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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의 메커니즘 (Mechanism)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다. 도심에 차가 한대도 없는 도시는 지구상에서 베네치아가유일하다. 시민과 관광객들은 수로를 따라운행되는 수상 버스를 이용하고, 대부분의물자도 물길로 운송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곳을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

베네치아는 수상버스나 곤돌라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독특하지만 미로처럼 형성된골목길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그 길 들을 걷다 보면 여행객들은 밀리오네(Mili- one)라는 거리를 만날 수 있다. 밀리오네는 백만을 뜻하는 영어의 밀리온(Million) 과 같은 말이다. 이 거리 이름은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Marco Polo)에서유래했다고 한다.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1270년부터 1295년까지 약 26년 동안 여행했던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중국에서 황제쿠빌라이의 요청으로 17년간 관리 생활을 하며 대륙의 많은 곳을 여행했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으로 갈 때 실크로드를 따라갔으며, 돌아올 때는 남해 항로를 이용했다. 그의 여행은 베네치아에서 시작해서 베네치아에서 끝이 났다.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에 돌아온 후 불행한 일을 겪게 된다. 베네치아는 당시 해상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던 제노바의 선박 3척을 나포한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두 나라는 쿠르졸라 해전을 치르게 된다. 마르코는 베네치아 해군에 자원하여 갤리선 함장고문관으로 참전을 했다. 전투는 제노바의 승리로 끝이나고, 마르코는 제노바 해군에체포되어 1년간의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젊은 시절부터 세계를 여행하던 마르코에게 좁은 감옥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마르코의 이 감옥살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 동방견문록>이라는 귀중한 고전을 만날 수 없었다.

마르코는 감옥에서 같은 방에 수감되었던피사 출신 소설가 루스티첼로를 만나게 된다. 우연이라기보다는 운명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루스티첼로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들려주던 마르코 폴로의 여행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마르코는 아버지로부터 여행 기록을 넘겨받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고 루스티첼로는 그의 구술을 필사했다. 이 수초본(手抄本)이 바로<동방견문록>의 원본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원본에서 여러 가지 제2 원본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는 여행가나 탐험가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장사를 배운 상인이었다. 따라서, 그의 책은 여행국들의 지리나 기후, 풍속 등을 다루는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많이 다르다. <동방견문록>에는상인의 눈으로 본 산물, 물가, 시장 등의 기록이 많고, 그들 중에서도 특히 황금, 은, 보석, 진주, 향료, 향수,비단 같은 상품이 자주언급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마르코 폴로가 사치품 무역을 하던 상인이었다는 추정을 해 볼 수 있다. (동방견문록/동서문화사 참조)

다시 밀리오네 거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베네치아에 돌아온 후, 마르코 폴로는 그의동방 나라 이야기들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마르코 폴로에 대한 베네치아 시민들의 소문도 그랬다. "너무 재미있다"라는 반응과 "완전히 뻥치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공존 했다. 정리해 보면, 밀리오네 거리는 "백만장자의 거리"와 "뻥쟁이의 거리"라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마르코 폴로를, 당시 베네치아 인들이 허풍쟁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 중에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 평론가들이 링컨의 정치적 탁월함으로 꼽는 다섯 가지 요인이 있다. Bargaining(협상), Ba- rtering(타협), Bluffing(허풍), Eloquen- ce(달변), Resilience(불굴의 의지)이다. 그런데, 위 다섯 특징 중 링컨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어휘가 있다. 세 번째 허풍이라는 말이다.

정치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현실 속의행위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허풍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역설적인 이야기 같지만 지도자가 허풍이 없으면 매력이 없다. 계산되고 정교한 허풍은 지도자를 따르는 자들에게 때로는 상상 이상의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블러핑(Bluffing)이라는 단어는, 또, 상대방에게 겁을 주는 "엄포"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어휘는 "허풍"과 함께"엄포"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허풍은상대방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부하들을 통제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적 행위라고도할 수있다.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평범한 시각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허풍쟁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주변국들을 거침없이 정복해 나가자 주위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내가 왕이 되면 뭘 하라고, 저렇게 싸우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라며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단순한 허풍쟁이가 아니었다. 필리포스 2세가 죽고 왕이 된 후, 아테네와 테베를 포함한 그리스의 모든폴리스를 평정한 그는 눈을 들어 대 제국 페르시아를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로스의두려움 없는 놀라운 기상(氣像)은 이때 나타난다.

인간은 누구나 미래는 두렵고 떨린다. 그런 원초적 공포 때문에 인류 역사 속에는 언제나 주술이나 미신이 존재했다. 어쩌면 이런 인간의 약점을 파고드는 점쟁이나 주술사들은 또 다른 종류의 허풍쟁이들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국가나 왕의 미래를 혹은 중대한 정책을 결정할 때, 델포이 신전을 찾아 신의 뜻을 물었다. 델포이에는예언의 신 아폴론의 신전이 있다. 오라클(Oracle)이라 불리는 신탁은 사람을 매개로 신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델포이무녀(巫女)가 바로 그 매개의 역할을 한 신의 대리인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기 전 휘하 장군들을 대동하고 델포이 신전을 찾았다. 그런데, 무녀는 그날은 택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신을 거부했다. 당연히, 신전에서는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신이 신탁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근위병들에게 무녀를 끌고 오라고 명령한다. 그는 무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 신의 신탁을 받아라."거부하면 곧바로 목을 칠 것 같은 기세로 당장 신을 불러 오라는 알렉산드로스의거침없는 기상에 무녀는 경악했다. "대왕이 가는 길을 누가 막겠습니까."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세상에 공포했다. "아폴론 신은, 알렉산드로스가 가는 길은 세상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신탁을 내렸다."

그날의 신탁은, 아무래도, 무녀의 푸념 섞인 혼잣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알렉산드로스가 신의 존재를 믿고 있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는 "세계는헬라스 문명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라는 자신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는데 신탁 따위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 만은 분명하다.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허풍스러운 지도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그 허풍을 자신의 모든 역량을 모아 실현시킨 지도자가 있는 반면, 평생 허풍만 떨다 사라진 우스꽝스러운 지도자도 있다. 그렇다면, 분명히 이 복잡한 심리학적 어휘에는 비밀스러운 메커니즘이 숨어 있을 것이다.

위대한 허풍스러운 지도자는, 역설적으로, 결코 허풍을 떠는 부하를 곁에 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영리하고 세심하며 실행력이 있는 부하가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문맥에서 다소 벗어난 이야기 같지만 허풍이라는 주제 아래, 우리가 직면 하고 있는 정치 현실을 짚어보자.