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
대부분의 사람들은 러시아 문학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린다.
19세기 거의 동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은 러시아 문학을 세계에 드높인 대문호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인들에게 " 역대 문인들 중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푸시킨"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이 가장많다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의 문학사에서 푸시킨만큼 민중과 함께 웃고 울며호흡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론가들은 그의 문학의 순결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슬픔에 처해있을 때에도 환상이나 종교에 구원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늘 타인의 기쁨에 동조하려 했으며 생활의 기쁨을 노래할 때도 모든 사람들과 그 기쁨을 나누어 갖기를 원했다. 푸시킨의 가슴속에는, 자기만을 위한 자유나 타인의 희생으로 자신의 행복을 구하려는 자들에 대한 노여움이깃들어 있었다."
1820년 그의 나이 21살 때, 푸시킨은 민중의 말을 대담하게 사용한 서사시<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발표하며 젊은시인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나왕실과 보수적 문인들에게는 격심한 공격을 받았다.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은 "푸시킨같이불순한 시를 쓰는 자는 엄벌에 처해야한다"라고 아우성을 쳤고, 알렉산드르1세도 그를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다행히, 푸시킨의 재능을 아깝게 생각하던 유력인사들의 중재로 그는 흑해 연안 남부로 추방을 당하게 된다.
문학이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비밀을 감추고 있다.
위대한 작품은 거의 다 작가의 번뇌와고독 그리고 고통 속에서 싹이 트고 꽃을피웠다.
푸시킨도 병마에 시달리고 외로움에떨어야 했던 유배지에서, 그의 불후의걸작 <예브게니 오네긴>을 쓰기 시작했다.
흑해의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 1823년1장을 시작한 이 작품은, 그 후 9년이란짧지 않은 세월을 거쳐 1832년 마지막8장까지 완성하게 된다.
푸시킨은 <대위의 딸>과 <스페이드 여왕> 같은 빛나는 소설들을 발표했지만, 그의 대표작은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러시아인들이 왜 그토록 푸시킨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문체는 산문(散文)임에도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부드럽고 아름답다.
자유롭고 고독한 청년 오네긴과 순박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와의 사랑을 그린 <예브게니 오네긴>은 민중의 큰 사랑을 넘어 다음 세대의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들에게도 실로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작품 속 주인공 오네긴은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였지만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과 반항적 성품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퇴폐적인 생활을 하는 도시 청년이다.
그의 곁에는 달콤한 포도주, 아직 핏기가가시지 않은 스테이크, 신선한 송로 과자 그리고 라부르흐 생치즈가 있다.
무도회의 화려한 불빛과 고혹적인 여인들의 향수 속에서 오네긴은 그를 휘감고 있는 고독을 떨쳐보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병든 도시의 환락은 그를 구원 하지 못했다.
아직 피 끓는 청춘이었지만 그의 가슴의불꽃은 이미 꺼졌고 사교계의 웅성거림도싫증이 났다.
극심한 정신적 방황의 그 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욕심 많은 채권자들이몰려와 빌려 간 돈을 내놓으라며 아우성을 친다.
그즈음 재산을 물려주기로 한 숙부의병세가 악화되자, 득달같이 달려가는 오네긴은 억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한몫 잡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고인의 시신이 땅에 묻히고, 신부와손님들은 진탕 먹고 마신 뒤 무슨 큰일이나 치른 것처럼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돌아갔다.
이제 시골 영주, 광산이며 목초지며 숲이며 호수가 모두 오네긴의 것이 되었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목초지, 참나무 숲,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가 처음에는 무척 좋았지만, 며칠 지나자 그런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졸음만 왔다.
거대한 영지에 덩그러니 혼자인 예브게니 오네긴에게 한 친구가 다가온다.
자기 영지로 돌아온 젊은 영주 블라디미르 렌스키였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순수한정신의 소유자이며 칸트의 숭배자이며시인이었다.
렌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커온 마을 이웃 처녀 올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오네긴은 친구 렌스키와 함께 가끔 올가의 집에 들렸다.
올가에게는 타티아나라는 언니가 있다.
"여동생 올가와 달리 화려한 아름다움이 나 싱그러운 분홍빛 뺨으로 남의 이목을끄는 일도 없이, 숲의 암사슴처럼 매사에소심하고 남을 두려워하고, 슬픈 듯이 말 수도 적고, 자기 집에 있으면서도 손님 처럼 보였다."
수줍음 많은 타티아나는 오네긴을 연모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는 두 사람에 대한 별별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타티아나는 이런 헛소문에 짜증이 났지만 또 마음 한구석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나는 사랑에 빠졌어. 마침내 내게도 때가 온 거야! 땅에 뿌린 씨앗이 따뜻한기운을 받아 싹을 틔우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이야."
마음속으로만 사랑을 키우다 지친, 타티아나는 프랑스어로 편지를 썼다.
"당신은 왜 우리 집에 오셨나요? 안 오셨으면, 잊혀진 이 벽촌에서 저는 평생 당신을 모르고, 또 쓰라린 고통도 모르고지냈을 텐데. 당신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저를 괴롭게 했고, 당신의 목소리는 가슴에 울려 퍼졌습니다. 다른 사람!.... 아니에요. 이 세상에 내 마음을 바칠 사람은당신 밖에 없어요!"
감정이 메말라버린 오네긴이었지만, 타티아나의 편지를 받고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오네긴은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난 행복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눈부신 아름다움조차 내겐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그걸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어느새 내 감정은 식을 것이고, 당신의 눈물 흘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기때문입니다."
어느 날 조용하던 이 고장에 축제의 무도회가 열렸다.
단조로우면서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왈츠의 리듬에 맞춰 남녀가 쌍쌍이 돌아 간다.
그리고 불화의 여신이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화려한 무도회가 시작되며, 렌스키는타티아나에게 춤을 청했다.
오네긴은 미소 지으며 올가에게 다가가 그녀와 짝을 이루어 하객들 앞에서 춤을춘다.
한 쌍의 나비 같은 아름다운 오네긴과올가의 춤추는 모습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렌스키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마주르카 연주가 끝나고, 질투에 화가 치민 렌스키가 재빨리 올가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코티용 춤(무도회의 마지막 춤) 을 청했지만 열기에 뺨이 발그레하게물든 올가가 거절한다.
이미 오네긴과 추기로 약속되어 있다며 ....
렌스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제 겨우 솜털을 벗은 어린 것이 벌써 부터 변덕을 부리며 간교한 꾀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꼬리를 치다니!"
렌스키는 충격에 밖으로 뛰쳐나와 말을 불러 타고 서둘러 집으로 떠난다.
칸트의 숭배자 시인 렌스키는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그리고, 오네긴이 이를 받아들인다.
결투를 앞두고 쓴 시인의 시는 웬일인지 불행을 예고하는 듯 우울하다.
" 아름다운 아가씨여 소리 내어 울어다오. 때아니게 죽은 자, 오랜 친구의 이 무덤을. 그 위에 눈물을 흘리며 가슴속에 말해주겠는가."
결투 전날 밤 렌스키는 뜬눈으로 지샜지만, 오네긴은 깊은 잠을 잤다.
이른 새벽에 결투가 시작되었다.
렌스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피스톨을겨눌 때--- 그때 갑자기 오네긴이 방아쇠를 당겼다.
시인은 피스톨을 손에서 떨어뜨리며 소리 없이 쓰러졌다.
오네긴이 뛰어가서 젊은 시인의 얼굴을 보며 이름을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렌스키는 이미 죽어 있었다.
거센 바람이 일어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여명 속에 시들고 제단(祭壇)의 불은꺼졌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슬픔의 기억만 남기고 마을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