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쥐 성찰(省察)
한동안 침체되었던 국내 영화 시장에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서울의 봄>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소재가 그동안 여러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던 다소 진부한 역사 사건이지만,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신들린 듯한 연기로 스크린 파워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오랜만의 수작(秀作) 이다.
특히, 보도에 의하면, 격동의 그 혼란을겪지 않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큰 감동과 흥미를 주고 있는 모양이다.
마치, 우리의 앞서간 선배들이 만주벌판에서 일본군과 싸운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12.12 군사반란은,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허망한 사건이었다.
한 줌밖에 안되는 군의 사조직 하나회가 군권을 장악하고 헌정 질서를 파괴하며 국가 권력을 찬탈한 쿠데타였다.
박정희라는 절대 권력자가 사라지고,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민들의 꿈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기도 하다.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던 민주화를향한 에너지는 광주 민주화운동과 몇 번의 시민 항쟁을 거치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소멸되어 갔다.
주류 언론들은 전두환 장군을 찬양하기시작했고, 급기야, 그가 국가를 혼란에서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여론을 주도하는, 소위, 사회 엘리트그룹들의 변신은 정말이지 카멜레온이무색할 정도였다.
12.12 군사반란은 미국 정계에도 상당한 충격과 논란을 몰고 왔다.
당시 한미연합군 사령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존 위컴(Jhon Wickham)의 12 .12 군사반란을 바라본 시각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러 가지 설(說)이 있다.
그가 어떤 스탠스(Stance)를 취했느냐는 것은 뒤로하고, 군사반란의 진행과정을 지켜본 후 미국에 돌아가 한 발언은 한국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위컴 사령관은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그때의 혼란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이 권력을 장악하자)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마치 레밍(Lemming)떼 처럼 그의 뒤에 줄을 서고 그를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가 언급한 "레밍(Lemming)"이라는 단어는 북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나그네쥐"를 뜻하는 말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야생 동물들이 그렇듯이, 이들도 증가하는 개체 수 와 먹이 부족으로 인해 끊임없이 이동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가끔 레밍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집단 자살"이라고도 알려진 들쥐떼의 죽음의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리더가 잘못 판단한 위험한 길을 뒤따르는 무리가 아무 판단 없이 몰려가며몰살당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두 레밍이 앞에 있는 바다를 쉽게 건널 수 있는 개울로 착각하고뛰어들면, 무리는 무조건 그를 뒤따르다한꺼번에 모두 빠져 죽는다.
존 위컴 사령관은, 전두환이 한 나라를이끌어갈 리더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전두환이 권력을 잡고 전면에나서자, 여기저기서 그를 찬양하며 따라 가는 한국사회 지도층의 모습이 꼭 들쥐떼 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다른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전두환 찬양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작가 천금성이 쓴 <황강에서 북악까지>라는 책이다.
황강은 전두환의 고향 합천에 있는 강이며 북악은 청와대가 있는 산이다.
황강의 가난한 소년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노골적인 전두환미화 전기였다.
천금성은, 후에, 이 책을 당시 소위"쓰리(Three) 허" 중 한 명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던 고등학교 선배 허문도의권유로 썻다고 밝혔다
천금성은 독특한 인물이었다.
서울 농대 임학과를 나온 그는 산으로 가지 않고, 웬일인지, 바다에 매료되어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을 누비었다.
바다에 살며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던 그는 1969년 <영해발부근>이라는단편 소설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되며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언젠가 해양 고전 문학의 금자탑인 허먼 멜빌의 <모비딕>같은 작품을 쓰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바다에서의 많은 경험과 상당한 필력을 갖고 있던 그로서는 충분히 품어볼 만한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천금성은 해양 문학이 전무한 우리 문단에서 "해양문학의 선구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황강에서 북악까지>는 천금성에게 평생의 문학적 족쇄가 되었다.
"희대의 어용 작가"가 된 그를 어떤 평론가는 "바다의 작가 육지에서 조난을 당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쨌든, 뒤틀린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과코메디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발전을 이루어 가며 정치 시스템과 시민의 성숙도가 선진국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순탄할 것 같던 우리 정치는,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다시 한번 예상치 못한이변을 겪게 된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은 개혁이 필요하며 이를 지지한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는 검찰총장에 임명된 후,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은 고사하고 아예 검찰 패권주의자로 태도가 백팔십도바뀌었다.
수사권을 남용하는 것을 넘어 대통령의통치권에 도전하는 듯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더 해괴한 일은 이런 검찰총장을 두둔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수사(修辭)였다.
<서울의 봄>의 주인공은 배우 정우성이 이태섭이라는 가명으로 연기한 장태완 수경사 사령관이다.
12.12 군사반란의 여파로 아버지와 아들을 잃은 장태완 사령관은, 세월이 흐른 후, 한 인터뷰에서 " 전두환보다 더미운 사람은 최규하 대통령과 노재현국방장관이다"라는 말을 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나 각 군참모총장을 지휘 감독하는 국방장관이"반란을 주도한 관련자를 체포하라"라는명령만 내렸어도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흘러갔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
역사의 패배의 장(章)에는 늘 무능하고나약한 지도자가 있었다.
12.12 반란 시 무기력한 최규하 대통령과 겁많은 기회주의자 노재현 국방장관이 있었듯이, 윤석열이 황당한 권력욕을드러낼 때 결단을 피하며 미적거린 비겁한 지도자 문재인이 있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 재직 시 임명직공무원으로 부여된 권력을 이용해 누가 봐도 교활한 자기 정치를 할 때, 문재인 은 그를 가리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며 정치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하며 개혁을 갈망하던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윤 총장이 야권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던, 2021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문재인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언은 그가 쌓아왔던 정치적 가치와 유산을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당시 주류 언론들의 윤석열 띄우기는12.12 군사반란 후 전두환 찬양과 매우흡사했다.
목수 일이나 구두 만드는 수공업에서도도제(徒弟)의 기간, 즉, 견습공의 시간이필요하다.
그런데,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평생수사만 하던 검찰총장에게 곧바로 나라의 운명을 맡기자고 야단을 떠는 정신 나간 집단이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사들이다.
그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국민들을진영에 가두고 대립하게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어스 버서스 뎀(Us Versus Them)", 다시 말해, "우리 대 그들"이라는 프레임을 짜놓고 끊임없이 국민들을 편가르며, 자신들이 권력의 한 축을 붙들고 있는 한국의 사이비 언론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된 후 윤석열의 정치적 역량은, 한마디로, 아마추어(Amateur)가무엇인지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외교 안보 라인 참모들의, 국제관계마저 철지난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한심한 작태를 보고 있자면 분노를 넘어 절망감마저들게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깡그리 무시하며 쓸데없는 불화를 만들어 놓고,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겠다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설쳐대는 윤 대통령의 모습은 풍차를 향해창을들고 달려가는 돈키호테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