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에 벚꽃이 피면
서재에 쌓여 있는 책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문득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때가 있다.
몇 십 년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누렇게 빛바랜 종이는 변해가는 내 모습과 묘한 동질감마저 갖게 한다.
돌아보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책 읽는취향도 이리저리 많이 변해왔던 것 같다.
지금은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지만, 30여 년 전에 일본 소설에 푹 빠졌던 때가 있었다.
우리 나이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일본 소설은 야마오카 소하치의<대망>에서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인쇄소에서 일하다 소설가가 된 야마오카가, 혼란의 전국시대를 참고 싸우며 결국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파란만장한 인생을, 홋카이도 신문에장장 17년을 연재하며 완성시킨 소설이다.
전 20권으로 구성된 이 대하소설을 거의 쉬지 않고 읽은 후, 여운이 남아틈틈이 다시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선하다.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찾아온 막부시대에는 <미야모토 무사시>를 비롯한 몇몇 장편 검객 소설을 제외하고는이렇다 할 눈에 띄는 소설이 없다.
그런데, 막부 통치가 끝나가며 유신이태동했던 메이지 시대를 그린 소설은, 시바 료타로(1923-1996)라는 걸출한 작가에 의해 상당한 분량이 출판되었다.
격동의 메이지 유신을 살았던 젊은 지사 들을 그린 <언덕 위의 구름: 전 10권>, <제국의 아침: 전 8권>, <료오마가 간다: 전 8권>같은 대하소설들이다.
그의 소설에서 우리는 사까모도 료오마, 사이고 다까모리, 이와자끼 야다로, 이또오 히로부미 같은 유신의 주역들의 삶을 만나 볼 수 있다.
나도 시바 료타로의 소설 속 인물사까모도 료오마에게 깊은 인상을 받고교토에 있는 그의 묘소까지 찾아간 일이 있다.
한때, 겨울이 끝나가는 계절이 오면 이른 봄을 느껴보려 남쪽 지방을 즐겨여행했는데, 가능하면 들렸던 곳이 소설<토지>의 무대였던 하동의 악양면평사리였다.
<토지>는 1969년 집필을 시작해1994년에 완성한, 25년에 걸쳐 박경리가 거처를 옮겨 가며 쓴 장편 대하소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도보로 약 50분 거리인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근처에박경리가 살았던 옛 가옥이 있다.
그곳에서 박경리는 <토지>를 쓰기 시작하여, 1,2권을 마치고 원주로 이사를 했다.
그녀는 생전에, 자신이 살았던 이 정릉 집에 대한 기억은 떠올리기도 싫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도 몹시 어려운 때였고, 무엇보다, 딸과 함께 사위인 김지하의옥바라지를 감당해야 했던 고통스러운세월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돌보지 못하는 집에는 한낮에도 커다란쥐들이 천정을 기어다녔다고 하니 그녀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사 속의 위대한 명작들은 작가의 부유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태어난 일이 거의 없다.
처절한 가난과 죽음과 같은 고독 속에서 불멸의 작품들은 생명을 얻어 숨쉬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가 생각하기도 싫었다고 말 했지만, 해방 후 우리 문학사 최고의대작이며 명작으로 불리는 소설 <토지> 는 외롭고 암울했던 이곳 정릉 집에서잉태하고 태어났음이 확실하다.
지난 4월에 박경리의 유고 산문(遺稿散文)인, <일본 산고:日本 散考>가 출판 되었다.
글 앞 부분에서 내가 읽었던 일본 소설 들을 언급한 것은, 사실, 내 마음속에 은근히 "나도 일본에 대해 알만큼 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일본 산고>을 읽은 후, 역시, 책을 읽어 얻은 지식은 경험과 깊은 학문을 통해 쌓은 지식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박경리의 일본에 대한 폭넓고 예리한통찰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170여 쪽의, 두텁지 않지만 내용이 압축 되어 있는, 이 책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첫째, 일본인들은 태생적으로 조작에둔감할 수밖에 없다.
일본을 세 단어로 표현하면 신국(神國), 만세 일계(萬世一系), 현인신(現人神) 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왕을 천황(天皇) 이라 부르는데, 이는 지상의 왕이 아니라 하늘의 왕이라는 뜻이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황당하다.
다시 설명하면, 일왕은 인간의 자손이 아니라 일본 건국 신화의 주인공인 여신"아마테라스"의 천손(天孫)이다.
일왕이 즉위할 때 "다이조사이"를 거행 하는데, 이 의식을 통해 그는 인간을 뛰어 넘는 존재 현인신으로 나아가게 된다.
어느 민족이든지 그 기원에 신화가 없는민족은 없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믿고 나라의 기틀을 세운 나라는 오늘날 일본을 제외하고는 세상에 없다.
사람의 아들을 하늘의 천손이라 우기는나라이니, 역사를 왜곡하는 것쯤은 그들에게 별것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칸트와 헤겔과 같은 철학자, 베토벤과괴테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독일은, 결코, 나치의 범죄를보상하고 오욕을 씻어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나라다.
그러나, 만세 일계 현인신이 존재하는거짓의 나라 일본은 군국주의자들이 저지른 만행의 진실을 밝힐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
둘째, 일본인들에게는 체념의 문화가 뿌리 깊다.
일본에는 우리의 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곡이 없다.
그들은 인간의 원초적 슬픔마저 안으로 안으로 억누르며 감정의 실루엣을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인의 춤이나 노래에서는 도무지 활력이 없다.
인간의 생명을 경시했던 칼의 역사 탓이크리라고 본다.
체념(諦念)과 한(恨)은 그 어휘가 갖고 있는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한이 최소한의 타협과 한 줄기 희망 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면, 체념은 출구가 전혀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강압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행해졌던"하라키리(자결)"는 절망의 체념 앞에 선 한 개인의 고통을 극대화 한 장치다.
생선 배가르듯이 자신의 배에 칼을긋고 "가이샤쿠"라 해서 옆에서 칼을 들고 있다 목을 쳐주는 의식이다.
추악하고 잔혹하고 야만적인 이 자살행위를 일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 하여 일본 정신이라며 자랑을 해왔다.
일본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이런괴기스러운 의식에 무슨 죽음의 철학이라도 있는 양 현혹되었다.
그러나, 하라키리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뒤섞인 몬도가네 의식일 뿐이다.
셋째, 일본의 재 무장은 세계의 위험이될 수 있다.
박경리가 오래전에 " 우리들의 국경일8.15는 해마다 그 감격과 의의가 희석 되어 가는 반면, 히로시마 원폭의 기념행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열기가 높아 가는 것 같고 분함과 보복의 칼을 가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한다."라고 한 말은 마치 오늘의 현실을 꿰뚫어 본 듯 해 섬뜩하다.
자신들의 만행은 감추고, 열심히 기념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하며 일본은 피해자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내보내고 있다.
참으로 집요하고, 조작과 날조의 명수답다.
2차 대전 참전국은 물론 우리 대통령 까지 히로시마에 가서 헌화를 하고 야단을 떠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어쨌든, 일본의 전략은 적중했고 성공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끔찍한 역설이지만, 히로시마 원폭 투하는 일본에 피해를 준 것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진실이다.
전쟁이 패전으로 기울며, 일본은 청소년들을 가미카제라는 자살 비행으로내몰았고, 연합군이 본토에 상륙하면 최후의 한 사람까지 옥쇄(玉碎) 한다는 결전을 각오하고 있었다.
만약, 원폭 투하가 없었고 일왕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일본 본토는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재무장을 반대하는 것은, 이렇듯 제 동족까지 모조리 담보로 하고맹목적인 전쟁을 수행하려 했던 광기에 가까운 역사적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충분히 무장을 하고 국가 간 큰충돌이 발생하게 되면, 그들이 인류 전멸을 각오하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일본이 지금처럼 평화 헌법을유지하는 것이 주변국은 물론 일본 자신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