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이스마엘 카다레 (Ismail Kadare)
지난 7월 3일 세계 주요 신문들의 문화면에는 한 소설가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Novelist Ismail Kad- are dies at 88: 소설가 이스마엘 카다레88세로 죽다'라는 헤드라인이었다.
이스마엘 카다레는 다양한 국제 문학상을 수상한 알바니아 출신의 작가다. 그는 80 편에 이르는 소설과 다수의 시집, 희곡, 수필집을 발표하며 20세기 유럽 문학을 이끌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발칸의 문학 대사'라는 별명을 듣던 그의 죽음을 알리며, 알바니아 정부는 2일과 3일을 애도 기간으로공포하고 조기(弔旗)를 개양했다.
이스마엘 카다레의 문학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조국 알바니아가 어떤 나라인지 알아야 한다.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알바니아의 역사는 한마디로 외세의 끊임 없는 침략에 시달린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14세기까지는 로마, 비잔틴, 슬라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 후에는 오스만 제국과 이탈리아 파시스트에 점령을 당했다.
알바니아가 2차 대전 후에, 스탈린 주의를표방한 독재자 엔베르 호자에 의해 유럽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가 된 것도 이런 외세의 오랜 지배 역사와 무관치 않다고 봐야한다. 알바니아의 굴곡진 역사, 기독교와이슬람이 혼재된 문화, 그리고 격동의 현대 사는 이스마엘 카다레의 문학에 고스란히녹아 있다. 그의 작품은 음울하고 몽환적이지만, 그 안에 풍자와 유머가 있다. 나아가, 카다레는 전쟁을 비웃으며 전체주의와 독재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시대정신도 놓치지 않았다.
<죽은 군대의 장군: Le General l' arm- ee motte>은 이스마엘 카다레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이다. 소설은 장군, 군종신부 그리고 오래전 죽은 Z대령이 스토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설 속 세 사람은 모두 이름이 없다. 1963년 발표되어, 이제 세계 문학의고전이 된 <죽은 군대의 장군>의 내용은개략적으로 아래와 같다.
소설은 '눈 섞인 비가 이국땅에 내리고 있었다.'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한다. 장군은상부로부터 전쟁 동안 전사한 유해를 수습해 본국으로 되찾아 오라는 명령을 받고 지금 알바니아에 왔다. 소설은 장군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은 2차 대전 알바니아에 침공한 나라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군이었기 때문에, 장군이 이탈리아 군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장군은 처음 명령을 받았을 때, 아들의 유해를 기다리는 수많은 어머니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임무가 숭고한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죽은 자들을 흙 속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면, 떠나기 전 어느 지체 높은 귀부인 이 해준 말을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당당하고 고독한 한 마리 새처럼 비극적인침묵의 산을 날아 그 목구멍과 발톱에서 우리의 가엾은 청년들을 구해 내어 오세요."
수도 티라나 다이티 호텔에 여장을 푼 장군은, 양국 간 의정서에 따라 작업팀과 차량 및 장비를 갖추고 발굴 작업을 시작한다. 지도에 표기된 전투가 있었던 장소들은 산비탈도 있고 운동장도 있으며 소가 풀을뜯는 목초지도 있었다. 도무지 이런 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 알바니아 어를 할 줄 아는, Z대령의 집안과 친분이 두터운, 신부와 동행 하고 있다. Z대령의 집안은 백작 가문이다. 알바니아로 오기 전 장군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백작 부인과 며느리인대령의 미망인이 그를 찾아와 며칠 동안 함께 있었다. 백작 부인은 장군에게 유서 깊은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하며, 이번에 아들 Z대령의 유해를 꼭 찾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대령의 미망인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던 장군의 부인이 경계할 정도로....
"Z대령의 묘를 보셨습니까?" "네. 이곳에 오기 전에 갔었지요." 장군의 물음에 신부가 대답했다. "정말이지 웅장한 묘소더군요. 둘레 화단엔 흑장미와 백장미가 심어져 있었지요. 묘는 비어 있지만요." 장군이 유해가 돌아오면 안치할 대령의가묘(假墓)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신부는 아무 대답이 없다.
전쟁터를 찾아다니며 벌이는 유해 발굴 작업은 고되고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상당 기간 실적이 없을 때는 자신의 집무실을 찾아와 울먹이고 하소연하던 수많은 유족들을 떠올리며 장군은 불면과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럴 때면 괜스레 죄 없는 커피 탓을 했다. "저녁 늦게 그 빌어먹을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었어...."
어느 날, 지로카스트라라는 소도시에서발굴 작업을 하던 장군은 카페 주인이 서툰 영어로 들려주는 한 여자 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는 군인을 따라온 매춘부 중 한 명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그녀의묘가 있었다. 하얀색 대리석 묘비에는 '조국을 위해 죽다'라는 문구와 이름과 출생지가 적혀 있었다. 장군과 동향이었다. 물론, 장군은 이를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이 도시에서는 난데없는 갈봇집 소문으로 온통 뒤숭숭했다. 결국 도시의 원로들이 모여 회의를 한 후청원서를 작성해 수도 티라나 점령군 정부로 보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에 갈봇집은 안된다.'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파시스트 정부로부터 답신이 왔다. '전략적 차원에서 공창(公娼)이 허용될 것임-- 끝'
그리고, 드디어 여자들이 도착했다. 카키색 군용차를 타고 온 그들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어둠이 막 깔리기 시작하던 도시는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카페는 만원 이었고구경꾼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당연히장성한 아들을 둔 사람들은 불안하고 놀란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집에 있는 여자들 은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타들어갔다. 남편과 아들 중 누구를 더 걱정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창녀집은 군인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부대가 이동하면 민간인 손님도 받는다. 그리고 다른 부대가 오면, '내일 민간인은 받지 않습니다.'라는 게시판이 걸린다.
그러던 중 이 조그만 도시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라미즈 쿠르티의 아들이 파혼을 했다.'라는 이야기였다. 좀처럼 드문 일이라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처녀 측에서는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다, 결국, '라미즈 쿠르티 아들이 갈봇집 여자한테 반해서 일어난 일이다.'라는 것이 밝혀졌다.
초겨울 찬바람이 부는 해 질 무렵, 한 노인이 지팡이로 창녀집 문을 열며 들어왔다.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노인을 놀렸다. 베란다에 앉아 있던 여자들 중 머리카락 색깔을살피던 노인은 여자를 지팡이로 가리켰다. 그녀는 웃으며 노인을 자기 방으로 안내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잠시 후, 총소리가들리고 창녀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라미즈 쿠르티가 아들의 인생을 망치고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여긴 그녀를 향해 방아쇄를 당긴 것이다.
라미즈 쿠르티는 사흘 뒤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들은 도시에서 사라졌다. 창녀의장례식은 점령군에 의해 꽃과 화환 예포 속에서 엄숙하게 진행되었고, 장례행렬에는카페나 거리에서 강제로 동원된 군중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녀의 묘비에는 '조국을 위해 죽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소설은 방앗간에서 머슴으로 일했던 어느탈영병의 이야기도 있다. 장군이 텐트에서 며칠 동안 야영을 하며 고단한 발굴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새벽길에 있었던 일이다. 밤새 비가 오고 난 후 어슴푸레 아침해가 모습을 드러내는 도로에서 한 소년이 손을 흔들며 장군의 차를 세웠다. 소년의 옆에는노인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관이 하나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