
이와 관련, 정교회 총 본부 격인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폴 정교회 대주교 바로톨로뮤가 두 나라 교회 간 화해를 시도했지만 키릴 대주교의 거부로 실패했다.
결국, 2019년 바로톨로뮤 대주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을 승인했고,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를 "해방과 독립의신성한 선물(the sacred gift of ema- ncipation and independence)이라며환호했다.
며칠 전 2월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만 1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 서방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전쟁 초기 침공의 명분이었던 "나치주의자들의 척결"이라는 구호는 사라지고 이념과 종교적 전쟁이라는 여론이부쩍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장기화되며 필연적으로 악화 되는 민심의 방향을 돌리고, 전쟁을 미화하려는 권력자들과 종교 지도자 들의교활한 선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 서방 민주주의 진영에 편입하려는 우크라이나를 이블(Evil: 악)이고 에너미(Enemy: 적)라며 전쟁을 부추기는키릴 대주교를 포함한 러시아 정교회지도자들이 경악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