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2019년 12월 중국에서 원인불명의폐렴이 집단 발병했을 때 사람들은이전의 사스나 조류독감처럼 곧 잠잠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폐렴은 기존의 호흡기 질환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염 속도와 인명 피해를 주며 지구촌을 긴장 시켰다.
이렇게 시작된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일상의 변화를 몰고 왔다.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속되며불필요한 외출이 급격히 줄고, 심지어, 일부 회사들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를 시행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도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여행도 하며 나름대로 보람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폐쇄적인생활로 빠져들며, 얼마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지나며, 직감적으로 혼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이럴 바에야 집에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심리적 압박감도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평생을 살며 어떤 목표를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전력투구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인생을 정리해가는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내 삶의 의미 있는 시기를 동면(冬眠) 으로 몰아가는 외부의 충격을 그냥 넋놓고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세계 100대 고전 문학을 영문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상당히 지루한 싸움이 될 것으로 보여 일종의 전략 같은 계획도 만들어 봤다.
결국,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생각으로, 소위, 대작(大作)이라 불리는분량이 부담스런 작품들을 먼저 읽기로 했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형제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 같은, 두께가 벽돌로 비유되는 소설들이다.
예상했던 데로, 코로나 통제 기간은 쉽게 끝나지 않고 2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목표했던 100권 중 80권을읽었는데, 그 중 열두서너 권은 영문본을구하지 못하여 번역본으로 대체했다.
그 책들은 구하는 데로 다시 천천히 읽을예정이다.
어쨌든, 목표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오며 지금은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다만, 영미권의 대학생들도 쉽게 도전 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고전 문학의 큰 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이 작품만 끝내면 내 목표의 9부 능선은넘어선다.
생활 속에서 독서는 그 안에 재미와지식 습득에 대한 자기만족 그리고 정신적 고양(高揚)이 없으면 절대 지속할 수 없다.
독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양식(糧食) 은 굳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아래 세가지는, 특히, 장년과 노년의세대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독서는 우리를 욕심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을 시켜 준다.
이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카카오톡에는 끊이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살자"라는 글이 올라온다.
욕심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글에서 말하는 욕심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말하는 것이라 본다.
그런데, 욕심이라는 것이 버리자고 마음먹으면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인가?
욕심을 버리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고도의 자기 수양을 요구하는 높은 경지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언젠가 서머셋 몸(Somerset Maug- hum)의 작품 <인간의 굴레: Of Human Bondage>를 읽다가 "돈이란 우리 몸의여섯 번째 감각이다"라는 글귀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돈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사업할 때 자금이쪼들리면 입맛도 없어지고 오감의 기능이 위축되었던, 반대로, 영업이 잘 되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라는 옛말처럼괜히 기분이 좋았던 기억에 쓴 웃음을 지었다.
부질없는 욕심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 본능적 욕망을 억누를 수 있는 수단과대상이 있어야 한다.
독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재물의 욕심에서 완전한 해방까지는아닐지라도, 독서를 통해 재물 외의 다른 인생의 가치를 찾아가다 보면 분명히 우리는 물욕에서 한 발 떨어져 세상을관조(觀照)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독서를 통해 과거의 속박에서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참 알 수 없는 존재다.
분명히 현재를 살고 있지만, 지나간 과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자신을 구속 하며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과거에 대한 집착은 점점 더 심해진다.
특히,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 좋아하던 사람에게 내가 모질게 했던 일 그리고 잘못된 판단으로의 실패와 같은 부정적인 기억들이 끊임없이 현재의 내 기억 속을 맴돈다.
과거의 실수나 잘못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지난 일이니 잊어버려라"라고 말하듯이 영미인들도 아래와 같은 말을 흔하게 사용한다.
"Let bygones be bygones.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그러니 너무괴로워하지 말아라)"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였던버나드 쇼(Bernard Shaw)는 이런 말을 했다.
"We are made wise not by the resp- onsibility of our past, but the respo- nsibility for our future. 우리는 어리석게 지난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버나드 쇼의 말속에는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작든 크든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와 회환을 갖고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책 속에는 인간의 심리를 깊이 연구한사상가들의 심오한 글도 있고, 역경을 이기고 성공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에는 순수하고성실한 사람들이 성공한 후 서서히 타락 하고 무너지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많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영웅들이 인생의 막바지에 오만과 어리석음으로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을 보며 자신들의 부족한 삶을위로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상의 책을 통해 앞서간 선인들의 고견을 듣고, 또, 문학작품의 숱한 주인공들의 서사(敍事)를 만나며 지나간 내 삶에 대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셋째, 독서는 때로 세월을 이기게 한다.
인생의 짧음에 대해서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 만큼 가슴을 울리는 글을 남긴 인물도 드물다.
그의 수필을 "화려한 문화와 절망적인향락이 공존하던 로마에서 길어올린철학적 사색의 보고"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의 수필은 인생의 질곡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사색의 여백을 마련해 준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흰 머리카락과주름진 내 얼굴을 바라본 후 세네카의 글을 읽어보라.
"노년이 우리를 덮칠 때 우리 마음은 여전히 소년이었지요. 우리는 준비도 없이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노년을 맞았습니다. 분주히 살아가느라 노년이날마다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알아차리지 못했지요. 마치 여행자가대화하거나 무엇을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어느새 목적지에 와 있는 자신을발견하듯이.... 우리는 그렇게 노년을맞았습니다. 앞으로도 인생은 우리가 태어난 첫날 그 속도로 흘러갈 것이고, 진로를 되돌리거나 머물지 않고 종착역을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인간의 심연을 꿰뚫었던 명성이 드높은철학자들, 불후의 명작을 남긴 위대한작가들은 모두가 "세월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라고 했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때로는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곳에 놀라운 반전의 역설(逆說)이 숨어있다.
"세월의 무상함의 진리"를 깨달아 가며시간의 흐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세네카가 말했듯이, "내가 유한한 존재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친구들도 모두가 유한한 삶을 살고 있다"라는만고의 진리를 깨닫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