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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을 닮은 학자(學者)들

글을 처음 쓰는 사람들의 고충 중의 하나가 정확한 맞춤법 사용이다. 일상에서 말할 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면 깔끔한 작문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영어에서도 단어 하나하나의 올바른 철자사용이 쉽지 않다. 우리가 한글을 쓸 때 실수를 하듯이, 당연히,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영미인들도 철자에서 실수를 한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다 보면, 누구나 짜증스러운 어휘들을 자주 만난다. 간단한 예로, 중학 기본 단어 중 하나인 marry(결혼하다)와 merry(즐거운)도, 이를 실제로작문에 사용하려면 헷갈리는 경향이 있다.

비슷비슷한 단어의 어미(語尾)도 암기 하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준다. "~하는"이라는 뜻의 형용사 어미는 comfortable (편리한)과 같이 -able로 끝이 나는 단어가많지만, irresistible(억누를 수 없는)처럼-ible로 끝나는 어휘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 하며 애를 먹인다.

또, stationery(문방구), statuary(조각상들), laboratory(실험실)와 같이, 원어민들이 거의 동일한 발음을 내는 단어들이 -ery , -ary, -ory의 다른 어미를 만들며 혼란스럽게 한다. 사실, 이런 단어들을 발음으로분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영어 어휘 중, 어미가 - ence와 -ance로조합된 단어만큼 괴롭히는 그룹도 없다. conference(회의/ 동맹)나 reference (참조)처럼 -ence로 끝이 나는 단어들이 있는가 하면, maintenance(유지)나 re- levance(관련)와 같이 -ance로 끝이 나는 어휘들이 있다. 이런 유(類)의 많은 어휘들을 사전 없이 정확히 사용할 수 있다면 대단한 실력이다.

당연히, 암기하는 사람들은 "철자 조합을꼭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나 규칙이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불행하게도, 이유나 규칙은 없다. 영문학자들이, 모호한 단어들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며 라틴어 규칙과 강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해가 안가는 것은 마찮가지다. 따라서, 이런 어휘들을 사용할 때는 순전히감(感)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많은 독서와 작문을 통해 영어에 대한 체력을 늘려가는 훈련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 더 알아보자. 사람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에는 accountant(회계원), his- torian(역사학자), dentist(치과의사)와 같이 -ant, -ian, -ist로 끝나는 말들이 있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어미가 -er이나 -or이붙는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er로 끝이 나는 teacher(선생님), designer(디자이너), reporter(기자)와, -or로 끝이 나는doctor(의사), councilor(고문관), cont- ractor(계약자)와 같은 단어들이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보통 제일 먼저 만나는 단어 중 하나가 teacher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사람의 직업을 나타내는 단어는 -er로 끝나는 말이 훨씬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or로 끝나는 단어가 더 많다고 한다. 어쨌든, 비교적 쉬운 말로 여겨지는 어미가-er이나 -or인 단어도 사용할 때, 미심쩍다면, 사전을 한번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사람을 나타내는 위 어미 외에 -ar로 끝맺는 흥미로운 단어들이 있다. 다만, 끝이 -ar인 단어의 수는 다른 어휘와 달리 그 숫자가 많지 않다. -ar 단어군(群)은 li- ar(거짓말쟁이), beggar(거지), burglar (절도범), pedlar(보부상/행상), friar(탁발승), cougar(퓨마), scholar(학자) 등이 있다.

언뜻봐도 이 단어들의 뉘앙스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liar, beggar, burglar 등은 단어 자체에 이미 그 의미를내포하고 있다. pedlar는 "보부상/행상"이라는 말인데, 왠지 물건을 강매하며 때때로 나쁜짓도 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구걸하며 지내는 "탁발승"이라는 friar도산뜻한 단어는 아니다. cougar(쿠거)는아메리카 퓨마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다른 뜻으로 "젊은 남성과 성적 관계나 연애를 하고 싶어 안달 난 중년 여성"을 나타내는말이기도하다. 비교적 현대에 만들어진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고상하게 여겨질 법한 "학자"라는scholar가 왜 이 단어군에 끼어 들었는지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학설에 따르면, -ar로 끝이 나는 단어들은 어미가 아니라 원래몸통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예를 들어teach(가르치다)는, 원래의 동사 teach에어미 -er을 붙여 teacher(선생님)라는 명사를 만들었다. 이와 반대로 beggar(거지) 라는 단어는 beggar가 원래의 단어였고, 여기서 beg(구걸하다)라는 동사가 파생되었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학자" scholar의 어원(語原)이그리스어 skhole과 라틴어 schola라는 것을 어원학 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scholar의 철자는 부정적 의미와 뉘앙스를 갖고 있는 다른 -ar 단어들과 연관관계가 없다는 해석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원학적 근거가 없는순전한 필자의 개인적 추정이지만, "학자" scholar라는 단어는 유럽 중세 사회상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당시, 학자 라는 직업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거나 권력을 갖고 있던 위치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자신의 학식을 인정해 주고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권력자나 부자들의 주위를 서성거렸다. 이런 그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사회가 좋게 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친일과 반일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며 소란스럽다. 이 분란이 윤석열 정부 들어 전면에 부상했지만, 사실은, 5년 전 소위 말하는 뉴 라이트 계열의 서울대이영훈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발표하며 불을 지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그의 책을 필자는 읽지 않았다. 따라서, 책의 내용에 대해 논평할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언론을 통해서 논란이 되었던 이영훈 교수의 두 가지 주장을 기억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의 쌀을 수탈하지 않았다"와"위안부는 매춘부였다"라는 내용이다. 당시, 그가 던진 화두가 논란과 비판의 중심에 들어서자 그는 "학자의 양심에 따라 책을 썼다"라고 말했다.

8.15 광복절 며칠 전부터 독립 기념관 관장 임명을 놓고 정부와 광복회가 옥신각신하더니, 급기야, 기념행사를 따로따로 갖는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그런데,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던, 뉴 라이트 인사로 알려진, 새 독립 기념관 관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학자"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학문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대다수 학자들을 폄해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당연히, 그들은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학자를 자칭하며, 틈만 나면 튀어나와 분열을 조장하고 자신의 이익을 쫓는 무리들은비판받아야 한다. 물론, 세속적 영달과 상관 없이, 권력의 힘을 빌려 자신의 이상을펼치려는 행동하는 학자와는 구별되어야하겠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노파심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필자가 언급한 영어 단어 scholar(학자)가, 다른 -ar의단어들과 연관이 있다는 어원학적 근거는 없다. 이는 순전히 필자가 단어를 공부하며 느꼈던 것들을 정리한 노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거짓 선동을 일삼는 거짓말쟁이liar,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거지 beggar와 탁발승 friar, 길가에서 온갖 가짜 물건을 강매하는 보부상/행상 pedlar 그리고 젊은 남자를 밝히는 중년 여자 cougar를학자 scholar와 함께 묶어서 외워두면 잊지 않고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