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프로페셔널이즘 (Professionalism)
여행자들에게는 어떤 도시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 지방을 대표하는 한두 가지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나폴리를 말할 때 사람들은 피자와 푸른 바다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축구다.
축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 나폴리에 오게 되면, 식당이나 골목길의 벽에마라도나 사진이 많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한다.
"마라도나는 분명히 아르헨티나 선수인데, 왜 나폴리에..."라는 생각이 들기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나폴리의 전설이 되어버린 마라도나의 이야기를 다 하자면 밤을 새워도모자란다.
그 긴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나폴리의 역사는 짧게라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나폴리는 기원전에 그리스 인들이 건설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다.
불행하게도, 이 고도(古都)는 역사만큼이나 오랜 수난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도시가 세워진 후 그리스, 고대 로마, 동로마, 노르망, 신성 로마, 합수브르크, 프랑스와 같은 수많은 나라들로부터지배를 받았다.
지금은 같은 나라 시민으로 살고 있지만 이탈리아 다른 도시들과의 관계도 그리좋지만은 않다.
서로마 멸망 후 북쪽의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같은 도시들과는 다른 나라로 살아오다, 이탈리아가 통일되며한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나폴리는 이들도시들과 상당한 이질성(異質性)을 갖고 있다.
특히, 공업이 발달하여 비교적 부유한 위에 언급한 북쪽 도시들이 나폴리를 가난한 남쪽 변방 지역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
실제로, 여행 중에 "이탈리아 사람(Ita- lian)이냐"라고 물어보면 "아니, 나폴리사람(Neapolitan)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감정은 축구 경기장에서 여지없이드러나, 북쪽 도시 팀들과 경기를 할 때면응원 열기가 상상 이상이다.
1984년 마라도나가 SSC 나폴리 팀에입단할 당시, 팀은 세리에 A 1부 리그에서 강등될 위기에 있었던 최하위 팀 중하나였다.
나폴리 시민들은 마라도나가 팀을 강등권에서 구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87년, 마라도나가 주축이 된 SSC나폴리가 세리에 A 리그에서 우승을 한 것이다.
나폴리는 난리가 났다.
그동안 북쪽의 부자 강팀인 "유벤투스FC"와 "인터 밀란" 같은 팀들에게 주눅 들어 지내던 오랜 한이 한꺼번에 풀린 뜨거운 감정이 온 도시를 뒤덮었다.
나폴리가 2달 동안 축제로 요란했다고 하니 그 열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의 영웅이 되었다.
스페인과 원주민계 아버지와 이탈리아 와 크로아티아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마라도나는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니라 진정한 나폴리 인이 되었다.
세월이 흐른 2020년 11월 25일, 아르헨티나로부터 갑작스러운 마라도나사망 소식이 전해져왔다.
이 뉴스를 들은 나폴리의 모든 학교는휴교를 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나폴리 시는 경기장 기존 이름인"스타디오 산파올로"를 마라도나의 이름 인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Stadio Diego Armando Maradona)"로 교체했다.
1987년 세리에 A 우승 후 나폴리 축구는 다시 침묵했다.
그렇게 하위권을 맴돌던 SSC 나폴리는, 다행히, 최근 몇 년 동안 비록 리그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강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SSC 나폴리가 지난 몇 년 동안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쿨리발리라는 뛰어난 수비수의역할이 대단히 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이적 시장에서쿨리발리가 EPL(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 FC로 이적한다고 발표했을 때, 나폴리의 스팔레티 감독은 수비수 쿨리발리가 없는 SSC 나폴리는 약팀으로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구단 측에 강한불만을 토로했었다.
그런데, 전년에 비해 팀의 전력이 현저히 약화될 것이라는 이런 전문가들의예상과는 달리, 2023년 나폴리 팀은 새로운 기운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공격수 흐비차와수비수 김민재 선수의 영입에 힘입은 것이다.
조지아 출신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는 러시아 리그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축구계가 러시아제재를 강화하자 고국 조지아에 돌아와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팀을 떠나는 공격수 로렌초 인시녜의 대체자를 찾던 나폴리 스카우트 팀의 눈에 띄어 2022년 SSC 나폴리에 합류 했다.
평범한 선수로 생각했던 이 선수가 나폴리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40억 원이라는 적은 돈으로 영입한약관 22세의 흐비차는 데뷔전에서 저돌적인 돌파력으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나폴리 팬들을 흥분 시켰다.
리그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흐비차는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유럽 빅 클럽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스타플레이어가 되었다.
한마디로 나폴리는 껌값으로 대어(大魚) 를 낚은 것이다.
작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SSC 나폴리는 흐비차 외에 또 한 명의 숨어있던 놀라운 선수를 찾아냈다.
바로 대한민국의 김민재 선수였다.
김민재 선수는 이적 당시 터키의 페네르바체 SK에서 뛰고 있었다.
240억 원에 사들인 김민재 선수에 대한영입 당시의 여론은, 쿨리발리라는 발군의 수비수 대체 자리를 동양의 무명의선수에게 맡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행태라는 냉소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민재 선수는 흐비차 선수 못지 않은 역량을 보이며 이탈리아 축구 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리그 경기를 통해, 김민재 선수는 SSC 나폴리의 강력한 중앙 수비수로,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축구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신예 흐비차와 김민재를 앞세운 SSC 나폴리는 현재 세리에 A 리그 1위와챔피언스 리그(UEFA) 8강에 오르는 등 유럽 리그 최강 팀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흐비차 선수와 마찬가지로 유럽 빅 클럽들이 눈독을 들이며, 김민재 선수의 몸값은 손흥민을 웃돌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나폴리 사람들은 김민재에 열광했고, 덩달아, 그들은 대한민국에 대해 큰 관심과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일부 극성스러운 국내 팬들은 나폴리까지 날아가 그라운드에서 태극기를 들고 그를 응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순조롭게 입지를 굳혀가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 3월 28일 우루과이와 평가전을치른 후, 김민재 선수는 인터뷰 중 의외의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다. 소속팀에 더 신경을 쓰고 싶다."
그의 이 발언을, 당연히, 팬들은 "국가대표를 그만하고 싶다."라는 의미로 받아 들인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그를 열렬히 응원 했던 팬들을 크게 실망시킨 경솔한 처신이다.
본인의 해명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국내팬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한 것 같다.
이런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김민재선수 본인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소속 팀으로 복귀한 후, 지난 4월 3일 나폴리 마라도나 홈경기장에서 치른AC 밀란과의 세리에 A 경기에서 0-4로 SSC 나폴리는 대패했다.
김민재 선수는 이날 경기에서 SSC 나폴리에 합류한 후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나폴리 팬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그동안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실수도잦았던 그는, 결국, 후반 36분에 주앙제수스 선수로 교체 아웃되었다.
사실, 유럽 프로 팀에 몸담고 있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에게 평가전, 아시안 컵, 월드컵 등을 소화하는 것은살인적 체력을 요구하고 있다.
15 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시차적응도 없이 격렬한 경기를 해야 하는 그들은, 아무리 젊다고 하지만, 힘들고지치기 마련이다.
가끔, "이렇게까지 무리하며 국가대표를 해야 하나?"라는 회의(懷疑)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김민재 선수가 간과한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