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
(결투로 친한 친구 시인 렌스키를 죽인 후 괴로움을 안고 이곳저곳을 방랑하다, 스물여섯이 되어 모스크바로 돌아온 오네긴은 무도회에서 자신을 사모했던 시골 처녀 타티아나를 만난다. 그녀는 기적과같이 모스크바 사교계의 여왕, 공작 부인이 되어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세련되게 변한 그녀에게, 오네긴은 깊은 애정을 느끼며 가까이 가려 하지만 매몰차게거절당한다. 여러 차례 편지에 대한 반응도 전혀 없는 가운데....)
얼마 후, 오네긴은 한 무도회에서 타티아나와 마주쳤다.
오네긴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는고뇌의 흔적은 전혀 없고 노여움만 가득 차 있었다.
그 눈빛은 자신이 보낸 편지에 대한무뢰함을 나무라는 듯 보였다.
희망은 사라졌다.
오네긴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며 어리석었던 행동을 저주 했다.
그는 다시 시끄러운 사교계와 인연을끊고 서재에서 닥치는 데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눈은 글자를 읽고 있지만 마음은 희망과 슬픔이 뒤엉켜 먼 곳을 날고 있다.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순박한 처녀타티아나의 프랑스어 편지 한 구절 한 구절이 생생하게 살아나 기억 속을 떠돈다.
그는 수줍은 그녀의 가슴에 피어오르는 사랑의 불꽃을 알아차렸지만 그것을 믿을 용기가 없어 마음의 움직임을 억눌렀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겨울의 동면과 포근한 봄기운으로 쇠약 했던 오네긴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두더지처럼 서재에 틀어박혀 있던 오네긴은, 햇빛이 눈부신 어느 아침 집을 나서 네바강을 따라 썰매를 몰았다.
그는 지금 공작의 집으로 가고 있다.
모스크바를 떠날 때 떠나더라도, 어차피, 한 번은 타티아나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문을 열고 들어간 응접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아 넓은 방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도 인기척이 없어 옆에 붙어 있는 방문을 열었다.
오네긴은 방안에 있는 타티아나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온몸이 얼음처럼 굳어졌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실내복을 입은 채 자신의 편지를 읽으며 한 손으로는 쏟아 지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오네긴은 참았던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발아래 몸을 던졌다.
말없이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는 표정이나 노여운 빛은 없었지만, 소리 없는 원망의 기색이 스쳐 지나간다.
무언극(無言劇)과 같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늘 오네긴 님의 말을 다소곳이들었지만, 오늘은 제가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그녀는 더 이상야회의 여왕 공작부인이 아니었다.
"오네기 님, 그 무렵 저는 더 젊고 더기량도 좋았었지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의 마음속에서 발견한 것은 오직 냉혹함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울고 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때 어린 나의 철없는 꿈을 귀엽게 생각하고, 나이 어린 저의 처지를 가엾다고 생각 해 주셨다면.... 지금 이러시면안됩니다. 어째서 제 발아래 무릎을 꿇는건가요? 이 얼마나 천박한 일인가요? 무엇 때문에 당신만 한 감성과 지혜를 가진 분이 이렇게 감정의 포로가 되었나요?"
"오네긴 님, 저에게 이와 같은 화려함, 역겨운 겉치레, 무도회가 무슨 가치가있단 말입니까?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가장무도회와 같은 이런 삶을 버리고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던 그리운 그조촐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타티아나의 긴 내레이션과 함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은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행복은 눈앞에 그토록 가깝게 있었는데.... 하지만, 저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제가 경솔했는지 모르죠. 하지만 어머니가 눈물로 부탁하는 결혼을 저는 뿌리칠 수 없었어요...."
"제게서 멀리 떠나주세요.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에는 긍지도 진정한 명예도 있다는 것을....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거짓말을 해서 무슨소용이 있겠어요.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온몸입니다. 저는 끝까지 정조를 지킬 생각이에요."
대문을 향해 걸어가는 타티아나는, 지금, 그를 떠나고 있다.
오네긴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을 때, 박차(拍車) 소리가 울리고 그녀의 남편이 저만치 서 있었다.
소설은 더 이상 오네긴의 초라한 모습을묘사하지 않고 있지만, 그는 다시 방랑의 길로 돌아갔음을 암시하고 있다.
작가 푸시킨은, 마치, 무심한 화자(話者) 처럼, 주인공 오네긴의 곁을, 그의 불행한 사랑의 결말로부터,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떠나자고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며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끝맺는다.
평론가들 중에는 "작가 푸시킨의 삶은 소설 속 오네긴보다 더 외롭고 고달팠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푸시킨은 1825년 발생한 "데카브리스트 반란"과 운명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다.
1812년의 나폴레옹군과의 전쟁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민족적인 자각과 긍지를불러일으켰으나 국가의 정치체제는 여전히 낡은 농노제도 전체주의 하에 있었다.
나폴레옹으로부터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해 피 흘린 병사들은 전쟁이 끝나며 다시 농노로 지주의 채찍 밑으로 돌아가야했다.
그러나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을 몸으로체험하고 돌아온 젊은 사관들 사이에는 러시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식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1825년 11월 알렉산드르 1세가 갑자기 서거하자, 12월 페테르부르크 원로원 광장에서 귀족 청년 장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푸시킨은 그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지만 그의 정치적 자유를 찬양하는 많은시(詩)들이 데카브리스트 혁명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그는 봉기 소식을 듣고 가택 수색을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편지나 서류를불태운 후, 저항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하지만 도중에 수도에서 오는 한 여행자로부터 반란이 이미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새 황제 니콜라이 1세는 데카브리스트주모자 5명을 사형에 처하고, 나머지120명은 시베리아 강제 노역장으로 보냈다.
1826년 니콜라이 1세 황제는 푸시킨을모스크바로 소환했다.
그 이유는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으로 돌아선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이 국민 시인을 이용해 보겠다는 속셈이었다.
황제는 푸시킨의 유형(流刑)을 해제하며, 그에게 러시아의 명예를 위해 훌륭한 시를 쓰고 황제인 자신을 친구처럼 여겨 줄 것을 부탁한다.
니콜라이 1세는 푸시킨이 궁정시인으로 자신을 찬양하는 시를 쓸 것을 기대 했으나, 푸시킨은 자기 영혼과 같은 예술의 독립성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황제에게 고개 숙이기보다는, 오히려, 시인은 국가의 개혁을 꿈꾸다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마음속 동지들에게 뜨거운 애정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푸시킨은 <시베리아에 보내는 시>를 써데카브리스트를 위로했으며, 또 다른 시<아리온>에서는 그들과 자신은 하나임을 노래했다.
당연히, 이 거만한 시인 푸시킨은 거동하나하나마다 엄격한 감시를 받고 구속당해야 했다.
1828년 겨울, 푸시킨은 모스크바에서나탈리아 곤차로바라는 열여섯 살의 아름다운 소녀를 만난다.
그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후에도 그녀를 잊을 수 없어 오랜 주저 끝에 다음 해 봄 청혼을 하게 된다.
나탈리아의 어머니는 별 재산도 없고지위도 변변치 않고, 더군다나 황제의미움까지 받고 있는 궁정의 문사인 푸시킨이 달갑지 않아 완곡히 거절한다.
그러나, 푸시킨은, 1831년, 나탈리아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에게 열렬히 구애하여 모스크바에서 결혼을 하고 페테르부르크에 정착한다.
3년 후, 황제는 푸시킨을 황제 시종보로임명했는데,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황제가 나탈리아 곤차로바를 곁에 두고 싶어 서 행한 일이라고 수군거렸다.
푸시킨의 생애에 대한 기록들을 읽다 보면, 확실히, 그녀는 수도 제일의 미녀였던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