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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Leman)호(湖)에 비 내리다

여행객들에게는 자신만이 좋아하는 다양한 목적지, 데스티네이션(Destin- ation)이 있다.

음식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마음속에 있는 예술품을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광장과 골목길 그리고 시장을 보러여행하는 이들이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쫓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스위스는 자연 풍광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다.

스키장, 트래킹 코스, 산악열차 등과 같은 천혜의 풍성한 관광 상품을 잘 보존 하고 있는 스위스는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여행 목적지다.

나도 개인적으로 잊히지 않는 스위스에 대한 기억이 있다.

80년대 중반 스위스에 처음 갔을 때, 취리히 공항에 착륙하기 전 창가에 비친 그림 같은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터라켄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를 오를 때, 눈 쌓인 언덕에서 회색산양들이 뛰노는 광경은 정말 경험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마터호른을 품은 알프스의 만년설준봉들은 스위스를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논자연의 경이로움 일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는 스위스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풍경은 레만(Leman)호다.

레만호는 길이 72Km, 폭 14Km의하늘에서 보면 마치 초승달 모양을 한알프스에서 가장 큰 호수다.

호숫가 언덕에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은이곳이 스위스 포도주의 주산지임을 말해 주고 있다.

레만호의 도시 로잔(Lausanne)은호수 너머 프랑스 쪽 에비앙과 마주 보고 있는,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 도시 중 하나다

시내에 무궤도 전차가 다니는 로잔의 시민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특히, 강수량이 높지는 않지만 자주 비가 내리는 도시로 유명하다.

내가 레만호를 여행할 때도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명작을 남기며 세계적인 작가가 된 인물들은 모두가,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뛰어난 작품을 갖고있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와 함께 20세기 미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도 그런 작품이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 ms>다.

1929년 발표된 <무기여 잘 있거라>는헤밍웨이를 동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 중한명으로 만들어준 소설이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의 문체는, 당시 미국 문학의 주류였던 하드보일드(hard- boiled)라는 형태로, 비정하고 냉혹하다.

권선징악 같은 고전적 스토리와는 거리가 먼, 때로는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며, 멀쩡한 주인공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몰아가는 잔인함도 보인다.

어떤 평론가는 이를 "무채색의 삭막한아름다움의 세계: a starkly beautiful world"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연합군 앰블런스운전기사로 복무한 경력이 있다.

당시, 그는 "아그네스 본 쿠루오스키((Agnes von Kurowsky)"라는 미국인간호사와 사랑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의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는 그때의 "이루지 못한 전쟁 중 첫사랑"이 모티프(Motif)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보고 있다.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주인공 미국 청년 프레데릭 헨리(Frederic He- nry)가 이탈리아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던 중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시작된다.

전쟁에 묘한 동경을 갖고, 참전하고 싶었던 헨리는 이탈리아 군에 지원하여구급차 부대 장교로 배치를 받았다.

그의 의지대로 최전선에 근무하다 휴가를 나온 헨리는, 군의관인 친구 리날디(Rinaldi)의 권유로 캐서린 버클리(Cat- herine Barkley)라는 스코틀랜드 출신간호사를 만나게 된다.

간호사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녀는, 금발과 갈색 피부 그리고 회색 눈을 한 큰 키의 미녀였다.

캐서린은 약혼자가 작년 솜(Somme)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말하며, 자신이 왜전선에 가까운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지를 암시해 준다.

그녀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이 헨리는 부대에 복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지는 전선에서 박격포 파편에 다리 부상을 입고 헨리는 밀라노 병원으로 이송 된다.

그곳에서 헨리와 캐서린은 재회를 하고, 또,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확인하게 된다.

심한 부상을 입고 후송되어 있던 이 시기에,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헨리는 캐서린과의 사랑에서 새로운안식처를 얻으려 노력한다.

성공적으로 다리 수술을 마친 헨리는요양을 마친 후, 다시 독일군과 격렬한교전을 벌이는 전선으로 돌아왔다.

밀고 밀리는 전투에서 독일군의 강력한진격에 연합군은 후퇴를 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구급차는 진흙탕에 빠지고 병사들은 도망을 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극도의 혼란 상황에서 헨리도 이탈리아헌병에게 탈영병으로 체포되어, 사형에처해질 절박한 형편으로내몰렸다.

헨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탈출하기로결심한다.

많은 위기를 넘어 탈출에 성공한 헨리는 캐서린이 있는 밀라노를 찾아갔지만, 그녀가 이탈리아 북서부 도시 스트레사(Stresa)로 떠났다는 말을 듣게 된다.

헨리는 곧바로 스트레사로 향했다.

그리고, 스트레사의 한 호텔에서 친구헬렌(Helen)과 식사를 하고 있는 캐서린을 찾아낸다.

그녀는 임신한 몸이었다.

헨리는 캐서린에게 바로 짐을 정리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만류하는 친구 헬렌을 뿌리치고 캐서린은 지체 없이 헨리를 따라나선다.

"Switzerland is down the lake, we can go there. 저 호수 너머에 스위스가 있소, 우리는 그곳으로 갈 겁니다."

헨리의 이 말에 캐서린이 대답한다.

"That's will be lovely.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이 짧은 한마디에 이미 캐서린은헨리와의 사랑에 생명을 걸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둘은 호숫가 호텔에서 스위스로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밀라노에서 오랫동안 헨리와 가까운 친구처럼 지냈던 바텐더 에밀리오(Emilio)가 찾아와 "경찰이 소재를 알고 있으며, 내일 아침 체포하러 올 것 같다. 그러니, 지금 떠나야 한다."라고 말을 한다.

"폭풍우가 치는 이 밤에..."라는 헨리 의 말에 "폭풍은 이미 지나갔어요"라고에밀리오가 안심시키며 서두르라고재촉했다.

밋밋하던 소설은, 폭풍의 끝자락이 아직 남아있는 비 오는 밤에, 에밀리오가 마련해 준 조각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 하는 장면이 되며 긴장 속으로 빠져든다.

에밀리오는 큰 우산 하나와 샌드위치를 건네 주며 "지금 밤 11시니까 계속 노를 저어가면 내일 아침 7시에는 스위스에 도착할 것이다"라며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준다.

헨리와 캐서린은 11월의 차가운 비를맞으며 조각배에 올라 스위스를 향해 노를 젓기 시작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도 두 사람은 노를 젓고, 우산으로 바람을 이용 하며 칠흑 같은 호수 위에서 도라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알프스의 산 위에는 눈으로 내리는초겨울의 쌀쌀한 비에 젖어 있었지만, 캐서린은 오히려 행복했다.

"Isn't the rain fine? They never had rain like this in Italy. 비가 좋지 않아요? 이탈리아에서는 한번도 이런 비를 맞아본 일이 없어요."

위대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비 오는 밤 호수 위의 헨리와 캐서린은, 어쩌면,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두 사람은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스위스의 몽트뢰(Montreux)에 도착 하게 된다.

탈출에 성공한 그들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조그만 도시에서, 백조를 바라보며 호숫가를 걷고, 시내를 걷고,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꿈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I'll be very glad to be an American. (당신과 결혼해서)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너무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