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단어 샤든프로이더 (Schadenfreude)
문명은 자신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자부 하는 그리스인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토론과 논쟁을 좋아한다. 당연히, 그들은 철학을 사랑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그리스인들 중에는 인간과 삶을 깊이 성찰 해야 하는 철학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도 의외로 많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의 첫 부분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주인공 '나'는 크레타 섬으로 가기 위해 밤을 새우고 배에 오른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이렇게 떠들었다.
""산다는 것은 감옥이야." "암, 그것도 종신형이지. 빌어먹을."카라피치 극장에서 개똥철학을 주워들은 듯한 덥석부리가 말했다."
나름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승객의 대화를 개똥철학이라고 비웃는 작가의 글 귀가 묘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작품의 첫 머리에 눈에 띄는 이런 문장은 이야기 속 주인공의 삶의 태도와 인생관을 어림짐작 하게 한다. 인생을 너무 무겁고 진지하게여기지 말고 주어진 삶을 즐기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려는 조르바의 성격을엿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종종 두터운 철학 책 한 권을 읽고 난 후에 헛웃음만 나올 때가 있다. 읽은 책에서, 도대체, 무엇을 느끼고 얻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플라톤, 칸트, 니체의 책들을 정독했다는 자들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얻었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탁월한 철학자들의 책을 읽었다는 마음의 위안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일상에서독서나 대화 중에 만나는 간단한 어휘 하나에서 지혜를 얻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짧은 단어 하나가 울고 웃는 삶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때로는, 인간의 깊은마음속을 꿰뚫기도 한다.
가끔 주위의 후배들이나 지인들이 영어공부에 대해 물어오는 때가 있다. 대부분은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신문과 소설을 읽고 bbc나 cnn 방송을 듣는 생활 밀착 영어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이 네 가지를 잘하려면, 당연히, 건물의 기초나 다름없는 충분한 어휘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야기 주제가 어휘가 되었을 때, 필자가 꼭 추천하는 책이 있다. 노먼 루이스(Nor- man Lewis)의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 WORD POWER made easy>이다. 원서를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영문본을읽어도 좋고, 한글판으로는 월북 출판사의강주헌 번역본이 있다. 노먼 루이스의 워드파워를 공부하다 보면, 고대 그리스 신화나 로마의 역사가 영어 어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자연스럽게 알아 가게 된다.
그런데, 필자가 오늘 말하려는 것은 다른 책이다. 위에서 언급한 <워드 파워 메이드이지>를 어느 정도 마스터했다고 생각하면, 그 위 단계인 <얼터멋 워드 파워 메이드이지: Ultimate WORD POWER made easy>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같은 저자인, 노먼 루이스의 이 책은 고급 단어를 모아 놓은 교제다. 여기서 말하는 고급 단어란 어렵고 난해한 전문 어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권 나라의 지식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품격 있는 단어를 말한다. 타임스가 선정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고급 영단어 책"으로 선정된 도서이기도하다.
<얼터멋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를 알차게 공부하면, 심리학과 철학 책 몇 권을 읽은 값어치가 있다. 더 나아가, 정신과적 의학 용어와 많은 파생어를 습득할 수있다. 이 책에 있는 몇 개의 어휘를 예로 들어 보자.
가끔 국내외 언론에 멀쩡한 부잣집 부인이나 유명 연예인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발각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들이 돈에 쪼들리는 것도 아니고, 훔친 물건이 굳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사람을 "클렙토메니엑: Kleptom- aniac"이라 한다. Klepto가 그리스어로"절도"를 뜻하고 maniac은 마음의 상태가 "어떤 부분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을의미한다. 따라서, 클렙토메니엑은 병적인도벽이 있는 사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심장이두근거리면 혹시 심부전이 아닐까 놀라고, 머리가 아프면 뇌종양이 아닐까 안절부절못한다. 또, 배탈이 나면 위암일 것이라고지레 겁을 먹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뛰어간다. 특별하게 아픈 것도 없이 이병원 저병 원을 찾아 다니는 이 사람을 "하이퍼콘드리엑(Hypochondriac: 심기증 환자)이라고 한다. 병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사는 환자 아닌 환자로, 곁에서 보면 무척 피곤한사람이다.
영어에는 "억소리어스: Uxorious"라는 재미있는 형용사가 있다. 발음부터 묘하다. 이 사람은 친구들과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 집에 가서 마누라의 말을 듣고 다음날 딴 소리를 한다. 세상이 뭐라 해도 마누라의 말은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다. 불합리하고 맹목적으로 아내에 헌신해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남자를 수식하는 형용사다. 만약, 남편이 큰 부자가 되면친정은,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채 굴러 오게 되는 횡재를 만난 격이 된다. 또, 이 남자가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함께 사는 여자는 남자의 상투 끝에 앉아 국정을 쥐락펴락 하려 한다. 그러니까, "히 이즈 억소리어스: He is uxorio- us."라는 문장을 우리 말로 해석해 보면 "그는 마누라 말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정말, "억" 소리나게 재미있는 단어다.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중순 전주에 내려갔다. 라오스에서 의료 봉사를 하다 잠시귀국한 친구 H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H의커리어는 특이하다. 서울대 의대 재학시절학생운동에 참여해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다. 지금은의사 생활을 은퇴한 후, 라오스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학생 운동을 한 여러 사람을 만나봤지만, 의대를 다니며 운동권에 적극 가담 했던 사람은 H 친구 말고는 없다. 그런데, 책을 통해 만난, 의과대학 졸업생 혁명가는한 사람 알고 있다. 이제는, 변화를 꿈꾸는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전설적인 혁명 가 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 evara)다.
체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는 남미의 가난하고헐벗은 사람들을 보고 혁명가의 길로 들어 서게 된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Fidel Ca- stro)와 함께 쿠바 혁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누릴수 있었던 쿠바에서의 영화(榮華)를 뒤로하고 볼리비아 반군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볼리비아 군과 미군에 의해 체포되어 1967년 죽었다.
체 게바라를 혁명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그가 의대 재학 시절 친구 인 생화학자 알베르토 그라나도(Alberto Granado)와 함께 했던 남미 횡단 여행이었다. 그 여행을 통해서 남미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되고, 그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된다. 그때의 게바라 여행기가 <더모터사이클 다이어리즈: The Mortorcyc- le Diaries>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게바라가 우람하고 건장한 사람이 아니라, 늘 천식으로 고생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섬세한 청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체 게바라에의 인물평론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H 친구와 전주에서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그날 모임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인 B와 C 가 합류하여 4명이 되었다. 밖에는 한여름의 열기가 절정을 이루는 초저녁 이이었고, 우리들의 대화도 점점 뜨거워져 갔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개 고등학교 친구들에 대한근황이었고, 멀리는 초등학교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